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조롱박 / 박순호

시인 최주식 2010. 1. 31. 20:21

/ 박순호

 

 

고만고만한 조롱박이 하나씩 늘어가고 있다

고요함이 오래되어 낡으면 푸른 빛깔을 띤다지

야무지고 단단해 진다지

옥돌장식처럼 난간 아래 줄지어 매달려 있는 조롱박

머리꼭지에 붙은 가는 줄기 따위가 내 목숨줄이라고,

조롱하기라도 하려는지

이층 창문 아래까지 내려와서는 방범창살을 감고 아예 자리를 잡는다

 

건조대에 널린 기저귀가 모시나비 날개를 닮아 팔랑거린다

간편한 세상에 기저귀라니,

녹슨 철계단을 올라와 가만히 내 옆에 서 있는 여자

그녀의 눈동자 속에 작은 조롱박이 매달려 있다

 

은은한 밤의 통로가 열리면 조롱박이 서로 부딪치며

아프지 않게 박꽃을 피운다지

달빛도 눈부셔 서로 쳐다보지 않는다지

아기가 들어서지 않는 여자의 좁은 어깨에 하얀 박꽃이 내려 앉는다

 

오, 작고 앙증맞은 지붕 위의 푸른 눈사람

 

시집<무전을 받다> 2008. 종려나무

 

'♣ 詩그리고詩 > 1,000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귀 / 이규리   (0) 2010.01.31
연필의 간 / 김경주  (0) 2010.01.31
푸른 안구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 유형진   (0) 2010.01.31
빈집 / 박후기  (0) 2010.01.31
어리고 앳된 울음 / 강미정   (0) 2010.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