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져나간 자리 / 정다혜
설거지하다 그릇 속으로 그릇이 끼었다
세제를 넣고 부드럽게 달래 봐도
서로가 서로를 놓지 않는다
움직일 틈새도 없이 저리 오래 껴안고 있다니
나는 저 팽팽함이 두려워진다
꼭 낀 사기그릇 한참 만지작거리며 길을 찾다
하나를 살리기 위해 하나를 버린다
이것들 제 몸 부서질 줄 알고도
꼭꼭 끼어 있었단 말인가, 깨어져
한 그릇이 한 그릇에서 빠져나간 그 자리
그릇의 피가 흥건해진다
내가 살기 위해 너를 부셔내야 했던
어미의 옹이진 자궁이 그날처럼 핏빛이다
내게서 빠져나간 것이
나를 할퀴고 있다
시집 <스피노자의 안경> 2007년 열린시학
정다혜 시인
대전 출생
2005년<열린시학> 으로 등단
시집 '그 길 위에 내가 있었다'
2007년 시집 '스피노자의 안경' 열린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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