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추색
하루가 다르게 날이 차가워지고 있다.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상강이 지난 지 한 주, 입동 또한 이레 앞에 있다. 공기가 차가워짐을 살결로도 실감하는 때라 그런지 예부터 시를 짓는 이들은 이즈음의 시간에 아주 민감했던 것 같다.
중국 진나라의 장한은 자기 고향의 명물인 순챗국과 농어회를 잊지 못해서 관직을 그만두고 홀연 고향으로 돌아갔다. 아마도 가을바람이 쌀쌀해지는 이 무렵의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유명한 고사에서 ‘순갱노회’라는 말이 유래했다.
시인 이백은 서리에 민감했던 모양이다. “백로 한 마리가 가을 물에 마치 흰 서리 떨어지듯 날아와 외로이 앉는다”라고 썼고, 시 ‘월녀사(越女詞)’에서는 “나막신을 신은 여인의 발은 서리같이 흰데/끝이 뾰족한 버선조차 신지 않았네”라고 써서 월(越)나라 여인들의 풍정을 노래했다. 물론 여인의 찬 발을 이백은 보았을 것이다.
17자로만 구성된 참으로 짧은, 일본의 하이쿠 시편들을 최근에 다시 보았는데, 하이쿠 시편들을 읽으며 혼자 재미있어 한 것은 일본의 하이쿠 시인들의 시에 등장하는 추색(秋色)의 내용이었다. 독특하게도 ‘무’가 더러 등장했다. 1000구가량의 하이쿠를 남긴 마쓰오 바쇼는 이렇게 썼다. “국화 진 다음 무보다 더 나은 것 또 있을거나.” 국화의 고아함도 좋지만 가을 겨울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식 재료인 무도 좋다는 소탈한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오랜 시간 방랑 생활을 했던 바쇼는 자신의 홑지고 외로운 처지가 무 밑동 같다고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고바야시 잇사의 하이쿠에도 이 무가 등장한다. “무를 뽑아서 무로 내가 갈 길을 가르쳐 주었네.” 고바야시 잇사는 시골길을 가고 있었던 모양인데, 길을 묻자 무를 뽑던 농부가 뽑아 든 무를 들어 길을 일러 주었다는 것이다. 공중에 들어 올린 무에서 흙냄새가 훅 끼쳤을 것이다.
시집을 넘겨 읽다 덮고는 이 가을에 내가 보고 있는 추색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붉고 노란 가을 잎사귀인가. 마르는 풀잎인가. 넓어지는 침묵인가. 생각 끝에 도토리가 생각났다. 시골집에 가서 본 그것들 때문에 생각이 그렇게 가 닿은 듯했다. 쪽마루 가득 동글동글한 도토리들이었다. 반질반질 윤이 나는 이마들, 야무지고 올찼다. 어머니가 수시로 나무 아래 가서 주워왔다고 하셨다. 손이 많이 가지만 나중에 묵을 만들어 먹자고 하셨다. 나는 이 도토리들만 먹어가며 겨울을 나도 한참 남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뱀과 벌이 사나워지는 때이니 이제 산에는 그만 가시라고 말씀 드렸다. 그리고 도토리 몇 개를 주머니에 넣어 왔다.
내 책상 한 귀퉁이에는 열매와 씨앗들이 몇 개의 접시에 조금씩 쌓여 있다. 언젠가 선운사에 가서 하얀 차꽃을 보고 돌아온 날에도 차나무 열매를 얻어와 접시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작은 접시 위에 올려놓은 도토리를 보면서 도토리가 나무에서 툭, 툭, 떨어지는 그 낙하의 첫소리를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떨어져 구르는 소리를 떠올려 보았다. 가슴을 가볍게 톡, 톡 건드리는 게 있었다. 순챗국과 농어회, 서리, 무 아니어도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도토리 한 알에도 가을이 묻어 있다. 내게 도토리는 가을의 눈동자쯤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사람들은 무엇에서 추색을 읽고 있는지 궁금한 가을날이다.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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