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욱국 / 김선우
아욱을 치대어 빨다가 문득 내가 묻는다
몸속에 이토록 챙챙한 거품의 씨앗을 가진
시푸른 아욱의 육즙 때문에
- 엄마, 오르가슴 느껴본 적 있어?
- 오, 가슴이 뭐냐?
아욱을 빨다가 내 가슴이 활짝 벌어진다
언제부터 아욱을 시 뿌려 길러 먹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지만
- 으응, 그거! 그, 오, 가슴!
자글자글한 늙은 여자 아욱꽃핀 스민 연분홍으로 웃으시고
나는 아욱을 빠네 그 손이 짚어준 저녁의 이마에 치댈수록 깊어지는 시집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2007. 문학과지성사)
시푸르게 넓적한 풀밭 같은 풀잎을
생으로나 그저 데쳐 먹는 게 아니라
이남박에 퍽퍽 치대어 빨아
국 끓여 먹을 줄 안 최초의 손을 생각하네
가난과 슬픔의 신열이 있었다면
그보다 더 멀리 간 뻘밭까지를 들쳐 업고
저벅저벅 걸어가는 푸르른 관능의 힘
사랑이 아니라면 오늘이 어떻게 목숨의 벽을 넘겠나
치대지는 아욱 풀잎 온몸으로 푸른 거품
끓이는 걸 바라보네
이글거리는 풀잎의 뼈
오르가슴의 힘으로 한 상 그득한 풀밭을 차리고
슬픔이 커서 등이 넓어진 내 연인과
어린것들 불러 모아 살진 살점 떠먹이는
아욱국 끓는 저녁이네 오, 가슴 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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