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은 호수로 가 잠든다
이순원
그는 왜 하필이면 그곳에 가 죽었을까.
처음 그의 소식을 알려 온 사람은 강릉에서 체육사를 하는 권이었다. 아니, 알려 온 것이 아니라 해가 바뀐 지 보름도 더 지난 어느 날 내가 전화를 했을 때 다른 이야기 끝에 권이 그의 이야기를 했다.
“참, 니 영해 잘 알지?”
갑자기 영해라니.
친구들은 왜 아직까지도 내가 그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권이 아니라 아마 다른 친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너는 그를 잘 알지 않느냐고. 그러나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엔 거의 그를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아마 봤다 해도 그건 다른 친구들 숲에 얼핏 스쳐 지나가는 모습 정도로였을 것이다. 학교를 다닐 때에도 그는 교실에서건 운동장에서건 거의 있는 듯 없는 듯하던 친구여서 후에도 누군가로부터 특별히 그의 소식을 들은 적도 없었고, 내가 먼저 누구에게 그의 소식을 물었던 적도 없었다. 아마 나뿐 아니라 그때 함께 학교를 다녔던 친구들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그는 그냥 그런 친구였다. 이태 동안 시골에서 함께 학교를 다니고 또 학교를 오가는 길에 여러 이야기를 나누긴 했어도, 어떤 특별한 기억 속에가 아니라 이제는 그것도 마지막으로 펼쳐본 게 십 년은 더 되었지 싶은 고등학교 졸업 앨범 속에나 희미하게 자리하고 있는 420명의 동창 가운데서도, 어느 자리에 사진이 있는지 모를 지극히 평범하고도 평범한 동창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학교를 졸업한 지 이십 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동창들 사이에서 나는 언제나 그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어야 했다. 시간이 나면 언제 한번 강릉에 내려와 함께 스키나 타러 가자고 하던 끝에 ‘참, 니 영해 잘 알제?’ 하고 묻는 권의 말투 또한 그랬다. 너는 걔 소식 알고 있지? 하고 묻는 것이 아니라 늦게라도 너는 걔 소식 알아야 할 사람이잖아, 하는 식이었다.
“영해가 왜?”
나는 그렇게 조용하고 평범하던 친구에게도 무슨 놀랄 만한 뉴스가 있느냐는 식으로 가벼운 호기심을 드러내며 물었다.
“야, 니는 같은 우추리끼리도 아직 모르는 모양이구나.”
“인마, 걔 우추리를 떠난 지가 언젠데.”
“그래도 그렇지. 걔 지난가을 대관령에서 죽었다는데.”
“그래?”
그건 정말 뜻밖의 소식이었다. 이제 막 마흔이 된 나이에 또 한 명의 친구가 죽었다는 소리도 그랬고, 그렇게 죽은 그 친구가 그토록 있는 듯 없는 듯 평범해 보이던 친구라는 것도, 또 그가 죽은 곳이 대관령이라는 것도 그랬다. 권으로부터 금방 그가 지난가을 대관령에서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도 나는 왠지 그런 친구들이야말로 학창 시절 우리에게 보인 자신의 평범한 모습 그대로 보통 사람들의 평균 수명 정도까지는 평범하게 살다가 죽어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권도 스키 이야기를 하던 끝에 갑자기 그가 생각난 것이 아니라 대관령에 있는 콘도를 빌려서 어쩌구 할 때 대관령이라는 말과 함께 그가 생각난 것 같았다. 그가 죽었다는 지난가을 이후에도 권과 나는 보름에 한 번 정도는 서로 전화를 했었다. 아니, 전화만 했던 것이 아니라 지난해 십일월 말에 바쁜 원고들을 끝내고 일주일쯤 강릉에 가 있는 동안에도 나는 두 번이나 그의 체육사에 들러 한번은 저녁을 같이하고, 한번은 그냥 가게에 앉은 채로 그의 아내가 끓여 내온 커피를 함께 마시고 오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권이 그때 그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게 그의 소식을 듣고도 나하고 마주 앉았을 땐 미처 생각이 안 나서 그랬던 것이라 해도 그렇고, 또 그때까지는 아직 그의 소식을 듣지 못해 그랬던 것이라 해도, 그건 두 경우 다 그 친구가 동창들 사이에서 그만큼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였기 때문일 것이다.
“사고로?”
왠지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도 나는 그렇게 물었다. 대관령을 넘다가 교통사고라도 난 것이냐고.
“아니, 그런 게 아니고.”
“그럼?”
“나도 나중에 얘기를 들었는데 임파선암인가 뭔가 하는 걸로 서울 병원에도 꽤 오래 가 있었던 모양이야.”
“암으로 말이지?”
“응. 그러다 가망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는지 다시 강릉에 내려와 있다가 지난가을에 누워 있기 답답하다면서 잠시 바람 쐬러 나간다고 하고선 집을 나갔는데, 대관령에 가 죽어 있는 걸 찾아왔다더라.”
“대관령 어디?”
물으면서도 나는 산보다는 예전 그가 살았다는 횡계나 차항 등 그곳의 어느 마을을 생각하였다. 그런데 권의 말은 그게 아니었다.
