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문칼럼)

2004년 부산일보신춘문예 당선작

시인 최주식 2010. 2. 2. 23:05

2004년 부산일보신춘문예 당선작

 

 

이장(移葬) / 정경희

 

 우산 위에 이슬비가 맺힌다. 흘러내리지 못하는 끈적끈적한 마음들. 빗방울들이 내 가슴 속에 남아있는 미움 같다. 주름진 골 사이마다 숨어 있던 증오들이 비가 오면 되살아나 집착처럼 들러붙는 걸까? 우산을 턴다. 일시에 확 뿌리면 들러붙은 미움들이 한순간 사라진다. 용서는 이렇게 해야 하리. 한 톨의 찌꺼기 남김없이, 천천히 등을 기대어 눈물로 젖었던 마음을 말리며 그렇게.
'이것 쪼끔 살라고 그 고생을….' 어머니의 시신 앞에서 아버지가 뱉은 말이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마치 아버지가 자신의 잘못을 다 고백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죽음 앞에선 대체로 사람들은 진실해지고 진지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나는 의심이 갔다. 아니 용서가 안 됐다.
 어머니는 담낭거미였다. 풀잎 뒤에 고치를 짓고 그 안에 알을 낳은 후, 알에서 깨어난 새끼 거미들에게 몸을 뜯어 먹히는 어미의 몸. 가정을 책임지지 않고 돌아다니기만 했던 아버지 대신 닥치는 대로 행상을 하며 칠 남매를 키웠던 어머니. 우리 칠 남매는 어머니의 몸과 마음을 송두리째 뺏고 기생하며 자랐다.
 당신 때문에 반평생 가까이 가슴앓이 하다가 결국 버림받은 어머니. 내가 겪은 설움은 둘째로 치더라도 장삿길에서 죽음을 당하게 한 장본인을 그렇게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내가 그러지 않아야 어머니가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앞섰다. 특히 아버지를 잘 따르는 고향 사람들에게 어머니의 희생을 보여주고 싶었다. 어머니가 고향에 장사하러 갔을 때 몇 사람 빼놓고는 따뜻한 밥 한 번 대접해준 적이 없었다는 걸 나는 잘 안다. 처자식이 혼합곡 한 되로 하루를 살아가고 납부금을 못내 진급이 어려워도, 아버지는 큰 소리를 치며 사람들에게 술과 음식을 외상으로 대접하며 인심을 얻었던 거다.
 상여가 나가던 날은 단오 지난 하루였다. 어머니의 살 썩는 냄새가 났다. 그것은 마치 어머니가 보낸 고통스러운 세월과 한의 냄새 같았다.
 '아버지가 미워요, 아버지가 미워요!' 거기 구경 나온 사람들은 '마르메 아제' 막내딸이 왜 그렇게 절규했는지 한 번쯤은 생각했을 게다. 슬픔이 극에 달하면 속으로 운다는 걸 처음 알았다. 떼 놓고 가려는 상여를 따라가는 동안 눈물이 말랐다.
 똑똑히 보았다. 염을 하기 전 퉁퉁 붓고 일그러진, 시커먼 어머니의 얼굴, 관 위에 한 삽 한 삽 흙이 덮여지는 것을. 관 뚜껑을 덮기 전 금방이라도 반쯤 벌린 입에서는 있는 힘을 다하여 내 이름을 부를 것만 같았는데…. 이승의 고통을 덮어주는 안식의 이불, 흙은 이승의 오물과 흉한 육체를 거리낌없이 받아들여 순결하게 만들 것 같았다. 어쩌면 어머니는 진작에 이 흙냄새가 그리웠을지도 모른다. 남아있는 자식들이 등짐처럼 무거웠을 때가 한두 번이었을까.
 어머니는 죽어서도 너무 쓸쓸했다. 갑자기 마련한 밤밭 아래 무덤자리는 북풍이 불었고 햇볕이 늘 들지 않아 추웠다. 떼는 얼마 되지 않아 씻겨가고 잔디들이 잘 자라지 않아 마음에 걸렸다. 봄이면 진달래꽃들이 피어 핏빛 한을 달래고 여름이면 살무사들이 드나들고 가을이면 투두둑 쥐밤 떨어지는 소리를 벗삼아 지내기를 십 년.
 제사를 앞두고 드디어 이장을 하던 날. 포크레인으로 봉분을 없애고 삽으로 관을 찾기 시작했다. 아직 많이 썩지 않았다. 작은아버지가 천을 찢고 작은 돌멩이 같은 왼쪽 발가락부터 챙기기 시작했다. 순서가 흐트러지면 안 된다는 것. 인조 마포에 싸인 시신은 박테리아가 쳐놓은 실로 거뭇거뭇했다. 그것들을 걷어내자 파마머리와 뼈만 남았다. 무엇보다 눈에 띈 것은 의치였다. 까만 두개골 사이에서 유난히 벌건 잇몸을 드러내고 있어 어머니가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오빠들과 동생이 달려들어 솔잎 붓으로 뼈들을 털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난 펑펑 울음이 쏟아지지 않았다. 그냥 똑똑히 지켜보았다. 십 년 전 마른 울음과 함께 어머니를 가슴 깊이 묻었던 그때처럼. 뼈를 모두 꺼내어 어머니의 모습으로 복원하니 희끗희끗한 머리카락만 관에 누워 있었다. 부러진 왼쪽 다리뼈와 13대가 된 왼쪽 갈비뼈가 돌아가실 때의 교통사고를 짐작케 했다. 외부출혈은 하나도 없었는데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그 날 제일 바쁜 사람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처음에 지켜만 보다가 어머니의 뼈를 들어내어 털고 난 후 가지런히 맞추었다. 시종일관 앞에 나서서 일을 지시하고 잔디를 밟아주었다.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손길이 닿은 것은 실로 몇 년 만일까. 흐뭇했다. 아버지는 조강지처와 자식을 버린 십자가를 벗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조금이나마 인정받고 싶어서 한 위선이라 할지라도 나는 마음 속으로 응원을 보냈다. 아버지도 정말 눈물 흘리며 백배 사죄하고 싶었을 거라 믿고 싶었다.
 어머니는 이제 양지녘 새 보금자리에 누웠다. 겨울이면 햇살마저 등 돌리고 허연 서릿발이 손톱 세운 듯 붉은 무덤 가를 지켰는데 이젠 어머니도 아버지에게 잔뜩 품었던 미움이 녹을 거다. 사실은 아버지에게 품고 있던 내 증오가 녹아 내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양달에서 내내 평안할 모습은 바로 우리 자식들이 어머니의 품에서 따스한 사랑을 누리는 것과 같다.
 날 선 미움도 세월이 흐르면 녹이 슬고 끝이 무디어져 제 기능을 잃어버리는 걸까? 용서하지 않으려고 미움의 칼끝을 갈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사실은 나 역시 아버지에게 죄를 물을 수 없는 불효자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어머니를 위해서 아버지가 용서가 안 되는 게 아니라 사실은 사춘기 시절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억울함, 그로 인해 겪었던 가난의 고통과 열등감을 어느 것에서도 보상받을 수 없어 용서하지 않으려고 억지로 애를 쓴 건지도 모른다.
 때 이르게 누렇게 물들어 떨어지는 나뭇잎을 본다. 아버지를 향한 미움과 원망들이 비로소 빨리 물들어져야 할 때가 된 게 아닐까.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리기에는 너무 초조하다. 명절이나 생신 때조차 안부전화 한 통 하지 않는 야속한 막내딸이 문득 전화하고 싶어진다. 생신 날 결혼 후 처음으로 사 보낸 옷을 받고 고맙다고 온 전화를 아주 어색하게 안부나 묻고 끊어버렸던 예전, 그래도 아버지는 기뻐하실 것 같다.
 벌레 먹은 잎, 꼬부라진 잎, 구멍 뚫린 잎…. 내 속에 들어앉은 미움의 모습들. 엄마의 무덤을 옮기는 것처럼 내 안의 미움들을 도려내어 허공에 흩뿌린다. 물든 나뭇잎들이 못 참겠다는 듯이 팔랑거린다. 내 몸 깊숙이 우수수 나뭇잎이 진다.


