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에 빠진 의자 / 유종인
낡고 다리가 부러진 나무의자가
저수지 푸른 물 속에 빠져 있었다
평생 누군가의 뒷모습만 보아온 날들을
살얼음 끼는 물 속에 헹궈버리고 싶었다
다리를 부러뜨려서
온몸을 물 속에 던졌던 것이다
물 속에라도 누워 뒷모습을 챙기고 싶었다
의자가 물 속에 든 날부터
물들도 제 가만한 흐름으로
등을 기대며 앉기 시작했다
물은 누워서 흐르는 게 아니라
제 깊이만큼의 침묵으로 출렁이며
서서 흐르고 있었다
허리 아픈 물줄기가 등받이에 기대자
물수제비를 뜨던 하늘이
슬몃 건너편 산을 데려와 앉히기 시작했다
제 울음에 기댈 수밖에 없는
다리가 부러진 의자에
둥지인양 물고기들이 서서히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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