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時調)창작법

최정례 시인의 시평

시인 최주식 2010. 1. 24. 23:06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 이창기

 


한 사나흘 깊은 몸살을 앓다

며칠 참았던 담배를 사러

뒷마당에 쓰러져 있던 자전거를

겨우 일으켜 세운다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넣는데

웬 여인이 불쑥 나타나

양조 간장 한 병을 사오란다

깻잎 장아찌를 담가야 한다고


잘 있거라

처녀애들 젖가슴처럼

탱탱한 바퀴에 가뿐한 몸을 싣고

나는 재빠르게 모퉁이를 돌아선다


근데

이미 오래전에 한 사내를 소화시킨 듯한

저 여인은 누구인가

저 여인이 기억하는,

혹은 잊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이창기시집,[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문학과지성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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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라고 하는 저 여자여! 당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나 자신이 갑자기 나 아닌 다른 존재로 느껴지며 낯설어 질 때가 있다. 격렬한 고통과 싸우고 난 뒤, 혹은 열중해서 하던 일을 끝내고 그로부터 놓여나게 되는 순간에 우리는 문득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거울 속에서 마주친다. 낯선 내가 되어 마주치게 되는 거울 속의 또 다른 얼굴에는 나의 어머니나 아버지의 모습이, 또는 고모나 이모의 얼굴이 내 아이들의 모습과 함께 섞여 있다. 때로는 수십년을 함께 몸 대고 살아온 아내나 남편의 얼굴이 언뜻 비치기도 한다.

 이 시에서 시인이 사나흘 앓았다는 깊은 몸살이란 단순히 육체적 통증만을 수반하는 몸살은 아닐 것이다. 마음은 아프지 않은데 몸만 아프다는 것도 몸은 아무렇지 않은데 마음만 아프다는 것도 몸살의 통증을 제대로 표현한 말은 아닐 것이다. 몸살은 늘 팔 다리의 통증 뿐 아니라 기운이 빠지고 깊은 곳에서 몸과 마음이 함께 떨리는 것과 같은 오한을 동반한다. 어떤 열망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하려다 좌절했거나 혹은 성취했을 때 우리는 그일을 하느라 “몸살을 앓았네” 라고 표현함으로써 몰입되어 있던 순간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함께 말한다.

 한 사나흘 앓다 일어난 시인 화자는 참았던 담배를 사러 가려고 자전거를 일으켜 세운다.   여기서 뒷마당에 쓰러져 있던 자전거는 몸살을 앓느라 쓰러져 누워있던 시인의 육체를 닮았다. “쓰러져 있던” 과 “겨우 일으켜 세운다” 라는 구절이 시인의 몸을 주체로 할 때도 함께 통용되는 단어들이다. “뒷마당”이라는 시어도 시인이 앓고 누워있던 소외된 공간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의미를 포함한다. 시인은 뒷마당에 쓰러져 있는 자전거와 같이 한 사나흘 캄캄한 방안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앓아 누워 있었을 것이다. 시인이 앓고 난 몸을 겨우 일으켜 세워, 자전거에 몸을 싣고 나가 보려고 바퀴에 바람을 넣을 때 “웬 여인이 불쑥 나타나 양조 간장을 사오라” 한다. “양조 간장”과 “깻잎 장아찌”는 우리 일상에서는 흔하고 진부하기 그지없는 사물들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 단어들은 갑자기 둔갑하여 낯설고 신선한 시어로 다가온다. 그것은 너무나 익숙해진 아내의 얼굴과도 같다. 이처럼 일상에 흔히 널려있는 사물이 낯설게 드러나 보일 때, 우리는 신선한 충격과 함께 시적 순간과 만나게 된다. 수십년을 몸 부비고 살아 이젠 거의 나 자신과 한 몸이 되어버린 아내가 왜 갑자기 낯선 얼굴로 변해 내가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생경한 모습으로 닥쳐오는가. 그 순간은 현기증을 일으키면서 동시에 세상의 온갖 사물들이 낯설게 다가오는 시적 순간이 된다. 이 현기증은 몸살을 앓고 나서 기운이 빠져있는 시적 화자의 상태와 같이 시를 읽는 필자에게도 급속하게 전염 된다.

  시인이 전하는 “잘 있거라”라는 고별의 인사는 너무나 익숙해져서 이젠 자신의 몸이나 다름없는 아내를 향하여 던지는 전언이라고 할 수 있지만, 깊은 몸살을 앓던 자신의 육체를 향해 ‘그만 앓고 일어나 나아가라’는 말이기도 하다. 시인은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는 바람 속에 몸을 맡겨 새로운 생기를 얻으려 한다. 아니 스스로 새로운 몸을 향해 페달을 밟아 나아가려 한다. “처녀애들 젖가슴처럼” “탱탱한 바퀴에 몸을 싣고 재빠르게 모퉁이를 돌아”설 때, 시인은 문득 다시 묻는다. 낯선 여인이 되어버린 아내에게 혹은 자신에게 “이미 오래전에 한 사내를 소화시킨 듯한 저 여인은 누구이며, 저 여인이 기억하는 혹은 잊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라고.

  자신이 무엇인지, 내가 누구인지를 묻고 싶을 때 어떤 사람들은 여행을 떠난다. 어릴 때 살던 고향 주변으로 가 서성이거나, 옛날에 먹던 음식 같은 것에 집착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한다. 그것들을 바라보거나 몸에 밀착시켜보는 것은 어쩌면 숨겨진 나의 모습을 확인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많은 문학 작품 속의 인물들이 자신을 찾기 위해 고향 주변을 서성이거나, 고향이라고 생각되는 곳을 찾아 먼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돌아와 낯선 자기 얼굴을 들여다 본다. 이 시에서 화자가 앓던 깊은 몸살이란 어쩌면 나를 찾고자 하는 긴 여행, 김승옥 식의 ‘무진기행’인지도 모른다. 안개 낀 거울 속에서 내가 확인하게 되는 편린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방황의 시간 속에서 혹은 고통과 싸우던 그 어떤 순간에 변해 버린 자신의 낯선 얼굴을 본다. 두터운 안개 속에 실체를 드러내 보여주지 않는 너는 누구인가? 아내라고 하는 저 여자여 ! 당신은 누구이며 당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믿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최정례 시인

 

 1955년 경기도 화성 출생, 고려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 1990년『현대시학』에 시 「번개」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1994년 첫시집 『내 귓속의 장대나무숲』, 1998년에 두번째 시집 『햇빛 속에 호랑이』, 2001년에 세 번째 시집 『붉은 밭』 2006년 네번 째 시집 『레바논 감정』간행. 1999년 제10회 김달진 문학상, 2003년 이수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