[2004 신춘문예]수필 심사평


아픔을 용서로 승화 / 김열규


 628편의 응모작들을 정독하여 3편씩 대상작을 골라 토의에 들어갔다. 대부분 응모작들의 소재는 개인사에 머물러 있었고 평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수필의 묘미는 개인적 체험의 사회적 확대에 있다. 개인사적인 기록 차원에서 벗어나 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도움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인생에 대한 발견과 의미부여, 가치창출이 필요하다.
 단순한 체험의 기록이나 지식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남다른 체험에서 얻은 지혜의 꽃을 발견하고자 했다. 당선작 '이장'은 어머니의 삶과 아버지의 삶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면서 뼛속까지 스민 한과 아픔을 씻어내며 가족 간의 화해와 용서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단단한 문장과 절제성, 잠재력과 가능성이 보이며, 당선작과 함께 낸 '조기' 등의 작품에서도 신뢰와 안정을 보여 선정에 합의하였다. 당선자의 정진을 바란다.

 

-수필가 김열규(계명대 석좌교수)·정목일-

 


[2004 신춘문예]수필 당선소감 / 정경희


미움 보듬는 글쓰기 / 정경희


 제 안에는 언제나 애끓는 강이 하나 흐릅니다. 힘들 때는 무작정 달려가 홀로 북한강가에서 오래도록 강물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안에 어머니의 삶이 흐르고 문심이 흐르고…. 어떤 날은 세찬 바람에 뒤척이고 바위에 부딪혀 피 흘리며 흐르는 나를 보았습니다.
 글쓰기는 열정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 그것이 잘못이라고 깨닫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글을 쓰면서부터 고통을 겸허하게 받아들였고 하찮은 풀꽃에게도 눈길이 머물렀고 미움을 보듬고 제 안에서 삭일 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세계에 다가갈수록 어려움을 절감합니다. 제 안의 강이 쉼없이 출렁이고 속이 깊어지게 되기를 빌어봅니다.
 글쓰기의 눈을 뜨게 해주고 귀를 열어 주며, 문심을 잃지 않도록 격려해 준,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설빔을 차려 입는 마음가짐으로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약력]
△1964년 전남 함평 출생
△전남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2년 '경남문학' 신인상 수필부문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