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문칼럼)

[하영선 칼럼] 짝퉁 세상과 맑은 인연

시인 최주식 2009. 12. 29. 21:47

허생은 힘의 역학관계를 현실적으로 고려했다
소프트파워 외교론으로 북벌론 대신 북학론을 제시했던 것이다
2010년엔 무슨 뜻인가

세계 경제위기의 한파와 함께 시작했던 한 해가 저문다. 추웠던 한 해를 떠나보내기 위한 크고 작은 송년회 모임에 모두들 분주하다. 쌓이는 모임의 피로를 풀기 위해 술 깨는 술모임의 작은 얘기를 하나 할까 한다.

1768년 어느 날 초정 박제가가 연암 박지원을 찾아간다. 첫 만남이었다. 초정은 평소 "뜻이 높고 고독한 사람만을 남달리 친하게 사귀고 번화한 사람과는 스스로 멀리하니 뜻에 맞는 이가 없어 늘 가난하게" 살았다. 서얼 출신의 젊은 수재인 박제가가 당시 노론 명문가의 이단아로서 이미 문명이 나 있던 연암과 만난 소감을 '백탑청연집(白塔淸緣集)'에서 흥분된 기분으로 전하고 있다.

열세 살 연상인 천하의 연암이 옷도 채 입지 못한 채 나와 옛 친구처럼 맞이하면서 자신의 글도 읽어 보라 하고 손수 지은 밥을 함께 먹고 술잔을 나눴다는 것이다. 30대 초반의 연암이 채 스물도 되지 않은 초정을 이렇게 환대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연암은 초정 나이에 심한 우울증인 심병(心病)에 시달렸다. 가까운 사람들은 병의 원인을 향원(鄕原)에서 찾았다. 향원은 원래 공·맹자 이래의 표현이나 요즈음 말로 사이비 또는 짝퉁을 말한다. 연암은 권력, 이익, 그리고 허명만을 좇는 양반들이 판치는 짝퉁 세상을 못 견뎌했던 것이다. 결국 세대의 차이를 넘어서서 짝퉁 세상의 혐오와 맑은 인연의 갈구가 잘 어우러졌던 것이다.

첫 만남은 백탑파 모임으로 이어진다. 연암을 위시해서 박제가를 비롯한 북학파 젊은이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 오늘의 탑골공원 백탑 근처였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풍류를 즐기면서 한편으로는 짝퉁 세상을 희화화하되 다른 한편으로는 나라 걱정에 열정을 불태웠다. 연암은 박제가가 쓴 '북학의'에 붙인 서문에서 명분론에 치우친 북벌 대신에 이용후생론에 따라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는 북학을 강조하면서, 이것은 두 사람이 중국을 직접 본 뒤에야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일찍부터 비 오는 지붕, 눈 뿌리는 처마 밑에서 연구하고 또 술을 데우고 등잔 불똥을 따면서 손바닥을 치며 얘기했던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연암을 중심으로 하는 백탑파 모임과 같은 시절의 다산 정약용이 최연소자로 참여했던 경기도 광주의 천진암 모임은 모두 1800년 정조의 죽음과 함께 단기적으로는 그들이 원했던 실학의 꿈을 현실화하지 못하고 허학의 비극적 운명을 맞이해야 했다. 그러나 길게 보자면 오늘과 내일의 한국을 지탱해 나갈 지적 상상력의 든든한 받침대 역할을 하고 있다.

그 구체적 예를 박지원의 '허생전'에서 찾아보자. 요즈음 국제정치 시각에서 보면 당시 필수품이었던 과일과 말총의 매점매석 등으로 짧은 시간에 변 부자에게 빌린 돈 만 냥으로 백만 냥을 만들어 국내 복지문제를 한 방에 해결하는 앞의 얘기보다 뒤에 나오는 대(對)중국 그물망 외교론이 훨씬 흥미롭다. 변 부자와 함께 찾아온 어영대장 이완이 허생에게 북벌 계책을 물으니까 허생은 의외의 세 묘책을 제시한다.

첫째 와룡선생 같은 지략가를 삼고초려하여 지식외교를 하고, 둘째 명나라가 망한 후 조선으로 온 명의 병사들을 혼맥과 금맥의 그물망으로 엮고, 셋째 젊은이들을 가려뽑아 변복·변발시켜 대거 중국으로 유학보내서 벼슬할 수 있도록 만들고, 또 서민들은 중국에 건너가서 장사를 할 수 있게 청의 승낙을 받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식인과 장사꾼들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중국을 제대로 파악한 다음 청의 중심 세력들과 유대관계를 긴밀하게 구축해서 사실상 천하를 호령하거나 최소한 대국으로서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허생은 당시 힘의 역학관계를 현실적으로 고려해서 북벌론은 비현실적이라고 보고 현실적 대안으로서 소프트 파워 외교론인 북학론을 제시했던 것이다.

힘들었던 2009년은 가고 기대하는 2010년은 다가온다. 세계경제위기에서 모범 탈출국으로 부상하고, G20 회의에서 명실상부한 가교 역할을 담당하는 복합외교에 성공하고, 남북관계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고, 국내정치도 난장판을 졸업하고 논의판으로 성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숙취만이 남는 모임이 아니라 21세기 백탑파 모임, 천진암 모임을 키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