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청빈한 나무 / 김석규

시인 최주식 2010. 1. 31. 00:11

청빈한 나무 / 김석규


나무는 누워서 이사를 간다

받치고 섰던 하늘 더 멀리까지 내다보려고

나무는 누워서 이사를 간다

언제 했는지 이발을 하고

풀려서 너풀거리는 소매도 걷어붙이고

서서 자는 나무는 침대가 없다

잎새로 바람을 잣는 나무는 선풍기가 없다

항시 햇살을 이고 선 나무는 난로가 없다

그 흔한 냉장고도 텔레비전도 없이

단지 그늘만 키우는 제 몸 하나에

더는 깨지지 않도록 새끼로 동여맨 밥그릇

양말도 벗은 발목에 매달고

나무는 누워서 이사를 간다

 

 

- 시집 『청빈한 나무』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