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어족에 관한 리포트 / 김평엽
나무는 말을 할 때마다 온 몸을 떤다 그게
그들의 관습인 것을 물푸레 허리를 만질 때 알았다
아직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그들의 언어체계
일명 녹색어족이라 분류되는 언어,
소위 침엽어군에 속하는 잣나무라든가
활엽어군에 속하는 굴참나무 층층나무가 주동하여
은밀히 수작 걸어오는 우리 동네 잡목 숲,
나무는 말을 할 때 온몸의 결을 흔들어
음절을 조합하는 걸 알았다 행간을 두는 문법과
형태와 성분을 미묘하게 치환하여
넉넉한 감정 드러낸다는 것, 알았다
슬플 때일수록 우수수 몸 부비고 잎 흔들어
성대울림으로 하나 되는 녹색어족들,
늙은 나무는 왼 종일 입술 가벼운 소리로
설화를 구전하고 어린것들 또박또박
여린 잎맥에 말씀을 받아 적는,
숲을 들어가다 보면 온통 초록 싱싱한 족속들
푸짐히 종족의 언어 타전하며 안부를 묻는다
오늘 나는 나무, 사이 걷다 번쩍 그들의 문맥에 감전
되었다 싶은 순간 바르르 내 몸 열리더니
푸르게 발작하는 혀, 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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