“니 대관령 매봉이 어딘지 알지?”
“그래.”
마을이 아니라 산이라는 얘기였다. 매봉은 지금도 그곳에 있는 시골집 마당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대관령의 제일 높은 봉우리였다.
“그럼 선자령은?”
“그건 잘 모르겠다. 설명을 들으면 알 것 같은데.”
“강릉에서 대관령을 쳐다볼 때 대관령 말랑(고갯길 꼭대기)하고 매봉 사이에 조금 움푹 들어간 데가 있잖아.”
“그래.”
권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어릴 때부터 늘 한 모습으로 보아왔던 대관령의 전경을 눈앞에 떠올렸다. 자동차가 오르내리는 말랑 바로 옆에 말랑보다 조금 높은 자리에 위치한 송신소의 안테나가 눈이 가물가물한 모습으로 서 있고, 송신소와 매봉 사이의 중간쯤에 권이 말하는 대로 조금 움푹 들어간 듯 보이는 능선이 있었다.
“거기가 바로 선자령인데, 선자령에서 매봉 쪽으로 올라가는 중간쯤에 죽어 있는 걸 찾아왔다더라.”
“산에 말이지? 걔, 거긴 왜 갔는데?”
“그거야 모르지. 죽은 사람이 말을 하나 뭘 하나.”
“니는 언제 들었는데?”
“지난번 니가 여기 왔다가 올라간 다음 며칠 뒤에 망치가 지 마누라 데리고 볼링공하고 볼링화 사러 와서 얘기하더라. 지도 며칠 전에 다른 친구한테 들었다면서.”
망치라면 권의 가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전자 제품 대리점을 하며 그 지역 동창회 총무 일을 보고 있는 친구였다.
“느야말로 좁은 바닥에 살면서 빨리도 소식 듣고 산다. 그러면서 동창회 총무 노릇하는 놈도 그렇고, 그동안 전화 몇 번 하면서 그 얘길 지금 하는 니도 그렇고.”
“닌 뭐 여기 와 살면 안 그럴 것 같나? 날마다 들어앉아 있으니 우리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거다.”
“암만 그래도 그렇지. 가을에 죽은 친구 소식을 겨울에 알고…….”
“영해 걘 애가 원래 좀 그랬잖아. 여기 우리 군대 갔다 온 다음 동창회 시작한 지 십오 년이 다 되는데도 한번 안 나왔고. 직장도 몸이 아파서 그만두기 전까지 강릉이 아니라 속초 어딘가에 다녔다고 그러고.”
“거기 가서 죽어 있는 사람 찾기는 어떻게 찾았는데?”
“그거야 모르지. 매봉 바로 너머 삼양축산이 있으니 거기 목장 사람들이 발견한 건지, 아니면 그때가 가을이니까 등산객이 발견한 건지.”
“아니, 영해도 참…… 아프다는 사람이 거긴 어떻게 간 거야? 그 산중에까지.”
“그러니 하는 얘기지. 그 길이 오대산까지 이어지는 등산로긴 하지만 쉬운 길이 아니거든. 늘 쳐다보긴 해도 강릉 사람들한테도 잘 알려져 있는 길도 아니고, 닌 그 길 한 번도 안 가봤지?”
“거기 갈 일이 어딨냐, 내가. 대관령 넘으면 늘 집에 내려가기 바빴지.”
“거기까지 가는 길이 두 갠데 둘 다 쉬운 길이 아니거든. 대관령 말랑에서 능선을 타고 가는 게 그래도 쉽긴 한데 성한 사람도 말랑에서 거기까진 네 시간 걸리는 거린데. 매봉까지는 다섯 시간 걸리고.”
“또 한 길은?”
“보현사에서 선자령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는데, 그건 거리는 짧아도 워낙 가팔라서 이젠 우리도 엄두를 잘 못 내는 데고. 아마 차를 타고 말랑까지 가서 마지막 죽을힘을 다해 거기까지 간 모양이야. 아니면 애초 죽을 자리를 찾아 거기로 갔던지.”
“보현사?”
순간 비수 같은 무엇이 뇌리를 스치며 명치끝에 와 콱 걸리는 것이 있었다. 보현사라니…….
“몰라? 보광리 안쪽에 있는 절 말이야. 거기도 우추리하고 같은 성산면인데,”
“모르긴, 아니까 묻지.”
“거기서 우리 걸음으로 한 시간 반쯤 올라가면 선자령이거든, 전에 운동 삼아 망치하고 머루 따러 한 번 가봤는데 얼마나 힘든지 나중엔 머루가 옆에 있는데도 보기가 싫더라고. 길이 하도 가파르니.”
“걔 죽은 날짜가 언젠데? 정확하게.”
나는 왠지 꼭 그걸 알아야 할 것 같았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가을이라니까 구월이나 시월 언제쯤 되겠지.”
“망치도 그런 말 안 하고?”
“그 자식은 뭐 아냐? 그런데 그건 지금 니가 알아서 뭐하게?”
“어, 아니, 그냥…… 그럼 마누라도 있겠네. 애도 있고…….”
“그럼 있겠지.”
