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한국명시

첫눈 - 고 은

시인 최주식 2009. 2. 5. 22:12

첫눈 - 고 은

 

첫눈 온다
  이 시대 죽지 말라고
  첫눈 온다
  할 일 많아
  산이고 물인 이 멍든 강산에
  첫눈 온다
 
  그 언제였던가
  처음으로 손 잡은 떨림이여 새로움이여
  그 첫사랑으로
  빈 나뭇가지마다
  빛나던 이름이여
  이제 그 이름 아득한 거리에
  첫눈 온다
 
  돌이킬 수 없이 내 순결과 오욕 헐헐 바쳐
  여기까지 이르렀건만
  결코 사랑일 수 없는 미움으로
  원수를 원수라 부를 자유도 없는 미움으로
  이 시대가 무엇이더냐
  여기저기 숨어있다가
  끝내 부릅뜬 눈 감고 붙잡혀가는 젊은 것이여
  너에게
  첫눈 온다
  잡아가는 것이여
  너에게도 온다
 
  처절히 이 시대 막바지 바라보노니
  온 마음 뜨겁게 뭉쳐 흩어질 줄 모르는 것이여
  흩어졌다가
  또 다시 모이는 것이여
  그 누구 있어
  이 강산 잘린 허리 등져 버리느냐
  갇힌 누이 시퍼런 노래 퍼지는 지붕에
  모든 지붕에
  모든 바다 너머 너머 달려와 깨지는 파도 위에
  싸움 위에
  첫눈 온다
  이 시대 죽지 말라고
  이 강산
  온통 숨쉬라고 온다
  개 같은 슬픔도 슬픔일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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