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마디 / 정재록
엑스레이에 찍혀 나온 내 손가락들이
대나무를 닮아 있다
내 손은 크고 작은 다섯 주의 대나무가 서있다
엄지는 마디가 두 개, 다른 손가락들은 세 개씩이다
손가락들은 더 이상 마디가 늘지 않는 대신
그 마디를 꺾어 뭐든 움켜쥘 수 있다
대나무처럼 마디가 늘어나면
더 많은 걸 움켜쥘 수 있겠지만
내가 손에 쥘 수 있는 분량의 눈금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 대신 내 마음이 마디 수를 늘려간다
손과 마음의 눈금이 점점 차이가 벌어지면서
그 사이를 허공이 끼어든다
대나무는 제 마디마디 허공을 들여앉혀 저를 세우지만
내 마음은 그 허공을 움켜쥐느라 마디마디 꺾인다
엑스레이에 찍혀 나온 손가락뼈마디들은
뭐든 움켜쥐고 싶은 내 마음의 골수로 차 있다
쥐락펴락 꺾어 온 손가락 마디에서
내 마음의 마디를 본다
잠시나마 마음의 눈금을 끌어내려 손과 맞대본다.
미네르바 2007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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