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발자국 / 이종섶
바람결에 흔들리는 꽃잎들, 쳐다보는 순간 납작 엎드려 숨을 죽인다
갓 태어난 바위에 남아있는 오래된 편지지와 빛바랜 글씨들, 뜨거운 심장 하나 얻기 위해 얼마나 울었던 것일까
떨어진 눈물이 지은 깊고 동그란 집
그들은 모여 살았으나, 그는 언제나 혼자였다
한번 갔던 곳은 다시 가지 않았고 뒤돌아보는 법도 없었다, 육중한 몸이 발을 데이며 걸어갔을 길의 끝은 언제나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그날의 흉터를 아직도 씻어주지 못한 바람은 눈물만 훔치다 눈알이 짓무르고
억겁의 세월이 흐른 뒤
그의 저작을 파헤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땐 이미 메마른 감정으로 실어증을 먹고사는 허물 벗은 꽃잎 떼들만 발견할 뿐
식지 않는 탄식이 저 딱딱한 책을 펼치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니다 마지막 발자국에 누워 잠들면, 바람이 넘기다 만 책갈피가 찢어지고
한번 베인 바람이 결을 만들며 자진하는 저녁
발은 모양을 남기지 않는다, 자신의 무게를 남겨 눈물 한 줌씩 박아놓는 것이다
한 시대가 끝나리라는 것을 직감한 어느 전언, 발로 쓴 피눈물들이 허무하게 굳어있다
내 뒤에 발자국 하나 보이지 않는다
너무 딱딱한 길을 걸어왔거나 내가 너무 가볍거나
<시와문화> 2008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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