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문칼럼)

장기한담

시인 최주식 2010. 1. 31. 21:35

황송문의 여름에세이 

 

 

 

 장기한담 

 

정자나무 그늘 아래 '인생일장춘몽'

노인이 되고보니 삶이 한바탕 꿈인듯 

  

  옛날에 충성스런 개가 주인을 살렸다고 해서 불리어진 내 고향 전북 임실군 오수(獒樹.개나무)엔 재미있는 얘기도 많다. 5일장에는 인근 마을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는데, 지게에 참외며 수박 같은 것을 지고 와서 느티나무 그늘에서 파는 광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시절엔 푸른 바탕에 흰줄무늬 개구리참외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어린아이 머리통만한 개구리참외를 깎으면 그 속살은 볼그레한 빛이 서리는데, 이걸 욕심껏 뭉턱 베어 물라치면 코끝에 참외 씨가 묻기 마련이었다.


 오수 원동산(圓東山)엔 지팡이를 심어 자라나게 했다는 우람한 느티나무들이 군데군데 하늘을 뒤덮고 있으며, 의견비(義犬碑)가 비스듬히 서 있었다. 마을 노인들은 그 정자나무 그늘 아래 펴놓은 초석 위에서 장기를 두면서 옛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시집 온 새댁이 옹달샘에 나와 물을 긷다가 잠깐 졸았는데, 깨어보니 백년 세월이 훌쩍 흘렀다고 하면서 인생일장춘몽이라고 개탄한 소리도 들었는데, 그 말도 그때 처음 들은 것 같다. 장기를 두면서 한담하던 그 노인들의 얘기를 곁에서 귀담아 듣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내가 그 노인들의 연령이 되어 인생의 강하를 흐르고 있으니 인생무상을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장기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나는 궁(宮)도 못되고 차(車)나 포(包)도 못 된다. 그렇다고 슬기로운 상(象)이나 말(馬)도 아니요, 물론 졸(卒)도 물론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어줍잖은 사(士)때기다. 글방의 훈장에다가 시를 쓰는 덕분에 문사(文士)라는 꼬리가 붙어서 사라는 이름이 따른다.


 나는 아들아이와 장기를 두면서, 내가 꼭 아들아이 만할 때 원동산 느티나무 밑에서 장기 구경을 하던 나의 모습을 떠올린 적이 있다. 나는 내가 늙어 가는 슬픔을 아들아이가 커 가는 기쁨으로 상쇄시키는 것이었다.


 사(士)밖에 안 되는 나의 눈에는 아들아이가 궁(宮)으로 보였다. 때로는 재빠른 차포(車包)로도 보이고, 때로는 슬기로운 마상(馬象)으로도 보였다. "아버지, 왜 쩔쩔 매십니까?" "오냐, 나는 네가 부럽다." "아버지, 제 차(車)를 잡수세요." "나는 네 효덕(孝德)에 졌다!" 차포(車包)를 떼고 두는 장기에도 아이는 어질게 빛나고, 나는 내 이름자(松)처럼 질기기만 했다.


 이 아비와 장기를 두는 아들아이는 어느 모로 보나 나보다 나을 것 같은데, 아들아이도 한담을 하던 그 노인들의 얘기에서처럼, 한 세상 꾸뻑 졸다가 깨어보면 백 년 세월이 훌쩍 지나갈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시려온다.

 

시인. 선문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