“그래. 영해라고 뭐…… 야, 끊자, 그만…….”
“왜 그러는데?”
“그냥…… 갑자기 머리가 좀 아픈 것 같아서…….”
“나중에라도 알아봐 줄까?”
“아니, 됐어. 그냥 그런 소식 들으니까…….”
“그래. 그럼 좀 쉬어가면서 해라.”
권이 먼저 수화기를 내려놓았는데도 나는 그것을 들고 망연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보현사라…….
선자령 아래…….
그러면 그날 그 절 앞에서 내가 본 여자는 누구였던 것일까.
전화기를 내려놓은 다음 나는 하던 일을 접어둔 채 책상 아래로 내려와 방바닥에 팔을 베고 누웠다. 머리가 아픈 것 같기도 했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자꾸만 그날 본 여자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대체 그 친구는 언제 집을 나가 대관령으로 갔던 것일까. 그리고 그 여자는 왜 하필이면 그날 보현사로 왔던 것일까. 그와 나 사이에도 우리가 몰랐던 어떤 인연이라는 게 있었던 것일까.
당장 권만 보더라도 영해를 알고 나를 아는 친구들은 우리가 어릴 때부터 한동네에서 자라 누구보다 서로 잘 알고 지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고등학교에 입학한 다음, 처음 그를 알게 되었다. 아마 그들은 우리가 시오 리도 넘는 학굣길을 늘 함께 걸어 다니니까 으레 한동네에서 자라 한동네에서 살겠거니 생각했을 것이다. 별명도 똑같은 ‘우추리’였다. 우리뿐 아니라 그때 시내 중ㆍ고등학교에 다니는 우추리 아이들 대부분의 별명이 저마다 학교에서나 교실에서 ‘우추리’로 불렸다. 그건 시내 장터에서도 그랬고, 공사판이거나 뒷골목 건달들 세계에서도 그랬다. 학교와 달리 그쪽에선 우추리에서 온 장꾼이나 우추리 출신의 인부, 우추리 출신의 건달을 그렇게 불렀던 게 아니라 셈이 좀 늦거나 눈치 없이 어리어리하고 동작이 빠릿빠릿하지 못하면 ‘넌 우추리에서 감자 팔러 왔느냐.’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강릉 사람들에게 ‘우추리’라는 말은 촌놈 중에서도 촌놈이라는 뜻이었다. 강릉에서 우추리가 제일 가깝고도 궁벽한 촌이었고, 또 그런 궁벽한 촌의 대명사였다. 고등학교 때 가을마다 심신 단련을 핑계로 소풍 외에 한 번 더 가는 토끼몰이도 매번 우추리로 갔다.
그러나 영해는 우추리에서 태어나 우추리에서 자란 진짜 ‘우추리’는 아니었다. 그가 강릉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온 가족이 대관령 너머에서 이쪽으로 이사를 온 것이었다. 집도 우추리가 아니라 강릉에서 우추리로 들어오기 바로 전에 있는 느림내란 동네였고, 거기서도 이태를 제대로 살지 못하고 다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그런데도 그는 졸업할 때까지 나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친구들 사이에 ‘우추리’로 불렸던 것이다.
느림내에 살며 함께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도 그는 이상하게 존재가 느껴지지 않던 친구였다. 어쩌다 둘이 가면 그가 옆에 있는 것이 느껴져도 한 사람이 더 있어 셋만 되어도 그는 함께 걷는데도 늘 있는 듯 없는 듯했다. 그래서 다른 우추리 아이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다 우리는 그의 집이 있는 느림내를 막 지나와서는 ‘참, 오늘 영해는?’ 하고 물을 때도 있었다. 말이 시오 리지 같은 또래의 친구들과 어울려 한 시간 반 가까이 산길과 들길을 걸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걷기가 쉽지 않은데도 그랬다. 그렇다고 늘 남의 얘기를 듣는 편인 것도 아니었다. 길을 걷다가 꼭 그를 지목해 물을 말이 있을 때면 한 번 묻고, 두 번 묻고, 때로는 팔을 치거나 어깨를 쳐서 다시 물어야 할 때도 많았다. 그는 여럿이 함께 어울려 있을 때에도 늘 혼자 걷고 혼자 생각하곤 했다.
