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용 시인
서울 출생. 동국대 국문과 졸업.
중국 북경 중앙민족대학원 석사 졸업.
1997년 『현대시학』등단.
1998년 시집 『광화문 쟈콥』 고려원
2006년 『넘치는 그늘 』천년의시작
우리시 회원. 한국시인협회, 국제펜클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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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갈치 사냥 / 김금용
하얀 속살에 박힌 은빛 오만함
베어 물 적마다
죽음의 향내가 감미롭다
희고도 검은 파도 무수한 담금질에
뜨겁게 번뜩이는 창칼로 곤두서서
긴 등뼈 은밀한 숨구멍마다 거칠게 뱉어내는 단조음
손끝에 감전되는
차고 매끄러운 네 등뼈를 두들기면
마지막까지 놓지못한 질긴 낚시바늘
도마위에서 핏빛 노을로 꽂힌다
방금 떠나온 바다를 돌아보며
등판에서 발끝까지 은사(銀絲)지느러미
절명의 끝에 서서도
마지막까지 격정의 춤사위를 벌이고
무릎 꿇지못한 눈빛
풍어 깃발 아래에서 사각 어망을 찢는다
모란꽃과 고추장 항아리 / 김금용
오월 햇살에 고추장 항아리 배부르다
열 남매 키운 기사식당 아줌마
저처럼 배부른 항아리 씻다가
붉은 입술 삐죽이며 함박웃음 짓는
장독대 옆 모란 꽃더미에 놀라
엉덩방아 찧으며 주저앉는다
눈치 빠른 봄바람
쓸쓸한 그녀 젖무덤 파고들며
주름 깊은 눈자위 군살 붙은
목덜미로 햇살을 부른다
장마와 가뭄을 이기고 오십 년
묵은 장맛으로 단맛 키운 항아리
오월 아침 모란꽃이 눈부셔도
굽은 허리 일으키는 산등성 너머로
우르르 몰려드는 꿀벌떼는
항아리 언저리에만 붙어 날개 비빈다
암술 올라타며 입술 부비다 말고
문 좀 열어라
배불뚝이 항아리를 두들긴다
담북장 햇살 / 김금용
한겨울 할머니 묘소엘 가면
겨울 햇살에서 담북장 냄새가 난다
고드름 굵게 쳐진 처마 아래
김장철부터 시름시름 말려놓은 무청 시래기
듬뿍 넣고 끓인 담북장에선
할머니 곰삭은 팔십 평생 속울음 냄새가 난다
대청마루 밑에 넣어둔 보랏빛 씨감자
부엌 한 편에서 싹을 틔운 푸른 대파
끓어 넘치는 뚝배기에서 송송 끓으면
겨울 햇살도 입맛 다시며
한 술 뜨는 숟가락에 서둘러 내리꽂힌다
둥근 상 빽빽이 둘러앉아 수다 피지 말라고
눈치 주던 어머니 앞에서 분주한 형제들 입질
일 년 내 거둬들인 쌀가마랑 잡곡 가마랑
새봄 서울로 공부 떠나는 아이들
꽁무니에 붙여 딸려 보내고 나면
꼭두새벽부터 소여물 끓이는
할머니 이마에 식은 땀 쉴새 없지만
한 뼘씩 커진 손자들 쑥대머리 너머로
창창한 뭉게구름이 달리기를 한다
굼뜬 겨울 햇살 끼어 든 침침한 아랫목에
눈감으신 허리 굽은 할머니
팔십 평생이 저토록 곰삭았을까
느티나무 노을 / 김금용
등 뒤에서 사래질치는 바람
돌아보면
아버지, 키 작아진 아버지
좁아진 어깨에 마음 닿을까 봐
앞서서 걸어가면
노을에 기대선 아버지
어둠 속 느티나무 된다
으쓱거리던 소프라노 종달새
봄날 저녁
저음으로 갈라져 목이 메면
동네 그림자 다 거느리던 느티나무
허리 구부리고 서서
커다란 손바닥 앞뒤로 흔들며
어여, 가
어여, 가
뒤돌아보지 말고
동백꽃 유언 / 김금용
오늘은 눈물이 마르지않네
눈감아도 출렁이는 빛 알갱이들 때문에
오늘은 눈 뜨지 않고도 날아갈 것이네
푸른 멍조차 붉게 번지는 일출 바다로
화들짝 피지 못한 사랑이지만
향기로운 피울음으로 지는 목숨이지만
온전한 것은 없다 했으니 무심히
몸 맡기고 모가지 떨어져 뒹굴며
꽃다운 모습 그에게 보낼 것이네
삼월 초순, 처서 날카로운
해의 살 낱낱히 박히는
향일암 절벽 끝 새벽 바다로
창호지 바르는 가을이면 / 김금용
말갛게 풀죽 끓여 창호지 바른다
쪽창 옆구리에 노란 감국 꽃잎
볼 부은 봉오리 몇 장 덧붙이면
한밤에 북녘 바람이 다녀갈 적마다
얼굴 묻으며 대신 울어준다는 창호지
지난여름 그림자 볼우물 깊이 패여
겨울을 두려워하는 개성댁 반찬내 밴
앞치마 위로 하늘하늘 꽃 햇살 밟고
노란 나비가 되어 내려앉는다
죽은 아이 머리에 꽂힌 꽃핀 하나
흘러내린 그녀 반백 머리에 꽂힌다
창호지 바르는 가을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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