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 고 은
첫눈 온다
이 시대 죽지 말라고
첫눈 온다
할 일 많아
산이고 물인 이 멍든 강산에
첫눈 온다
그 언제였던가
처음으로 손 잡은 떨림이여 새로움이여
그 첫사랑으로
빈 나뭇가지마다
빛나던 이름이여
이제 그 이름 아득한 거리에
첫눈 온다
돌이킬 수 없이 내 순결과 오욕 헐헐 바쳐
여기까지 이르렀건만
결코 사랑일 수 없는 미움으로
원수를 원수라 부를 자유도 없는 미움으로
이 시대가 무엇이더냐
여기저기 숨어있다가
끝내 부릅뜬 눈 감고 붙잡혀가는 젊은 것이여
너에게
첫눈 온다
잡아가는 것이여
너에게도 온다
처절히 이 시대 막바지 바라보노니
온 마음 뜨겁게 뭉쳐 흩어질 줄 모르는 것이여
흩어졌다가
또 다시 모이는 것이여
그 누구 있어
이 강산 잘린 허리 등져 버리느냐
갇힌 누이 시퍼런 노래 퍼지는 지붕에
모든 지붕에
모든 바다 너머 너머 달려와 깨지는 파도 위에
싸움 위에
첫눈 온다
이 시대 죽지 말라고
이 강산
온통 숨쉬라고 온다
개 같은 슬픔도 슬픔일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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