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해바라기 / 박성우

시인 최주식 2010. 1. 29. 22:40

해바라기 / 박성우

 

        담 아래 심은 해바라기 피었다

 

        참 모질게도 딱,
        등 돌려 옆집 마당보고 피었다

 

        사흘이 멀다 하고
        말동무 하듯 잔소리하러 오는
        혼자 사는 옆집 할아버지 웬일인지 조용해졌다

 

        모종하고 거름내고 지주 세워주고는
        이제나 저제나 꽃 피기만 기다린 터에
        야속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여
        해바라기가 내려다보는 옆집 담을 넘겨다보았다

 

        처음 보는 할머니와
        나란히 마루에 걸터앉은
        옆집 억지쟁이 할아버지가
        할머니 손등에 슬몃슬몃 손 포개면서,
       
        우리 집 해바라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시와사람 (2006년 겨울호)

 

자귀꽃 / 박성우

게으름뱅이 자귀나무는
봄을 건넌 뒤에야 기지개 켠다
저거 잘라버리지, 쓱쓱 날 세우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연초록 눈을 치켜뜬다
허리춤에서 부챗살 꺼내 펼치듯
순식간에 푸르러져서는 애써 태연한 척,
송알송알 맺힌 식은땀 말린다
서두른다고 서둘렀는데

쪼매 늦었죠, 니년은 그새
밀린 지각비가 얼만 줄이나 알어?
양지다방 김양은 허기만 더할 말대답 대신
스쿠터 엔진 소리로 콧방귀를 뀐다
확연한 빚만 켜켜이 쌓여 있는 여름,

자귀나무 연분홍 꽃잎이 헤프게 흩날린다
배알도 없이 헤프게 으응 자귀 자귀야
야들야들한 코맹맹이 꽃 입술
엉덩이 흔들어 날려보낸다 아찔한 속살
조마조마하게 내비치기도 하면서
(전 괜찮아요, 보는 놈만 속 타지)
오빠 냉커피 한잔 더 탈까, 지지배

지지배배 읍내 제비 앞세운 김양이 쌩쌩 달려나간다

연분홍 자귀꽃 흩뿌려진 땡볕 배달길,
따가운 빚이 신나게 까지고 있다

 

창작과 비평 (2004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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