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함 / 이규리
청바지와 배꼽티를 입은 열 여섯 살이
내 엄마래요
겨우 사춘기에 접어든 엄마는
생리대 빼버리듯
나를 툭 떨군 뒤 엉겁결에
신문지에 싸고 비닐에 담아
지하철 사물함에 넣었어요
죽은 나는 함 속에 뭉개져 있다가
나를 싼 신문을 읽기 시작했어요
바로 내 이야기들,
내 엄마보다 더 코믹한 사람들의 얘기가
구겨져 있었어요
요즘 여자들은 엄마 되기 싫은가 봐요
납골당 같은 이곳이 나의 영원인가요
영원이란 저 길 건너편 대중식당 같은 거
오고 갈 일 없지만
멀건 국물이라도 데워 훌훌 마시고픈 아침,
그래도 나를 버린 엄마 생각이 나네요
맹랑하고도 어여쁘게
뭐 이래. 주꾸미 같애! 라고 말하던
내 엄마 말이에요
시집 <뒷모습> 2006년 랜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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