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가림토문학상 당선작
초여름 일기/ 이정원
한낮은 뭉근하다. 푸른 잎사귀들이 더위에 제 몸을 내어 주고 달아오르는 동안 아이와 팔베개하고 드러누워 클클 대며 만화책을 읽었다. 사그락 사그락 마르는 빨래, 바람이 휘저으며 노는 소리, 쓰레기통은 한참 부화중일 테지. 살충제를 들고 일어나는 순간 아이의 잠이 툭 떨어진다. 어느새 아이는 어미의 옷자락을 붙잡고 우듬지 속을 헤매고 있었던 것인가. 몸이 뿌리로 박혀 꽃으로 환생할 어디쯤 곤충의 애벌레같이 부화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아이의 잠을 베게에 올린다. 아이는 놓쳐버린 꿈을 움켜쥐려 한번을 더 뒤척이고, 땅속의 모든 벌레들이 돌아눕는 소리, 땅의 껍질을 깨고 튀어 오른다. 쓰레기통은 닫혀있다. 마른 잎이 물을 끌어당길 동안 빨래집게에 꽂힌 햇빛 한줌 마악 잎사귀에 내려앉을 판이다. 주룩주룩 설거지물 하수구에 쏟아져 내린다. 아이의 덜 닫힌 잠의 창으로 한줄기 소낙비 시원스레 퍼 붓는다. 뭉근해진 한낮이 조리개 속으로 풀어진다. 풋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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