아무리 다른 곳에서 이사를 온 친구라고 해도 그렇지, 이태나 함께 그렇게 등굣길과 하굣길을 함께 다녔는데도 그에 대해서나 그에게 얽힌 어떤 특별한 일들이 잘 떠오르지 않는 것도 우리가 그를 소외시켰던 것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 우리로부터 자신을 소외시켰던 때문일 것이다. 학교에서건 길에서건 그는 마치 우리로부터 저만치 떨어져 있던 사람 같았다. 그래서 등하굣길에 그와 함께 어떤 일을 꾸미거나, 어떤 일로 즐거워했거나, 어떤 일로 다투었던 적도 없었다. 말이 되는 소리든 말이 되지 않는 소리든 언쟁 같은 것도 늘 하는 아이들이 했지 그는 언제나 그런 일에선 비켜서 있었다. 봄부터 겨울까지 학교로 오가는 길옆에 철마다 우리들의 장난거리로 준비되어 있던 딸기밭이나 참외밭, 수박밭, 복숭아밭과 자두밭, 포도밭, 사과밭, 배밭, 밤나무밭, 하다못해 김장을 앞둔 무밭에 이르기까지 그와 함께는 어디에도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여럿이 그런 일을 꾸밀 때면 그는 늘 혼자 빠져 남보다 앞서 집으로 갔고, 둘이 있을 땐 그의 성격을 아는 내가 남의 집 밭에 들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건 다른 우추리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마 다른 친구와 이태 동안이나 길동무를 하며 학교를 다녔다면 미처 기억 속에 주워 담지 못할 만큼 많은 추억거리가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그렇게 함께 다니던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그 친구와의 사이에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할 이야기가 주저리주저리 떠올랐을 것이다. 물론 그와의 사이에도 그의 죽음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몇 가지 일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 역시 그가 대관령에 가서 죽었다는 소리를 들은 다음이니 떠오르는 생각들이지 살아 있는 그의 다른 소식을 들었거나, 그가 그냥 그의 집에서 어떤 병으로 죽었다는 소리를 들었다면 아마 그 이야기조차 떠오르지 않았을지 모른다.
아까 권이 전화로 선자령을 설명해 주지 않았다면 그곳의 움푹 파인 능선이 선자령인지 무엇인지 어쩌면 나는 영원히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하루에도 몇 번씩 대관령을 보고 자랐으면서도 우리는 그 봉우리나 능선마다의 이름을 몰랐다. 알 필요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우리 눈앞에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큰령의 높고 낮은 봉우리들과 능선 모두가 그냥 그대로 대관령이었던 것이다. 밤이면 자동차 불빛이 반짝하고 처음 보이는 데가 아직 우리가 넘어보지 못한 말랑이었고, 제일 높은 봉우리는 당장 눈에 드러나는 대로 다른 봉우리와 차별해 꼭대기라고 부르면 되었다. 그런 내게 그 산꼭대기의 이름이 매봉이라는 걸 처음 가르쳐준 사람이 바로 영해였다. 둘이서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잠시 남의 묏등에 앉아 쉬는 동안 그는 자기 발걸음으로 묏등을 이리 재고 저리 재며 내게 그 봉우리의 이름을 가르쳐주었던 것이다.
“참 이상하네.”
“뭐가?”
“저기 보이는 대관령 제일 높은 데가 매봉이거든.”
“매봉?”
“응. 그런데 여긴 대관령이 마주 보이는 자리에 쓴 묘들은 모두 관이 누운 자리를 매봉하고 일직선으로 맞추었네.”
“당연하지. 거기가 꼭대기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우리 집 선산이 대관령과 마주 보이는 자리에 있는데도 그걸 몰랐었다.
“여기선 그게 제일 높이 보이니까 매봉의 정기를 받으라고 그런 모양이다.”
그러면서 그는 그쪽으로 향해 누운 모든 산소들이 정기를 받으려 하는 매봉에다가 묘를 쓰면 어떻게 될까, 하고 물었다. 나는 거기까지 상여가 갈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뭐 꼭 상여가 가야 묘를 쓰나? 지가 가서 누우면 그게 묘지. 거기다가 파묻으면.”
“턱도 없는 소리 마라.”
“턱도 없긴. 옛날 좋은 묏자리는 그렇게 다 썼다는데.”
“그런데 닌 대관령 너머에서 살았으니까 저기 꼭대기에 가봤겠다.”
“그럼. 초등학교 5, 6학년 때부터 여기 올 때까지 일 년에 몇 번씩은.”
“거기서 보면 이쪽이 잘 보이제?”
“거기서 여기 강릉 쪽을 내려다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집들은 풀밭에 자갈을 쏟아놓은 것 같고, 바다는 거기서 봐도 워낙 넓으니 바다 같은데 경포 호수는 꼭 손 씻으려고 떠놓은 물같이 보이거든.”
“그렇게 작게?”
“그런데도 가만히 내려다보면 대관령 꼭대기에서부터 이쪽에 있는 것들은 뭐든지 다 비에 씻기고 뭐에 씻겨서 그 호수에 모여든 것처럼 보인다. 이런 묘들도 비에 씻기고 바람에 씻기면 혼이 거기로 모이고.”
“느 집안에 누가 지관 하는 사람이 있나?”
“지관은 왜?”
“니가 말하는 게 꼭 지관 같으니까.”
“닌 아직 대관령 위에 안 가본 모양이구나.”
“응.”
“거기 가서 내려다보면 저절로 그런 생각이 든다. 말랑에서 보는 것하고 매봉에서 보는 게 또 다르고, 호수는 매봉에서 봐야 제대로 보인다. 말랑에서는 호수보다 남대천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거기 어른들이 그러는데 말랑은 그렇게 좋은 자리가 아니라고 그러더라. 그래서 자동차 사고도 많이 나고.”
“남의 묏등에 올라가서 그런 말하니 니 정말 애 지관 같다.”
“그럼 니 이다음 내가 니 묏자리 봐줄까. 매봉 꼭대기에서 손도 씻고 세수도 하게.”
