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별 바라보기
모라꼿 사나운 비 구름 바람 물러가자 폭염이 하늘을 뒤덮는다. 이제 며칠이면 칠석(七夕)이 찾아오리라. 마루 끝에선 깊은 밤까지 부채 펄럭이는 소리 두런두런 이야기소리 들리고, 은하수를 올려다보거나 별똥별을 세는 밤이 이어지리라. 참으로 여름만큼 사람과 별을 친밀하게 이어주는 계절은 없으리라. 이제 한낮의 열기는 서늘한 황혼을 넘어 밤하늘을 부드럽게 흐르고, 있는 듯 없는 듯 부는 시원한 바람에 무수한 램프 불빛이 흔들린다.
하늘을 남북으로 흐르는 ‘은하수’는 나라마다 다르게 부른다. 서양에서는 여신 헤라의 모유가 흘러내렸다는 그리스 신화에 따라 ‘우윳빛 길’이라 부르고, 중국에서는 양쯔강의 지류 한수(漢水)로 이어진다 해서 ‘은한(銀漢)’이라 부른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죽은 자를 하늘로 인도하는 ‘영혼의 길’이라 말한다. 이 구름 같은 빛의 띠가 무수한 별의 집합체로 알려진 것은 17세기의 일이다. 천문학자 갈릴레이가 만든 망원경으로 관측해서 이를 밝힌 것이다. 은하수는 수십억 개 별이 모여 생긴 은하계로, 지구를 포함한 태양계도 또한 이 은하계의 일부다. 우리들은 은하계를 안쪽에서 보기 때문에 은하수가 하늘의 띠처럼 보인다.
은하수는 일 년 내내 볼 수 있지만, 특히 여름밤 은하수는 밝은 별이 모인 은하계의 중심에 있어서 더 빛나 보인다. 은하수를 남쪽에서 북쪽으로 따라가노라면 머리 바로 위에 눈길을 끄는 몇 개의 별이 있다. 거문고자리의 1등성 베가와 독수리자리의 1등성 알타이르, 백조자리의 1등성 데네브다. 이 세 별은 여름의 큰 삼각형을 이루는데, 특히 베가와 알타이르는 직녀와 견우라 불리며, ‘칠석날 전설’의 주역으로서 전해 내려온다. ‘칠석 전설’은 중국 주(周)나라 때 쓰인 『시경』에 처음 등장한다.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두 별이 동과 서로 마주 봄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은하수 동쪽 기슭에 사는 천제의 딸 직녀는 베 짜는 일에 몰두한다. 천제는 그런 딸을 가엾이 여겨 은하수 서쪽 기슭에 사는 소 치는 젊은이 견우와 결혼시킨다. 그러나 두 사람은 사이가 너무 좋은 나머지 일을 게을리하게 된다. 화가 난 천제는 두 사람을 다시 은하수 양쪽 기슭으로 갈라놓고 1년에 한 번, 7월 초이렛날 밤에만 오작교를 놓아 둘의 만남을 허락한다.’ 1년에 오직 한 번밖에 만날 수 없는 연인. 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켜 사랑을 받는다.
고흐의 별 그림 ‘밤의 카페’를 보면, 오른쪽 배경에 등불이 새어 나오는 건물 뒤로 어두운 집 그림자가 안쪽으로 이어져 있고, 그 요철선과 카페 옆집의 수직선으로 구분된 푸른 밤하늘에 마치 함박눈 같은 크고 작은 별이 흩어져 있다. 이 착한 별들은 남프랑스 아를의 따뜻하고 촉촉한 밤의 정취를 한껏 더한다. 수화(樹話)의 별 그림 ‘어디에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특이한 점묘법으로 화면 구석구석 무수한 청회색조 점들을 고루 메워 마치 우주에 벌통을 쏟아 뿌려 놓은 듯 헤아릴 수 없는 별들로 가득하다. 김광섭의 시가 거기에 있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 이렇게 정다운 / 너 하나 나 하나는 / 어디서 무엇이 되어/다시 만나랴.”
그러나, 저 무궁 광대한 밤하늘에 펼쳐진 우주의 별들 이야기에 어찌 비할 수 있으리오.
고정일 소설가·동서문화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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