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혼: 시간을 말하다
크리스토퍼 듀드니 지음
진우기 옮김, 예원미디어
376쪽, 2만원
2년 전『밤으로의 여행』에서 밤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을 시적인 언어로 풀어냈던 저자가 쓴 ‘시간’에 관한 에세이다. 시인이자 에세이스트인 그는 시간의 풍경을 묘사하는 대목에서는 “어둠 속에 얼마나 많은 잎이 피고 지는지, 잎이 펼쳐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라고 쓸 만큼 감각적이면서, ‘나노 초(秒)’에서부터 ‘지금’의 형태와 크기, 시간의 조작, 영원에 대해 논할 만큼 화제의 폭은 넓다.
듀드니는 싸늘한 밤, 자신의 화단에서 올빼미 한 마리와 눈빛을 교환한 순간에서 우리가 어떻게 현재를 어떻게 체험하고 표현하는지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신의 자식을 먹어치우는 그리스 신화의 크로노스를 통해 ‘시간의 잔혹성’을 말하고, 이를 사실적으로 그린 화가 고야(1746~1828)의 그림 ‘아들을 잡아먹는 새턴’에 시선을 주는가하면, 시간의 흐름을 붙잡으려는 사진과 영화(시간예술), 시간과 기억에 관한 이야기로 넘나든다.
그는 “인간은 같은 강물을 두 번 건널 수 없다”는 헤라클리투스의 격언과 “시간은 우리가 존재하는 원소다…우리는 그에 의해 떠내려가거나, 또는 그 속에서 빠져 죽을 뿐이다”(조이스 캐롤 오츠·미국의 소설가)라는 말에서 ‘시간과 바다의 유사성’을 찾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나만의 시간 풍경 안에서는 어디든 내 의지대로 갈 수 있을 만큼 자유로웠다”며 우리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숨어있는 흐름에 대해 말한다. “우리를 지금과 같은 생물로 만든 것은 이렇게 마음 속에서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한 능력이다. 이런 능력이 없다면 예술도 꿈도 없고, 도시도 건물도 없을 것이다.” 미래를 꿈꾸고, 상상 속의 세트에 무언가를 짓는 ‘내면의 시간 풍경’이 없었다면 ‘지금’이 없었을 것, 즉 미래를 계획하는 게 존재의 기본조건이라는 얘기다.
시간의 역사, 미래학, 문학과 과학을 넘나드는 듀드니의 솜씨는 “온 삶을 깊은 시간에 빠져 지낸” 그의 독특한 성장배경과도 관계가 깊다. 지질학자 겸 자연지리학자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가 일하는 캐나다 온타리오박물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단다. 소년 시절, 작은 돌맹이와 조개껍질에서 ‘압축된 시간’을 보았다. 친구들과 함께 와인을 마시는 저녁자리도 “마술같은 밤”이라 말하는 대목에서는 시간의 심연을 본 시인의 통찰이 반짝인다.
뒷 얘기 하나. 저자의 전작인 『밤으로의 여행』에 매혹됐다는 장석주 시인은 이 책에 대해 “아름다운 시간의 타피스트리”라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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