“닌 말 안 하다가도 한번 하면 꽤 한다.”
“재밌잖아. 산 보고 물 보고 그런 생각들을 하면. 가자, 그만.”
그러면서 그는 묏가에 놔둔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또 한번은 산길 쪽이 아니라 지금 그 길을 고속도로 포장한 신작로 쪽으로 대관령을 향해 마주 보며 집으로 돌아올 때였다. 아마 그의 집이 느림내에서 학산 어디로 다시 이사를 간다는 얘기가 나오던 무렵의 일이었던 것 같다. 그는 이제 이 길을 걸어 다닐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고 했고, 나는 학산은 그래도 우추리보다 학교 다니기가 가까울 것이라고 말했다.
“어릴 때 내 꿈이 뭐였는지 아나?”
“뭐였는데?”
“대관령 너머 이쪽에 와 사는 게 꿈이었다. 그래서 중학교 때에도 가끔 차항에서 자전거를 타고 대관령 말랑까지 와서 이쪽으로 내려다보기도 하고.”
“학교도 그래서 여기 와서 시험을 봤나?”
“아니. 그건 우리가 여기로 이사를 오니까.”
“나하고는 반대네. 가서 살고 싶은 마음까지는 없었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대관령 너머엔 어떤 세상이 있을까 그게 늘 궁금했거든.”
“나도 여기 산 밑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까 그게 궁금했는데.”
“나는 지난번 수학여행 때 처음 대관령을 넘어봤다. 남쪽으로는 중학교 수학여행 때 경주까지 가보고.”
“난 여기로 이사 오자마자 남대천 물 말고 느림내 우리 집 앞으로 흐르는 물을 따라 경포까지 가봤다. 나는 그 물이 경포 호수로 가는 줄 알았는데 그 물도 바다로 흐르더라.”
“호수는 호수로 흐르는 물이 따로 있다.”
“그런데도 나는 여기 있는 것은 물이든 뭐든 다 호수로 흘러 들어가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 물 따라 바다까지 내 발로 걸어가 봤는데도.”
“참 이상하다 니는. 호수보다 바다가 크구말군데.”
“대관령에서 내려다보면 바다가 땅보다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땅 위에서 땅을 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거든. 그러니 땅에서 무엇이 바다로 흐른다고 생각되지 않고 오히려 바다에 있는 물이 땅으로 흐른다고 생각된단 말이지. 어릴 때부터 땅보다 더 위에 있는 바다만 봐서 그런 모양이다, 내가. 그런데 호수는 그렇지 않고.”
“꼭 니처럼 말하는 건 아닌데 여기 어른들도 니하고 비슷하게는 말하는 게 있다. 사람이 소에 빠져 죽거나 논 한가운데 있는 수렁이나 저수지 같은 데 빠져 죽으면 시체는 그 자리에서 떠올라도 혼은 물 밑으로 난 숨 길을 따라 경포 호수로 간다고. 그래서 어릴 땐 나도 정말 그런 줄 알았다. 초등학교 때 우리 반 한 애가 맴소에서 목욕하다 빠져 죽었는데 걔 혼도 숨 길을 따라 거기 간 줄 알았고.”
“난 대관령 이쪽 사람들은 어디서 죽든 혼이 다 거기로 가 모여 있을 거 같은데. 산에 묻어도 비에 씻기고 물에 씻기고 해서.”
그때 우리는 사람이 죽으면 무엇이 될까, 나는 죽어서 또 무엇이 될까. 저세상은 있을까 없을까, 호수로 모이든 바다로 모이든 그런 다음 우리 영혼은 또 어디로 갈까, 나이답지 않게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그의 집이 있는 느림내까지 와서 서로 잘 들어가라고 인사까지 하고 난 다음 다시 몇 발짝 걸음을 옮기는데 저쪽 길로 들어선 그가 나를 불렀다.
“야, 이수호.”
“왜?”
“이다음 내가 죽으면 내가 제일 아끼던 거 있으면 니 주고 갈게.”
“그게 뭔데?”
“모르지 지금이야.”
“그래, 말로만이지만 고맙다. 잘 들어가라.”
“그래, 니도.”
정말 그와의 사이엔 그의 다른 소식을 들었다면 떠오르지 않을 맨 그런 기억들뿐이었다. 더구나 지난번 강릉에 내려갔을 때 보현사에서 그 여자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지난해 십일월 강릉으로 내려갔을 때 내가 보현사를 찾았던 건 크게 특별하거나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권의 말대로 그 절은 우리 집이 있는 우추리와 같은 면 내에 있었고, 눈이 쌓여 길이 막히면 몰라도 전에도 강릉에 내려갈 때마다 나는 자주 그 절에 갔었다. 처음 그 절에 갔던 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그때 할머니와 함께 그 절에서 자고 온 다음 해마다 나는 겨울이면 우리 집까지 날 데리러 온 스님을 따라 거기에 가 며칠씩 머물다 내려오곤 했다. 그 절에 열심이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몇 해는 더 그랬을 것이다. 후에도 나는 거기 스님들의 얼굴이 바뀌기 전까지 자주 거기에 가 잠도 여러 번 잤고, 또 절만 둘러보고 내려오기도 했다. 예전엔 집에서 거기까지 걸어서 세 시간도 좋고 네 시간도 좋았지만 지금은 비포장길이라 해도 자동차로 사십 분이면 충분했다.
