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송문의 여름에세이
모기장과 밤하늘과 반딧불
여름별밤 신비로 장식하던 아기별
해가뜨면 보잘것 없는 프리즘 같아
어머니는 대청마루에 모기장을 치고 나는 반딧불을 잡아 그 안에 풀어놓았다. 모기장 속 어머니 곁에 누우면 밤하늘 별밤이 아스라이 내렸다. 모기장은 하나의 우주였고, 반딧불은 그 우주 공간의 별나라를 떠도는 아기별이었다. 한동안은 말이 소용없었다. 그저 아늑하고 편안하기만 한 그 공간에서 밤하늘의 별나라를 가끔씩 날아다니는 반딧불에 눈을 주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엄마, 좋지?" "그래, 좋구나!" 우리의 대화는 간결하면서도 느렸다. 급할 것이 없었다. 한동안은 그렇게 잠자코 있다가, 그 우주 공간을 유영하며 반짝이던 반딧불들이 움직임을 멈춘 채 여기저기서 별처럼 반짝이게 되면, 어머니는 그제야 천천히 이야기를 꺼내시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으레 옛날 옛날 아득한 옛날,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 어쩌고 하면서 얘기를 깊여 갔었다. 구전으로 내려온 이야기 중에 어느 선비 이야기는 세상을 사는 동안에 새로운 깨달음을 주곤 했다.
한양 천리 과거보러 가던 선비가 날은 저물고 잘 곳이 없어서 숲속을 헤매다가 깜박이는 불빛을 보고 찾아가 만난 처녀의 미모에 반했다는 데까지는 손에 땀을 쥐면서 귀를 기울이게 하는 서스펜스에 속했다.
그 선비는 과거 볼 것도 잊은 채 그녀와 함께 살았는데, 결국은 알고 보니 절세의 그 미녀는 백년 묵은 여우였다는 이야기였다. 어머니는 이야기 끝에, 그러니 여자를 조심해야 한다고 사족을 달았다. 여자란 얼굴보다는 마음씨가 고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여자란 정말 여우의 속성을 지녔다는 것을 터득하게 되었다. 아무리 이상적인 여성이라 할지라도 함께 살다 보면 결점이 노출되어 실망하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인간의 삶 가운데 꿈이라고 하는 것, 희망이라고 하는 것은 모기장 속의 반딧불 같은 것이었다. 별들이 총총 박힌 여름 별밤에 그처럼 모기장 속의 공간을 신비의 극치로 장식하던 반딧불도 이튿날, 날이 새고 해가 뜨게 되면 보잘 것 없는 개똥벌레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프리즘 같은 것이었다. 삼각 유리대롱을 돌릴 때마다 빛의 굴절에 따라 총천연색 꽃무늬를 이루던 프리즘도 시멘트 바닥에 깨어 놓고 보면 한갓 볼품없는 유리조각과 색종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터득한 셈이다.
그러나 인생은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 아닌가. 내가 사는 동안 나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모기장 속의 반딧불, 그것은 내 가슴속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 아니겠는가.
시인. 선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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