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박재삼(1933~1997)
대구 근교 과수원
가늘고 아득한 가지
사과빛 어리는 햇살 속
아침을 흔들고
기차는 몸살인듯
시방 한창 열이 오른다.
애인이여
멀리 있는 애인이여
이럴 때는
허리에 감기는 비단도 아파라.
예전엔 무제(無題)라는 제목의 시, 그림 참 많았지요. 머리로 뭐라 규정하기도 전에 감흥이 먼저 가슴속으로 치고 들어왔기 때문에서였을까요. 이런 작품들엔 구구한 해석 자체가 사족(蛇足)일 터. 이럴 땐 사과빛 어리는 햇살 속 깨끗한 아침 몸살인 듯 달아올라 먼 애인을 향해 달려가는 그리움, 사랑병 한번 시인과 똑같이 앓아보시길. <이경철·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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