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끈 / 윤준경
어둑한 사랑채에서 할아버지는 노끈을 꼬고 계셨다
잘 다녀오너라 하실 때에도 잘 다녀왔니 하실 때에도
긴 가래를 목으로 넘기시며 노끈을 꼬셨다
노끈은 길게 이어져 둥근 타래를 만들며
구부러진 시렁 위에서 아무의 눈길도 받지 않았다
할머니는 이따금 아무짝에 쓸모 없는 짓이라고 투정을 하셨고
그런데 어느 날은 "노끈이나 꼬시구려" 하며 누워 계신 할아버지를 부추기셨다
나는 노끈 없는 할아버지를 상상할 수 없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할아버지는 노끈을 꼬지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없고 노끈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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