그날도 나는 자동차를 타고 절을 둘러본 다음 그 아래에 있는 안곡 약수터에서 물을 받아 올 생각이었다. 집에서 점심을 먹자마자 떠나 그곳에 도착해 법당에 들른 다음, 한 시간쯤은 이제까지 백 번도 더 쓰다듬어보았을 낭원대사 오진탑비와 그 아래쪽에 돌단지를 거꾸로 세워놓은 것 같은 스무여 기의 크고 작은 부도들을 차례로 쓰다듬으며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어릴 땐 그곳 부도에 낀 바위 이끼를 스님 몰래 긁어 와 손톱에 봉숭아 꽃물과도 같은 붉은 물을 들이기도 했다.
그때 한 여자가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는 법당 앞에서 스님의 배웅을 받은 다음 이쪽으로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하얀 치마에 긴 갈색 코트 차림이었다. 그러나 나는 갈색 코트에 가려진 흰 치마가 소복이라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여자는 내가 서 있는 낭원대사오진탑비 앞을 느린 걸음으로 지나갔다. 그런데 그때 왠지 내가 저 여자를 아래 보광리 버스 종점까지 태워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절에서 버스 종점까지는 빠른 걸음으로도 사십 분이 족히 걸렸다. 여자는 오른손에 흰 손수건을 들고 있었는데, 힘없이 걷는 걸음이 어딘지 모르게 측은해 보이기까지 했다. 저렇게 걷다 보면 한 시간도 더 걸리지 싶었다. 버스 종점에서 여자를 내려주고 나는 그 아래에 있는 안곡 약수로 가면 될 터였다.
여자의 모습이 언덕 아래로 사라진 다음 나는 천천히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마치 그러길 기다렸다는 듯 너무 빨리 뒤따라가는 것도 모양이 이상하겠다 싶어 자동차의 시동을 걸고 나서도 다시 담배 한 대를 피운 다음 출발했는데도 여자는 거기서 불과 삼백 미터 거리도 못 내려가 있었다. 여자는 왼쪽 길섶 가까이 붙어 서서 오른손으로는 수건을 얼굴로 가져가고, 왼손으로는 길옆의 마른 쑥대를 흔들듯이 어루만지며 걸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여자 옆에 차를 세웠다.
“마을까지 가시면 타시죠.”
나는 미리 내려놓은 운전석 창문을 통해 여자에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여자는 다시 수건을 입가로 가져갔다.
“보기보다 멉니다. 마을까지.”
하기야 여자도 올라와 본 길이니까 알 것이었다. 거기다 바람까지 쌀쌀했다.
“그럼…….”
나는 여자가 자동차 옆으로 돌아오는 사이 그쪽으로 허리를 굽혀 조수석의 문을 열어주었다. 이상한 일은 여자가 자동차를 타기 전까지는 입고 있는 흰 치마가 소복이라는 걸 몰랐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절 아래 탑비 앞에서야 옆으로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으니 그렇다 하더라도 자동차를 세우고 타라, 괜찮다, 이야기할 때 여자는 나를 향해 섰고, 위에 걸치고 있는 코트의 단추를 풀고 있었는데도 안에 입고 있는 옷이 소복인 걸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여자가 자동차에 오르며 코트 바깥으로 삐져나온 흰 고름을 다시 코트 안으로 단속할 때에야 비로소 그것이 소복임을 알았다. 타기 전에만 알았다 해도 나는 여자에게 불편하면 뒷자리에 타도 좋다고 말했을 것이다. 왠지 내 친절이 너무 조심성이 없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걷게 놔두어야 할 여자를 내 조심성 없는 친절이 그녀가 버스 종점까지 내려오는 동안 그 길에 뿌리고 내려와야 할 이런저런 생각들을 오히려 그대로 집에까지 가져가게 만드는 것 아닌가 싶었다.
“몰랐습니다. 상심한 일을 겪으셨군요.”
“……예에.”
여자는 서른서넛쯤 되어 보였고, 그래서 나는 친정 부모상쯤으로 생각했다. 그 나이에 남편 상이라는 건,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것조차 생각하지 않았다. 시부모 상 역시 혼자 절을 찾은 여자의 모습으로 왠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보기엔 왠지 더 애절하고 왠지 더 안타까워 보였다. 여자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슬픔의 빛깔이 그랬다.
“초면인데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괜찮습니다.”
“절에는 전부터 자주 다니셨는지요?”
“……아뇨. 엊그제 사십구재를 지내느라 오고…….”
“네에. 친정 부모님을…….”
거기까지는 말을 꺼냈지만 그 뒤에 잃었느냐는 말을 하기에도 무엇하고, 또 여의었느냐는 말을 하기에도 무엇해 나는 얼버무리듯 이쪽 창문 쪽으로 잠시 눈길을 돌렸다.
“손님께선 이 절에 자주…….”
