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송석론 / 최주식(시인, 문학평론가)
1, 문학 세계
윤송석은 개성적인 특유의 언어로 끊임없는 창작을 갈망한다. 또한 다양한 장르를 오가는 폭넓은 행보로서 문학의 스펙트럼을 찾아간다. 그는 소설 속의 윤송석, 시 속의 윤송석이 되어 인간의 본성을 내보이고 있다. 어쩌면 써야 한다는 사명감이나 의무같은 절실함이 없었다면 그의 문학은 밝은 빛을 잃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가 발간한 소설집과 수필집, 그리고 시집을 주의깊게 읽으면 은유와 대상이 마술적이어서 사람의 마음을 100도쯤 끓게 만든다. 그것은 인간적 가치에 대한 갈망과 이상주의적인 정념, 그리고 아슬아슬한 미션들로 지루할 틈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 다양한 지면을 통해 발표되는 시를 보면 때 빼고 광을 낸 번지르한 언어만 있을 뿐 마음에 새길만한 생명력 넘치는 시는 찾기가 쉽지 않다. 의도적으로 조작한 상투적인 언어와 추상적인 관념만이 자리잡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윤송석의 시에는 비록 그것이 자신의 멍에일지라도 세상에 대한 맹세같은 반란같은 신념이 있다.
따라서 윤송석은 신념이 있는 작가, 격보다는 파격을 지향하는 작가다. 얼른 보면 얌전한 샌님 같아 보이지만 쉽게 설득되지 않으며 공허한 수사나 격식에 끌려가지 않는 꼿꼿한 작가다. 그의 문학적 신념은 내적 경험의 진솔함에서 나온 것으로 조용하다. 조용하다는 것은 신념이 약하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깊고 강한 힘이 있다는 것이다. 깊은 신념과 강한 힘에는 상상과 허구가 아니라 속박에서 벗어난 리얼리즘의 성 담론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2, 성 담론
실례를 범하기로 하고, 윤송석의 성 담론에는 일반적인 연가와 다른, 사람에 대한 가슴시린 정감과 그것을 바라보는 경이로움이 있다. 그래서 벗고 자는 아내가 좋다고 한다. 고뇌와 슬픔, 사유와 기억은 물론 부끄러움까지도 훨훨 벗어버린 알몸에 파묻혀 하나의 우주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알몸은 분별심으로는 생각 할 수 없는 근원적인 생명 감각이다. 살결과 살결이 부딪친다는 것은 가장 원초적인 감각으로 낮은 곳에 스며들어 어떤 특권이나 배타적인 차별을 거부하는 몸짓이다. 서로 하나가 되어 용해되는 무아지경의 자유로운 영혼을 만나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자 생명의 터는 살과 살이 맞닿는 그곳 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을 증명하듯이 다음과 같은 작품이 있다.
"벗고 자는 아내가 나는 좋다./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그녀/몸을 내가 원하는 대로 양도하는 그녀/나도 그녀를 따라 다 벗은 몸으로 잔다.//알몸으로 자면/부부 사이가 좋아질 수밖에 없다./살결과 살결의 부딪힘이 자연스럽다./살짝만 움직여도 맨살이 닿아/온몸의 감각을 예민하게 느낀다.//참 신기하다./몸이 기뻐하는 시간은 역시 밤이다."
「벗고 사는 재미 2」전문
위의 시는 윤송석의 유토피아라 해도 될 것이다. 얼핏 볼 때, 자신의 상황을 언급한 것으로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부부가 서로 이해하면서 사랑한다면 행복에 이르게 된다는 소망이 담겨 있다. 윤송석은 살결과 살결이 부딪치는 알몸의 고통과 노력으로 부부간의 내적인 친화를 다지라는 깨달음을 주고 있다. 자신의 시선과 더불어 상대가 스스로에게 바라는 모습도 함께 생각하면서 알몸이 되어 볼 일이다.
3, 사회적 윤리관
달콤한 성 담론을 쏟아내는 윤송석이지만 성을 왜곡하는 도덕 감각이 마비된 파렴치한 이들을 보면 준엄히 꾸짖는다. '용서 못할 상처' '죄다 뿌리 뽑아야' 등을 보면 우리 사회에 심화된 권위주의적 병폐와 부조리에 대한 윤리적 관념이나 탁한 세상을 정화하고자 하는 사회적 가치관은 매우 단호하고 정의롭다. 시를 통해서 토하고 싶었던 윤송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용서 못 할 상처/악몽에 시달리고 시달리다/작심하고 입을 연/미투 운동 덕에/한국판 판도라 상자가 열렸다.//개탄스럽지만/어차피 가야 할 길이다./이 사회에 만연한 참담한 병폐/이젠 송두리째 갈아엎을 때가 왔다.//존엄한 性을 짓밟은/금수만도 못한/추악한 짓 저지른 자들을 /이참에 죄다 뿌리 뽑아야 한다./그냥 덮을 순 없지 않은가,/어렵사리 열린 판도라 상자를."
