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유치환(1908~67)
이제 가을은 머언 콩밭짬에 오다
콩밭 너머 하늘이 한걸음 물러 푸르르고
푸른 콩잎에 어쩌지 못할 노오란 바람이 일다
쨍이 한 마리 바람에 흘러흘러 지붕 너머로 가고
땅에 그림자 모두 다소곤히 근심에 어리이다
밤이면 슬기론 제비의 하마 치울 꿈자리 내 맘에 스미고
내 마음 이미 모든 것을 잃을 예비 되었노니
가을은 이제 머언 콩밭짬에 오다
여름휴가 절정인데 절기는 입추다. 문턱에 까치발 올라 가을 어디쯤 오나 보니 머언 콩밭 짬에 오나 보다. 푸름에 겨운 콩밭 노랗게 익어가고 하늘은 한 걸음 물러가 푸름 되찾나 보다. 해도 그림자 길게 늘이고 제비 강남 갈 채비에 꿈자리 춥나 보다. 모든 것, 우리말까지 잃어갈 일제 말, 한자 관념어로 툭툭 불거져 나오던 청마의 독한 의지. 이 시에서는 가을 문턱 맑고 시린 서정 살가운 우리말에 실려 표표히 날리고 있다. <이경철·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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