여자 역시 말머리를 얼버무렸다.
“예. 저는 가끔 옵니다.”
“그럼 강릉에…….”
“아뇨. 서울에 삽니다.”
강릉에 산다면 동네 사람 차를 탄 것에 대해 오히려 여자가 불편해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런데 어떻게…….”
“예전엔 여기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강릉에 오면 가끔 여기도 들르고요.”
“……예에.”
그러곤 나도 입을 다물고 여자도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그렇게 입을 다물고 보니 버스 종점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여자는 상심해 있고 남자는 무심해 있는 그런 침묵 또한 왠지 서로를 불편하게 하는 것 같았다.
“부모님은 늘 우리보다 먼저 떠나시죠.”
“…….”
“우리가 철이 나서 이제 오래 사셨으면 하는 그분들은…….”
“…….”
“돌아가신 분 연세가 어떻게 되는지요?”
“…….”
여자는 대답 대신 눈가로 수건을 올렸다.
“죄송합니다. 저는 그냥…….”
“……아, 아닙니다.”
나는 다시 불편한 대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자동차로는 먼 거리가 아닌데도 비포장길이라 그곳까지 내려오는 게 십오 분이나 걸렸다. 그러나 막상 종점에 도착해 차를 멈추었을 때 그곳엔 버스도 없었고,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다. 우추리와 마찬가지로 그곳도 아침ㆍ점심ㆍ저녁 하루 세 차례밖에 버스가 다니지 않는 데였다.
“지금은 차가 없는 것 같은데요.”
나는 내게 고맙다는 인사까지 한 여자에게 내리지 않는 게 좋겠다는 뜻으로 그렇게 말했다. 함께 타고 오는 게 불편하긴 했지만 차도 없는 곳에 야박하게 사람을 내려놓는 일도 그랬다.
“그럼 어떻게 하나…….”
“제가 저 아래 큰길까지 모셔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저도 내려가야 하니까.”
나는 트렁크 속의 빈 물통을 생각했다. 큰길에서 다시 올라올 수도 있겠지만, 일단 큰길까지 나가면 왠지 그 물통은 빈 채로 집으로 가져가게 될 것 같았다.
“그럼…….”
여자는 왼손에 수건을 옮겨 쥐고 오른손으로 창문 위의 손잡이를 잡았다.
“아랫마을이 금산이죠?”
나는 다시 이곳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처럼 물었다.
“……예에.”
“거기까지 가면 차가 많을 겁니다.”
“……예에 ……감사합니다.”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저도 얼마 전 어머님을 잃었지만…….”
나는 그렇게 말해서라도 그쪽의 슬픔이 가벼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슬픔도 키우면 자꾸 커지게 됩니다. 그러면 떠나신 어른도…….”
“…….”
“사시다 보면 언젠가는 다…….”
“저…… 그런 게 아니라…….”
나는 여자 쪽을 돌아보았다. 여자는 수건을 다시 얼굴로 가져갔다.
“부모님이 아니라 남편이…….”
“…….”
“그래서 엊그제 사십구재를…… 그 절에서 지내고…….”
“죄송합니다. 저는…….”
“……아니에요.”
“그런지도 모르고…… 여기서 멀지 않을 겁니다. 큰길이.”
그때부터 나는 금산 버덩마을로 나올 때까지 아무 말도 않고 앞만 보고 운전을 했다. 여자의 말을 들은 다음에야 어쩐지 절에서부터 여자의 슬픔이 그렇게 보였던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다시 나의 조심성 없는 친절을 탓했다. 옆에 와 멈추니 어쩔 수 없이 타긴 했지만 차를 타며 여자는 또 얼마나 불편했을 것인가. 그런데 금산까지 나와 거기 고속도로 한 곁에 있는 시내버스 정류장 쪽으로 차를 대려는데 여자가 뜻밖의 부탁을 했다.
“저어…… 경포를 아시면…… 저를…… 경포까지 데려다 주실 수 있으……신지요.”
“댁이…… 거기 어디입니까?”
“그냥 거기까지…….”
“예. 뭐, 그럼.”
“그 사람이 그랬거든요. 자기 혼이 호수에 가 있을 거라고…….”
“그럼 물에…….”
이번에도 그 말 뒤에 빠졌느냐는 말을 나는 붙이지 못했다.
“아뇨. 산에서…….”
“사고가 나신 모양이군요. 산에 가셨다가…….”
“예에…… 그래서 그 사람을…… 호수가 보이는 대관령에 뿌리고…….”
“예에…….”
“오늘 절에도…… 어젯밤 그 사람이 꿈에 보이면서…… 저를 보고 절에 좀 가보라고…….”
“아, 그러셨군요.”
“안 간다니까 꼭 가보라고…… 그래서 갔던 길이었어요.”
“예에…….”
“가야지 내가 자기를 잊는다면서…… 그래서 더 안 간다니까…… 꿈에 화를 내면서 자꾸 가라고…….”
“몰랐습니다. 저는 그냥 걸어가시기에…….”