「판도라 상자」전문
윤송석은 이 사회에 옳고 그름보다는 힘을 가진 자의 영향력에 의해서 약자의 운명이 결정되었던 암울한 시대를 통탄한다. 이러한 삶의 근본적인 훼손이 이제서야 어둠에서 벗어나 명백한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라 말한다. 하여 윤송석은 참담한 병폐를 송두리째 갈아엎을 때가 왔다며 성찰의 흔적을 여기저기 드러내 보이는데 약자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연민의 마음이 가득하다. 이는 평소 성에 대한 자신의 윤리관이라 할 것이다.
4, 생명력 넘치는 충만한 기쁨을 위하여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항상 변하며 하나의 모습이나 하나의 생각에 머물러 있지 않다. 아무리 맛난 음식도 자주 먹거나 한가지만 먹으면 질린다. 더구나 다양한 야성적 메뉴를 지닌 부부 관계도 추락하지 않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아름다운 변화를 거듭해야 한다. 윤송석은 시를 쓰듯이 부부 관계도 익숙한 것을 새롭게 바라보는 낯선 행위를 해야 제 맛이 난다는 암시를 던져준다. 공감에 이르게 될 아래 시를 예로 들어본다.
"그녀는 정상 체위가 제일 좋다고 강조했다./그것이 왜 정상 체위이겠는가./그 체위로 정상까지 너끈히/도달할 수 있기 때문 아니었으랴.//너나 할 것 없이 모두/그 체위를 실컷 즐겼으련만/정상 체위의 가치와 매력을/제대로 남겼으면 좋았으리라.//어느 날 아내가 좋아한다는/그 체위로/한창 공을 들이고 있을 때 그녀가 투정했다./언제까지 이것만 할 거예요?//아뿔싸, 아무리 좋아도 아무리 맛나도/한 가지 메뉴로는 만족할 수 없나 보다."
「정상 체위 2」 전문
부부는 누구나 가슴에서 나오는 다양한 방법으로 성스럽고 위대한 사랑을 나눈다. 윤송석은 아내라는 시적 이미지를 통해 자연스럽게 부부의 성에 예술적 감각을 부여하고 사랑의 마음을 얹으려 한다. 하지만 '아뿔사, 아무리 좋아도 아무리 맛나도' 쉽지 않음을 고백한다. 세월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부부 관계의 스킨십도 변하고 절정의 순간도 변하고, 밝아서 부끄러워서 밤에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도 변한다. 변하지 않은 것은 싱겁고 맛도 없다. 그래서 밤낮 쉬임 없이 진화하는 부부는 아름답다.
5, 윤송석, 계속해서 성 담론을 이어 갈 것을 부추기며
삭막한 이 시대에 삶이 풍요로워지기 위해서는 덧난 상처를 회복시킬 사랑이 필요하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가장 아름다운 때는 건강하게 사랑을 나눌 때다. 온갓 수단으로 곤충을 유혹하는 식물의 사랑은 사람만큼 강하다. 꽃도 더욱 예쁜 자태로 벌과 나비를 기다리며 신방을 꾸미고, 그 댓가로 꿀을 선물한다. 이게 불변하는 생명의 섭리다. 시적 완성이 자성의 독백과도 같은 아래 시를 인용해 본다.
"성(性)이 즐거운 것이 아니라면/섹스할 때 그렇게 붉어진 표정 지을 리 없다.//성(性)이 즐거운 것이 아니라면 /그녀의 허리 놀림이 그렇게 현란할 리 없다./낯빛이 연분홍 꽃빛으로 온통 물들 리 없다."
「벗고 사는 재미 14」전문
깊숙이 읽어내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정말로 윤송석이 하고 싶었던 말은 부부의 마음은 하늘과 이어진 한마음이라는 것이다. 하늘의 마음처럼 겸손하고 정직하며 서로를 배려하는 따뜻함을 말한다. 표면적인 아름다움에 집착하기보다 내면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 충만한 기쁨으로 부부의 만족도는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윤송석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은밀한 곳, 자신도 보기 부끄럽고 두려워 외면했던 부부의 사생활인 속궁합을 엄숙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풀어 놓았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합일로 인해 다함께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윤송석에게 한 마디 부추겨 본다. '여기서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거침없는 성 담론을 이어 가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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