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바 닥 / 정호승
내 집을 떠나 길바닥에 나앉은 것은
푸른 하늘을 끝없이 날던 종다리가 잠시 길바닥에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내 집을 떠나 길바닥에 나앉은 것은
봄바람에 흩날리던 민들레 홀씨가 길바닥에 내려앉아 드디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 너를 떠나 기어이 길바닥에 나앉은 것은
길바닥에 나앉아 마음놓고 우는 아이만큼 착하고 아름다운 사람을 만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 너를 떠나 길바닥에 나앉아 밤마다 개미집에 잠드는 것은
개미집에 켜진 조그만 등불 하나가 밤새도록 밤을 밝히기 때문이다
내 길바닥에 나앉아 눈을 뒤집어쓰고 고요히 기다리는 것은
눈내린 길바닥마다 수없이 새들의 발자국을 찍고 싶기 때문이다
'♣ 詩그리고詩 > 한국명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묵 상 / 천양희 (0) | 2010.01.14 |
---|---|
새벽의 시 / 정호승 (0) | 2010.01.14 |
나무들의 결혼식 / 정호승 (0) | 2010.01.14 |
청춘(靑春) - 사무엘 울만 (0) | 2010.01.11 |
국화옆에서 / 서정주 (0) | 2010.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