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불량소년 체험기 / 김산

시인 최주식 2010. 1. 31. 00:05

불량소년 체험기 / 김산

 

1. 달고나

 

  그는 국자 하나로 읍내를 평정했다 사철 같은 옷을 입고 있었지만 늘 사루비아 냄새가 났다 나는 한 마리 땡벌처럼 그를 따랐다 그는 하루종일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국자를 불에 달궜다 설탕이 부글부글 끓으면 시커먼 손으로 소다를 뿌렸다 그는 어린 내게 별과 구름과 달을 만들어 주었다 어떤 날은 세발 자전거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나는 종일 침을 발라가며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내가 처음 만난 시인이었다

 

2. 엿뽑기

 

  그는 무기밀매상이다 청테이프가 붙은 유리상자 안을 각종 칼로 무장했다 소검 중검 대검과 아더왕의 긴 칼이 있었는데 스페셜로 호랑이와 잉어도 있었다 오십 원을 내고 누런 갱지를 뽑았는데 주로 꽝이 나왔다 간혹 검을 뽑은 적은 있지만 나는 졸업할 때까지 호랑이나 잉어를 한 번도 뽑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운칠기삼이라 했다 나는 운이 없었으므로 항상 일등을 했지만 선생님은 반장을 시켜주지 않았다

 

3. 물방개

 

 

 그는 고문기술자다 물방개 다섯 마리 중에 백 원을 걸고 일등하면 오백 원을 줬다 내가 찍은 물방에 감금된 물방개들은 맥을 추지 못했다 아이들의 말로는 리모콘으로 물에 전기 충격을 준다는 설과 하얀 후추가루를 뿌려 놓는다는 설이 지배적이었다 나는 물방개 덕에 동아전과와 실로폰 없이 학교를 다녔다 일천구백팔십칠 년 반기를 든 물방개들이 최루탄 방귀를 뀌었다는 소식이 입소문으로 퍼졌다

 

4. 콘

 

  그는 축지법을 익힌 소림사의 강호다 그가 다니는 곳으로 나는 육 년 내내 소풍을 갔다 견훤 왕릉이 그랬고 곰솔숲이 그랬다 아이스크림 통을 들고 어떻게 산을 올랐는지 몰라도 그는 나보다 소풍을 늦게 온 적이 없다 떡갈나무 아래 파라솔을 펴고 부채질을 하면 아이들이 줄을 섰다 나는 주로 돈이 없었으므로 아이들 셋을 끌고 가면 덤으로 콘 하나를 받았다 수건돌리기와 보물찾기가 끝나면 그는 이미 하산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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