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벌레 / 고미경

시인 최주식 2010. 1. 29. 22:39

벌레 / 고미경

 

 

  나는 뼈가 없는 동물입니다 뼈가 없게 된 데에는 먼 조상이 뼈와 엿을 바꿔먹었다고도 하고 잘못된 사랑으로 벌을 받아 유전된 것이라고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나를 천하다고 말합니다 뼈대 없는 가문에다 역사도 없고 사상도 없다고 손가락질까지 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뼈가 없으니 생각이 없어 좋을 때도 있습니다 생각이 없으니 번뇌도 없습니다 번뇌가 없으니 싸울 일도 없습니다

 

 뼈는 무기입니다 뼈는 칼날입니다 뼈는 주먹입니다 뼈는 증오입니다 나는 뼈가 없어 비무장지대입니다 아니 꽃잎입니다 입술입니다 젖무덤입니다

 

 온몸으로 기어가는 바닥이 나의 하늘입니다 함부로 침 뱉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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