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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면 어린이 놀이터가 보이고 놀이터 가운데 노란 원형 벤치가 눈에 들어온다. 그 벤치는 항상 아버지가 앉아 계셨던 자리다. 어제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벤치를 바라보다가 그리로 내려가 보았다. 아버지의 자리.
나는 아버지의 자리에 앉아서 아버지의 눈높이로 무엇이 보이는가 보았다. 진한 푸름의 상록수 한 그루, 외등 하나, 주위의 꽃과 나무, 그리고 콘크리트 도로만 보였다. 도로에는 아이들이 퀵보드를 타고 놀고 있었고, 아파트 경비실 아저씨는 구부정한 허리로 수돗가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씻고 계셨다. 아버지는 무엇을 보셨을까?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갑자기 그날 저녁으로 생각이 옮겨 갔다. 그날도 내가 출근할 즈음 아버지는 이 벤치에 앉아 계셨다. 아버지 눈에 내가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아 아버지 곁에 가까이 가서 회사에 간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아이 떼어 놓고 시장 가는 어머니를 쳐다보듯이 그렇게 힘없이 나를 바라보셨다.
회사에는 복잡한 일들이 얽혀 있었고, 그 틈바구니 속에서 아버지의 아침 모습을 잊고 있었다. 저녁이 되자 힘든 일을 해결한 직원들과 저녁 식사 후 술을 먹게 되었고, 2차 가자는 동료들의 말을 듣고 있을 때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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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 앞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 방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이 보였다. 유리창 너머로 아버지의 모습을 훔쳐보았다. 아버지는 꾸부정한 모습으로 앉아 계셨다. 시간은 밤 1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아버지 방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 아버지께 어디가 불편하시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아프긴 한데 참을 만하다고 했다. 그래서 누워 계시라고 했더니 누워 있으면 숨을 쉴 수 없다고 했다. 그래도 누워 계시라고 눕히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출렁출렁 하는 물소리가 폐 속에서 크게 들렸다.
“아! 이래서 누워 계시지 못하는구나.”
아버지께 병원으로 가자고 하니까 아버지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 회사 갔다 온 후에 가자.”
아픔에 정신이 없던 아버지는 내가 출근 인사를 하기 위해 들어온 줄 아셨던 거였다. 아버지께 회사에서 퇴근하고 온 거라고 했더니 그제야 정신을 차리시고서 왜 이렇게 늦게 다니느냐고 꾸지람하셨다. 술을 먹고 집에 온 터라 승용차도 없어서 아버지를 업고 도로까지 달려간 후 택시를 타고 병원 응급실로 향해 갔다.
병원 응급실 응급 의는 나에게 “노인께서 폐에 절반이나 물이 차오르는 동안 무엇을 했느냐?”는 것이었다. 신장기능이 정지되어 수분을 거를 수 없는 상태이므로 그 수분이 피에 섞여 폐로 간 것이라고 했다. 응급실에서 응급조치를 했다. 갈비뼈 쪽으로 구멍을 내자 폐에 있던 물이 수돗물 쏟아지듯 철철 흘러나왔다. 아버지는 춥다고 했다.
그리고 응급실 커튼이 쳐졌다. 그 후 중환자실로 가신 지 5일 만에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것이 내가 본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어제 나는 아버지의 자리에 앉아서 아버지의 쓸쓸한 모습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서러움이 복받쳐 눈물을 흘리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