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문칼럼)

품이 낙낙하다

시인 최주식 2010. 2. 1. 22:35

[우리말 바루기] 품이 낙낙하다 [중앙일보]

 

형제자매가 많았던 예전엔 옷을 물려 입는 게 다반사였다. 제 몸보다 큰 옷을 걸친 막내를 보며 짠해져 건네는 말. “지금은 품이 낙락해도 내년엔 맞을 거야!” 부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에게 이것만은 알려 주고 싶다.

“품이 낙락하다”와 같이 쓰는 경우가 많지만 크기·수효·부피 등이 조금 크거나 남음이 있음을 뜻하는 말은 ‘낙낙하다’다. “바지 품이 낙낙한데 작은 치수는 없나요?” “살림이 제법 낙낙하다”처럼 사용해야 한다. 발음이 같아 혼동하기 쉬운 ‘낙락하다’는 아래로 축축 늘어지다, 여기저기 떨어져 있다,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않다는 뜻으로 쓰임이 다르다.

촉촉한 기운이 약간 있음을 이르는 ‘녹녹하다’와, 부정어와 함께 쓰여 만만하고 상대하기 쉬움을 일컫는 ‘녹록하다’도 마찬가지다. 발음이 같아 헷갈리기 쉬우나 “비에 젖은 녹녹한 옷” “녹록지 않은 상대”처럼 구분해 써야 한다.

순우리말인 ‘낙낙하다/녹녹하다’는 한 단어 안에서 비슷하거나 같은 음절이 겹쳐 나는 부분은 같은 글자로 적는다는 규정에 따라 표기한 것이지만 한자어인 ‘낙락(落落)하다/녹록(碌碌)하다’는 두음법칙이 적용된 것이라는 데 유의하자.

이은희 기자

'수필(신문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색(思索)에 대하여 / 쇼펜하우어  (0) 2010.02.02
저녁 구름 / 헤르만 헤세  (0) 2010.02.02
모기장과 밤하늘과 반딧불  (0) 2010.01.31
생울타리 풍속도   (0) 2010.01.31
장기한담  (0) 2010.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