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이야기 / 이순원 (소설가)
가장 부지런한 나무가 가장 일찍 일어나 가장 먼저 꽃을 피울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매화나무의 부지런함을 따라갈 나무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눈으로 보면 참으로 게으르게 봄이 다 지나가는 4월 말이나 되어서야 겨우 잎을 내미는 나무가 있다. 다른 나무들은 다 꽃을 피우고 잎을 내미는데도 그는 죽은 듯이 감감하다. 그러나 그는 다른 나무보다 더 긴 겨울잠 끝에 일어나 그때부터 부지런히 늦봄, 초여름, 한여름, 이렇게 일년에 세 번 꽃을 피우고, 그때마다 가지가 찢어지도록 많은 열매를 맺어 가을에 한꺼번에 익힌다.
다른 나무보다 게을러서 겨울잠을 길게 자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준비를 하기 위해 다른 나무보다 길고도 충실하게 겨울잠을 자는 이 나무가 바로 대추나무이다. 지금 겨울잠을 자듯 잠시 움츠리고 있는 그대, 어쩌면 그대가 대추나무일지도 모른다.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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