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의 간 / 김경주
연필 속에서 간이 흘러나온다
간 속의 노란 돌가루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란 돌가루
연필 속에서 탄광이 쏟아져나온다 탄광을 파내어 간을 찾는 자, 시를 쓴다
해골이 어조를 남기고 거울 속에서 웃는다
연필은 잡념의 생식기
푸른 먼지 하나 허리를 흔들며 사라져가고
헐리고 있는 촛불
그 안에 번식 중인 빨간 간들
문어처럼 미궁을 많이 알지도 못해서
연필은 대가리를 디밀며 해저를 뒤집고 다닌다
연필을 두 쪽으로 쫙 갈라내어
간을 본다
이끼가 자라고 있는 해, 보도블록에 떨어진 귀들, 입속으로 퇴근하는 머리칼, 어항 속으로 들어가 웃는 쥐, 구름과 구름 사이 희미한 돌가루들, 아픈 배, 죽어서 일어나 강낭콩을 먹는 비둘기, 저녁을 빗방울 속으로 밀어올리는 맥박들, 구슬, 구슬 속을 흘러다니는 허공
그건 간의 색인데
그믐을 그리는 건 간의 색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간의 색을 전부 지우는 일이었다구
더 천해져야 한다. 이것저것 간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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