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물가에서 노래를 불렀다 / 김충규
어두운 낯빛으로 바라보면 물의 빛도 어두워 보였다
물고기들이 연신 지느러미를 흔들어대는 것은
어둠에 물들기를 거부하는 몸짓이 아닐까
아무도 없는 물가에서 노래를 불렀다
노래에 취하지 않는 물고기들,
그들의 눈동자에 비친 내 몰골은 어떻게 보일까
무작정 소나기 떼가 왔다
온몸이 부드러운 볼펜심 같은 소나기가
물 위에 써대는 문장을 물고기들이 읽고 있었다
이해한다는 듯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댔다
그들의 교감을 나는 어떻게 기록할 수 있을 것인가
살면서 얻은 작은 고통들을 과장하는 동안
내 내부의 강은 점점 수위가 낮아져 바닥을 드러낼 지경에 이르렀다
한때 풍성하던 魚族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 후로 내 문장엔 물기가 사라졌다
물을 찾아온다고 물기가 절로 오르는 것은 아니겠지만
물이 잔뜩 오른 나무들이 그 물기를 싱싱한 잎으로
표현하며 물 위에 드리우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분명 나를 부끄럽게 했다
물을 찾아와 내 몸이 조금이나마 순해지면
내 문장에도 차츰 물기가 오르지 않을까
차츰 환해지지 않을까
내 몸의 군데군데 비늘 떨어져나간 자리
욱신거렸다
이 몸으로는 저 물 속에 들어가 헤엄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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