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 / 한병준
빗물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전선
허공에서 헝클어진 수많은 저 전선가닥들
우루루 쾅!
어디서 합선이 되었는지 번쩍, 컴컴한 하늘이 번쩍인다
먹빛 하늘은 쉴 새 없이 굵은 선을 던져주고
전공인 지렁이는 전선을 받아
길바닥 구멍에 밀어 넣는다
맨홀로 몸을 틀며 들어가는 여러 가닥의 광케이블
선로가 된 고랑으로 굵은 선이 끌려간다
아차, 우레에 감전된 지렁이 전공
빛이 몸을 통과한다
순간 빗줄기가 지렁이를 읽어내고
끊어진 전선 조각이 지렁이를 휘감는다
꿈틀대는 신음이 구멍으로 딸려간다
전신주에 매달려 104호와 109를 연결하다
추락한 김씨처럼
하늘과 땅을 연결하고
서서히 몸을 조이는 지렁이
지렁이는 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고인 빗물이 사라지는 것은
햇빛 때문이 아니다
빗소리에 지금,
나는 감전 중이다
한병준 시인
경기도 화성 출생
2005년 <현대시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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