“그 사람도 그렇게 말해서…… 아침에 나올 때는 이제 그만 잊자고…… 절에 가서 마지막으로 그 사람에게 할 거 하고 잊자고…… 그렇게 나왔는데…… 그래서 절 앞에서 손님 만나고…… 손님한테 경포 호수가 있는 데까지 데려달라고 그러고…… 무슨 정신인지 제가…… 그런데도 거기 가면 그 사람 또 다른 뭐가 있을 거 같고…… 죄송해요…… 처음 뵙는 분께…….”
“아닙니다. 모셔드리죠.”
“……감사합니다.”
“산을 좋아하셨던 모양이군요. 그렇게 마지막 가시는 길까지 산에 가셨다가 가셨으면.”
“어릴 때 대관령에서 자랐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자기는 죽어도 대관령에 묻혀 이쪽 호수를 보고 눕는다고…… 몸이 안 좋은데 산에 가기 전에도 저보고 그런 얘기도 하고…… 전에도 나중에라도 자기가 죽은 다음 자기를 보고 싶으면 호수로 오라고 그러고…… 그러다 어제 꿈에 나타나선 자기를 잊으라면서 절로 오라고 그러고…….”
금산에서 바다까지는, 그리고 그 바다 옆의 호수까지는 절에서 내려온 길보다 거리는 멀어도 고속도로와 큰길로 연결되어 있어 이십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나는 여자의 말끝마다 예에, 예에, 하고 대답을 하거나 가끔씩 위로의 말 하나씩 찾아 조심스럽게 했던 편이었고, 여자는 금산에서 경포로 나가는 길까지 날 조심하면서도 자기 설움에 겨운 이런저런 말들을 많이 했다.
그날 나는 여자를 오수까지 데려다 주었다. 다른 일은 있을 게 없었다. 왠지 꼭 그래야 할 것 같은 마음에 내가 먼저 차에서 내린 다음 얼른 조수석 쪽으로 와 여자가 반쯤 연 문을 내 손으로 더 열어주었다.
“제가 미안하군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내려오셔야 할 분을…….”
“아닙니다. 그래서 이렇게 여기까지…….”
여자는 자동차 안에 있을 때보다 많이 진정된 얼굴이었다.
“기운을 내시기 바랍니다. 바람이 찬데 너무 늦게 돌아가시지 마시고…….”
“예…… 손님도…….”
“그럼 저는 그만…….”
나는 여자에게 고개를 숙여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여자도 두 손을 내려 무릎 위에 얹고 내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바람에 여자의 흰 고름이 다시 코트 바깥으로 날렸다. 나는 자동차에 오른 다음 가볍게 손을 들어 보였다. 여자가 다시 인사를 했다. 가냘프고 여린 얼굴이었다. 마치 여자를 거기에 혼자 버려두고 돌아서는 기분이었다. 만약 여자가 호수에 와서도 자기 곁에 함께 있어달라거나, 아니면 자기가 돌아갈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했으면 나는 또 어떤 거역할 수 없는 무엇에 끌려 여자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만 돌아가겠다고 인사를 할 때까지는 몰랐는데 여자가 내리고 난 다음 혼자 자동차를 끌고 강릉 시내로 들어오는데 나야말로 무엇에 홀린 것 같기도 하고, 잠시 전의 일이 무슨 꿈속에서 겪은 일 같기도 한 것이었다. 옛날 어른들 말로는 한밤중에 혼자 대관령을 넘으면 그렇게 하얀 소복을 한 여자가 길을 막는다고 했다. 그러나 그곳은 대관령도 아니었고, 여자가 먼저 길을 막은 것도 아닌데, 잠시 전 여자가 앉았던 옆자리를 돌아볼 때마다 자꾸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강릉 시내에 있는 권의 가게에 가 커피를 마시고 오던 날의 일이었다. 왠지 집에는 바로 들어가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잠시 그런 기분을 털어버리자고 간 곳이 권의 가게였다. 권은 내게 얼굴이 왜 그러느냐고 했고, 나는 별일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지금 막 집에서 나오는 길이라고.
“야, 내려와서는 좀 쉬어라. 내려와서까지 원고 잡고 싸움하지 말고.”
“원고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야.”
“니 얼굴이 지금 어떤지 아냐? 꼭 뭐한테 홀린 것 같은 게…….”
그날 나는 그의 아내까지 나와 있는 가게에 눈치 없이 한 시간이나 앉아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만약 그때 권이 그 친구의 소식을 알려 주었다면 나는 또 어떤 기분이었을까.
물론 그 여자가 그 친구와 꼭 상관있으라는 법은 없었다. 그러나 왠지 다음번 권의 전화가 걸려올 때까지 그 여자처럼 내가 먼저 그의 꿈을 꾸거나 여자의 꿈을 꿀 것 같았다.
야, 이수호.
왜?
이다음 내가 죽으면 내가 제일 아끼던 거 있으면 니 주고 갈게.
정말 그는 빈손으로 그렇게 대관령에 누워 발아래 호수에 얼굴을 씻고 손을 씻고 있는 것일까. 또 그래서 그날 그렇게 여자를 내게 보냈던 것일까.
잘 가라. 내 오랜 친구…….
우리 다시 호수에서 만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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