지름길/박무웅
세상에 존재하는 지름길이란
시간이 모른 척하거나
눈감아준 길들일 것이다.
본래의 길 보다는 다소 험하고 비좁더라도
산에는 무수한 지름길들이 있다.
풍경보다는 비경(秘境)이 펼쳐지는 곳
산의 속속을 잘 아는 존재들의 길
지름길이란, 사람의 시간을 다르지 않는
산짐승들의 시간이 숨어 다닌 곳이다.
사람이 호기롭게 버리고 간
메아리들이 잦아들면서 사용한 길
작년에 이쪽 산에서 핀 봄꽃이
올해에는 저쪽 산에서 피려고 몰래 가는 길
법량(法量)이 깃들지 않은 길이다.
산 속에서는 계곡이,
그 계곡을 흐르는 험준한 물길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산속에는 한 번 접었다 편 것 같은
그런 주름진 길들이 숨어있다.
저 먼 차마고도의 좁고 험한 길
새와 쥐만이 다닐 수 있다는
조로서도(鳥路鼠道) 같은 길이 있다.
그건, 산이 제 품과 속을
거리낌 없이 내어서 만든 길들이다.
계간 『시인시대』2019년 여름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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