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동화 쓰는 벗을 보내며
벗이여, 인생은 들에 핀 풀꽃처럼 피었다 스치는 바람결에 사라져 그 있던 자리조차 알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인간의 사랑은 경외하는 하느님에게 처음부터 한결같고 대지의 은혜인 열매로 자라 아름답게 번성할 때도 있으며, 자연의 섭리에 따라 어느덧 덧없이 사멸하여 갑니다. 그대는 동화집 『사랑의 선물』 머리글에서 이렇게 썼지요. “마해송의 『바위나리와 아기별』을 읽고는 그 아름다운 한 편의 동화에 반하여 눈물짓고 말았어요. 나도 이런 동화를 써보고 싶어졌어요.”
벗이여, 그대는 나에게 동화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과 시대를 초월하며, 마법적이고 신비롭기까지 하다고 말했습니다. 햇빛은 어린이 머리 위에서 잠들고 그 찬란한 영광은 두 눈동자에서 비칩니다. 그들은 나를 씩씩하고 온유하게 만들기도 하지요. 왜 예수가 천국을 어린이와 비유하였는지 이제 나는 알겠습니다. 동화야말로 끝없는 상상을 빛나는 언어로 정답게 엮어내어 하느님께 드리는 시이며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벗이여, 우리는 엘리너 파존을 이야기하고 린드그렌 아스트리드를 존경했으며 미카엘 엔데를 부러워했습니다. 동화작가는 한 편의 동화를 통해 세계를 제시하고 매혹합니다. 별보다 더 고운 숨결, 찬 이슬을 동그마니 받쳐 든 잎새마다 국화는 일찌감치 싹이 솟아 푸르고 성한 것 늦게야 금빛 찬란한 꽃을 피웁니다. 초겨울 심사(心思)가 담박하여 하늘은 국화를 결코 요염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안개마냥 이슬비 내리는 시월 들녘 홀로 핀 국화는 그대의 얼굴 같아, 그 국화 곁에 책 읽고 글 지어 읊조려 한접(寒蝶)하는 그대 생애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정취와 생명은 성긴 울(籬), 찬비 뒤에 떨고 서 있는 몇 송이 국화에, 또 들녘 언덕에 홀로 핀 외로운 들국화에 있는 것으로 믿습니다. 생명은 자연 속에서 피었다 자연 속으로 돌아가는 게 본성이거늘 사람들 손끝에서 굽히고 비틀리고 꺾이어 억지로 웃음지으면 그 속에 무슨 국화의 생명이 깃들 수 있겠습니까.
벗이여, 싸늘한 달은 앞기둥을 비추고 겨울 바람은 잎새 벗은 가지들을 흔드는데, 홀로 깊고 푸른 겨울 하늘을 보매 왜 이리 시름이 깊어만 지는가요. 그대는 어느새 그대의 고향 탄천 송악마을을 거닐고 있나요. 이곳에서 우리 즐겨 만났지만 이제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네요. 산과 물이 가로막아 그대를 찾기 어렵습니다. 그대는 이 땅 위의 가장 빛나는 존재이자 혜택인 아이들을 두고, 또한 우리를 버리고 영원히 가버리니 남은 세월이 있은들 누구와 함께 날을 보내야 하는가요? 문을 나서도 갈 곳이 없으며, 즐겨도 함께할 이가 없습니다. 앉아도 마주할 사람이 없고, 말해도 들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대는 시름 많은 이 세상을 잊고 저 머언 근본으로 돌아갔는데, 우리는 그대를 잊지 못해 눈물 흘립니다. 국화처럼 맑은 그대 얼굴에 그려지는 그 순수의 아름다운 국화의 사유를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요?
벗이여, 삶에 대한 절망 없이 사랑은 있을 수 없다며 내 삶의 사랑은 동화라고 그대는 말했습니다. 파도처럼 부서지는 그 회억의 물결은 이제 미망으로 차오르기만 하네요. 삶은 피어 오르고 꺼지는 불꽃, 그것을 꺼지지 않게 하는 원천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 나는 월명(月明)의 절창(絶唱) 제망매가(祭亡妹歌)를 나대로 읊조려봅니다. ‘삶과 죽음의 길은 여기에 있으니, 두려워 나는 간다는 말도 못다 이르고 가는가. 어느 이른 겨울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서도 가는 곳을 모르는구나. 아아, 사랑 가득한 동화의 나라, 그곳에서 만날 우리, 마음 닦아 기다리리.’
고정일 소설가·동서문화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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