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음침해 / 이생진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나는 좀 음침해
내 속은 나 밖에 몰라
하지만 음지와 양지를 비교할 때
시도 버섯처럼 음지에서 자라거든
그래서 나는 시에 적성이 맞아
고로 나는 시를 쓰기 위해 음침해야 해
혼자 집을 떠나
혼자 산에 오르고
혼자 굴속을 기웃거리고
혼자 바닷가를 거닐고
이러다 언젠가는 혼자 죽을 거야
당연하지
나는 그런 면에서 음침해
시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런 성격 때문에 시가 생기는 것이겠지
그 음침함으로 시를 쓸 수밖에 없어
시를 읽을 때 그것도 이해해줘
나는 솔밭 속에서 이런 생각을 했어
넓은 바다에서도 이런 생각을 했어
무인도에 혼자 있을 때에도 이런 생각을 했어
이해해줘
이 외로운 습도를 이해해줘
나를 잘 이해하는 것은 섬이야
내가 동굴 속처럼 음침하다는 것을
동굴이 알고 있어
나는 음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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