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발목 / 박지웅

시인 최주식 2010. 1. 28. 22:06

발목 / 박지웅

 

발목은 자란다 길 끝에서 잘라 버린 것은

어느 날엔가 돌아오는 것이다

생시보다 더 생시 같은 헛것의 힘으로

내 앞에 부들거리며 서는 것이다

넘보아선 안 될 떨어져도 갔어야 할 그 길에

나는 한 묶음 붉은 발목을 버렸다

그 후 나는 어지러운 슬픔을 안고

수십 갈래의 길들을 떠돌았으니

돌아서 저녁 짓는 아낙같이

生은 나와 눈 맞추는 일이 드물었다

발목은 자란다 길 끝에서 잘라 버린 것은

어느 날엔가 돌아오는 것이다

오래된 슬픔이 건장한 靑年으로 자라 듯

느리고 느린 속도로 녹두같이 선명한 생명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숨을 멈추지만 나는 들킨다

그것은 결코 헛것이 아니었음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나는 휘청거린다

발목 젖힌 채 걸어오는 저 서늘한 靑年의,

기필코 그 주인을 찾아오는 내 혈육의

뼈, 그 저린 곳을 더듬으며

나는 뼈저린 고백하는 것이다

버린 生이란 이렇게 눈감아도 보이고

그 그림자, 다시, 내 앞에 부들거리며 서는 것이다

 

 

 

  박지웅 시인

 

1969년 부산에서 태어나 추계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
2004년 계간 <시와 사상> 신인상 수상,

200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신

2007년 시집<너의 반은 꽃이다> 문학동네
현재 출판인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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