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 낭송/낭송하기 좋은 시

지름길/박무웅

시인 최주식 2020. 4. 13. 07:22

지름길/박무웅

 

세상에 존재하는 지름길이란

시간이 모른 척하거나

눈감아준 길들일 것이다.

 

본래의 길 보다는 다소 험하고 비좁더라도

산에는 무수한 지름길들이 있다.

풍경보다는 비경(秘境)이 펼쳐지는 곳

산의 속속을 잘 아는 존재들의 길

지름길이란, 사람의 시간을 다르지 않는

산짐승들의 시간이 숨어 다닌 곳이다.

사람이 호기롭게 버리고 간

메아리들이 잦아들면서 사용한 길

작년에 이쪽 산에서 핀 봄꽃이

올해에는 저쪽 산에서 피려고 몰래 가는 길

법량(法量)이 깃들지 않은 길이다.

산 속에서는 계곡이,

그 계곡을 흐르는 험준한 물길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산속에는 한 번 접었다 편 것 같은

그런 주름진 길들이 숨어있다.

저 먼 차마고도의 좁고 험한 길

새와 쥐만이 다닐 수 있다는

조로서도(鳥路鼠道) 같은 길이 있다.

그건, 산이 제 품과 속을

거리낌 없이 내어서 만든 길들이다.

 

계간 『시인시대』2019년 여름호에서

'♣ 詩 낭송 > 낭송하기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직은 행복하다/김종희  (0) 2020.04.15
오독/이기철  (0) 2020.04.14
봄 바람난 년들/권나현  (0) 2020.03.14
뜨거운 밤/안도현  (0) 2020.03.14
접속사/김찬옥  (0) 2020.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