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송문의 여름에세이 / 생울타리 풍속도
개나리 사이로 넘겨주던 부침개
이웃간 정 주고받는 모습 그리워
원추리 같은 여인의 생머리카락을 보게 되면 시골집 생울타리가 떠오를 때가 있다. 개나리건 골담초건 되는 대로 꽂아 두면 생울타리가 저절로 어우러지는 그 아래로는 우물 옆구리에서 솟는 생수가 수채 도랑으로 흘러내렸다.
한여름에도 얼음물같이 차가운 그 수채 도랑물은, 잔모래를 들썩이며 솟아오르는 그 샘도랑물은 생울타리 가의 미나리꽝을 휘돌아 과수원 께로 흘렀다.
그 과수원에서 수밀도 바람이 불어올 무렵이면, 여인들은 밤마다 샘도랑으로 나와서 목욕들을 하였다. 여름 볕에 땀흘리며 밭고랑 타고 가며 김을 매던 여인들이 목욕하는 밤 풍경은 그야말로 꿈길로 가는 파라다이스였다.
이웃과 이웃 간에는 개나리 울타리가 경계를 이루고 있었지만, 집과 집 사이의 구분일 뿐 벽이 아니었다. 이웃 간에 어느 한 쪽이 떡을 만들거나 부침개를 부치는 경우, 어김없이 그 생울타리 사이로 넘겨주면서 솜씨는 없지만 먹어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이웃과 이웃 간에는 사소한 것이라도 나누어 먹는 습관으로 길들여져 있었다. 이런 현상은 학교에서 교육받은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조상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풍속 같은 것이었다.
우리 어머니는 인정이 많기로 유명했다. 언젠가는 마루에 앉아 계시던 어머니가 지나가는 여인을 불러서 마루에 앉게 하더니 자기 몫의 점심밥을 내놓았다. 그 여인은 극구 사양했으나 어머니는 막무가내였다. 배를 눌러보면서 빈속인데 그런다고 눈을 흘기며 기어이 먹여 보내야 마음 편해하시던 어머니였다.
"옥 같은 서리 쌀밥에 저리지를 감아 한 사발만 먹고프다던 '돌쇠엄마'는 해산한 뒤 여드렐 꼽박 감자 순만 먹다가 그예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 글은 신석정 시인의 시 '이야기' 중의 한 대목이다. 신석정 시 가운데 '산중문답'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도 있다.
"송화가루 꽃보라 지는/ 뿌우연 산협.// 철그른 취나물과 고사릴 꺾는/ 할매와 손주딸은 개풀어졌다.// 할머이/ <엄마는 하마 쇠자라길 가지고 왔을까?>/ <……>// 풋고사릴 지근거리는/ 퍼어런 잇빨이 징상스러운 산협에// 뻐꾹/ 뻐꾹 뻐억 뻐꾹"
굶주림에 지친 할머니와 손주딸이 이미 철이 지나버린 산채를 먹어보려고 채취하다가 맥없이 쓰러지고 뻐꾸기만 운다는 이 시에는 그래도 갈등 없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보인다.
그랬었는데, 너무 잘 먹어서 배 터져 죽을 사람들이 이웃이야 죽건 말건 수십 억, 수백 억 원씩 해먹는 사회현상을 보게 될 때 그 시골 생울타리 시절이 그리워진다.
시인.선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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