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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끼니를 그냥 거를 수도 없다. 뭔가 먹기는 먹어야겠는데. 진종일 얼음물을 너무 자주 마셔서 그런지 입안이 깔깔한 게 통 입맛이 당기지 않는다. 밥 대신 뭔가 간단하게 한 끼를 때울 만한 그런 음식은 없을까. 입에 넣으면 아무런 부담 없이 그저 술술 넘어가는 그런 음식이 없을까. 있다. 국수다. 국수는 초여름 입맛이 없을 때 간단하게 한 끼를 때우기에 참 좋은 음식이다. 국수는 물국수든 비빔국수든 밥처럼 위에 부담을 주는 그런 음식도 아니다. 그저 혀끝에 쫄깃하게 감기는 부드럽고 매끄러운 면발을 씹으며 몇 번 후루룩거리다보면 금세 한 그릇 뚝딱 사라지는 음식이 국수가 아니던가.
어디 그뿐이랴. 국수는 산모가 젖이 부족할 때도 일종의 부적처럼 쓰였다. 이 때에는 병 속에 국수를 넣고 우물가로 가서 두레박으로 금방 퍼올린 우물물을 병에 넣은 뒤 산모의 목에 걸고 병 속에 든 물을 쏟았다. 그렇게 하면 산모의 젖이 풍부해진다는 것이었다. 이는 국수의 길이와 물의 생산력이 합쳐진 일종의 주술이었다. "사실 국수란 건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겠어요. 제 아무리 조리를 잘한다고 해도 국수는 국수지요. 저희 집 국수맛의 비결은 멸치 다싯물에 있어요. 보통 일반 국수집에서는 다싯물을 낼 때 멸치와 다시마, 무, 파, 명태 대가리 등을 넣고 오래 우려내지만 저희는 멸치 한 가지만 넣고 5시간을 우려내요." 경남 김해시 흥동 906-2번지, 천년 고찰 흥부암이 자리 잡고 있는 임호산 자락 아래 국수 가락처럼 길게 드러누운 '흥부국수'. 지난 해 12월에 문을 열었다는 '흥부국수'는 그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올해 초 전유성 최유나의 <지금은 라디오시대>와 강석 김혜영의 <싱글벙글쇼>에 소개될 만큼 널리 알려진 국수전문점이다.
그 스테인리스 국그릇 안엔 자그마한 스테인리스 밥그릇이 하나 더 들어 있다. 아마 스테인리스 국그릇에는 계란껍질을 담고, 스테인리스 밥그릇에는 계란을 찍어 먹을 소금을 담으라는 것임에 틀림없다. 근데, 바구니 안에 담겨진 삶은 계란은 그냥 계란이 아니다. 멸치국물에 4시간 동안 삶은 계란이다. 어디 하나 먹어볼까. 삶은 계란의 껍질을 벗기자 계란 속이 하얗지가 않고 옅은 갈빛이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침이 꼴깍 하고 넘어간다. 갈빛 계란을 소금에 찍어 한입 물자 독특한 맛이 혀끝을 농락한다. 삶은 계란 특유의 비릿한 맛은 온데간데없고 입 안에 구수한 맛이 맴돌면서 뒷맛이 아주 깔끔하다. "물국수를 드실랍니까? 아니모 비빔국수로 드실랍니까?" "날씨도 덥고 하니, 물국수가 낫지 않겠어요?" "그럼 먼저 물국수를 드신 뒤, 입가심으로 비빔국수도 조금 드셔보십시오. 막걸리 안주도 할 겸."
삶은 부추와 물에 오래 불려 단맛을 뺀 단무지, 잘 볶아 으깬 고소한 깨소금과 양배추, 오이, 상추 등이 수북하게 올려진 물국수를 바라보자 입에 침이 절로 고인다. 특히 진한 갈빛으로 잘 우러난 멸치 다싯물을 바라보자 이내 코끝에 구수한 내음이 맴돌면서 절로 침이 꿀꺽 삼켜진다. 각종 채소가 올려진 물국수를 진한 갈빛 멸치 다싯물에 말아 한 젓가락 떠서 입에 넣자 쫄깃한 면발이 잠시 씹히는가 싶더니 몇 번 씹을 새도 없이 그냥 목구멍을 타고 술술 넘어가 버린다. 물국수가 순식간에 사라진 개운한 입 안에는 고소하고도 담백한 멸치 다싯물의 향기가 그득하다. '후루룩~ 후루룩~ 쩝쩝!' 숨 쉴 틈 없이 물국수를 건져먹는 사이사이 슝늉처럼 쭈욱 들이키는 구수하고도 개운한 국물맛도 끝내준다. 그렇게 서너 번 후루룩 쩝쩝거리고 나자 이내 물국수 한 그릇이 게 눈 감추듯 사라지고 없다. 물국수 한 그릇이 속 풀이까지 후련하게 시켜주면서 이렇게 맛깔스러울 수가 있다니.
"그동안 전국 곳곳의 유명하다는 국수집은 다 뒤지고 다녔어요. 그때 국수와 관련된 자료도 많이 구했고, 저만의 노하우를 쌓으며 국수의 달인이 되려고 엄청 노력했지요. 그렇게 수없는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결국 국수의 제 맛을 내는 것은 다싯물이라는 것을 깨치게 되었지요." 그동안 맥도날드 등 음식과 관련된 회사에서 오래 일을 하다 요즈음은 조용히 국수를 삶으며 살고 있다는 흥부국수 주인 조규필(40)씨. 조씨는 "국수는 쫄깃하면서도 미끄럼을 타듯이 목구멍을 타고 술술 넘어가는 그 맛이 일품"이라며, 비빔국수는 집에서 담근 고추장에 여러 가지 과일과 채소를 채 썰어 넣고 참기름과 깨소금을 듬뿍 얹어야 제 맛이 난다고 말한다. "멀리서 소문을 듣고 찾아온 손님들을 위해 국수를 삶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조씨. 조씨는 단골손님들이 찾아와 "여름철 입맛이 없을 때 흥부국수 한 그릇 후룩룩 쩝쩝 소리를 내면서 먹으면 온몸이 날아갈 듯이 개운해지면서 기분까지 좋아진다"고 말할 때가 가장 뿌듯하고 즐겁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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