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찔레 / 문계성
그때 나는 일곱 살이었습니다.
세상이, 온종일 나를 따라다니며 까맣게 탄 목을 간지럽히던 햇살처럼 정답고, 모래사장을 뒹굴며 깔깔거리던 웃음처럼 재미있고, 갈마산 위를 떠돌던 흰 구름처럼 한가롭던 때였습니다. 그때의 하루는, 학교에서는 그런대로 놀고, 하교 후에는 본격적으로 노는 것이었는데, 하교 후 노는 장소는 땡볕에 달구어진 모래사장과 버드나무 잎이 피라미 등짝의 비늘처럼 반짝이는 그늘이었습니다.
그곳은, 작고 은밀한 생각들이 연못의 송어들처럼 한가롭게 헤엄치는 장소였습니다. 그 은밀하고 행복한 곳은, 흙탕물이 밴 좁은 진흙길을 지나 둑 너머에 있었고, 책가방을 벗어 던진 나는 작은 풍뎅이처럼 그 별천지로 숨어들곤 하였는데, 흙탕물이 밴 진흙길 옆 언덕배기에는 찔레 덤불 하나가 있었습니다.
나는, 4월에는 겨드랑이에 신발을 끼고 서서 찔레순을 꺾어 먹었고, 5월이 되면 무성한 찔레 덤불이 내뿜는 꽃내에 질려, 윙윙거리는 벌들을 고무신 코에 잡아넣어 빙빙 돌리다 땅바닥에 패대기치는 놀이를 하였습니다.
이 찔레 덤불을 지나면, 길 위쪽에는 언제나 어머니가 돌보는 이랑이 긴 우리 집 밭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빨리 그 은밀한 곳으로 가고 싶어, 학교에서 집으로 뛰다가 길바닥에 뒹구는 깨진 유리병을 발로 차, 정강이에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정강이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보고 깜짝 놀라, 절룩거리며 집으로 뛰었는데, 집에는 축담에 배를 깔고 늘어져 한참 낮잠에 취해 있던 '삽살이'가 뛰어나와, 눈치 없이 사색이 된 어린 주인의 어깨에 발을 걸치고 얼굴을 핥아댈 뿐 아무도 없었습니다.
나는 절룩거리며, 분명히 어머니가 있을 이랑이 긴 우리 밭으로 뛰었는데, 그 길은 참으로 긴 여정과 같았습니다. 이부잣집을 지나고 곰보아저씨 점방을 지나서, 다시 기와막을 지나 작년 봄 물방개가 헤엄치던 논을 지나서…,나의 상처를 발견하고는, 내가 상처를 보고 놀란 것보다도 훨씬 더 놀라며 상처를 싸매 줄 어머니를 상상하며, 절룩거리며 뛰고 또 뛰었습니다.
진흙길에 접어들면서, 찔레 덤불 뒤에 누워 있는 이랑이 긴 밭과, 흰 꽃이 만발한 찔레처럼 흰옷을 입은 어머니를 발견하고, 급한 마음에 신발을 벗는 것을 잊어버리고 진흙길에 뛰어 들었다가, 한쪽 신발이 진흙에 빠져 신발을 빼지 못하게 되자, 한쪽 신발은 진흙 속에 버려두고 발만 빼서 더욱 절뚝거리며 밭으로 달려갔습니다. 상처를 본 어머니는,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놀라며, 치마를 찢어 피가 흐르는 나의 정강이를 둘러맸습니다. 나는 비로소 안도하여, 마치 전장에서 할 일을 다한 병정처럼 풀밭에 누워, 흰 구름이 나는 한가로운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날따라 더욱 하얀 찔레 덤불을 보면서, 찔레가 모시적삼을 입고 언제나 나를 기다리는 어머니를 닮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때 나는 서른 일곱 살이었습니다.
나는, 나프탈렌 냄새와 찌들어 빠진 지린내가 범벅이 된 역한 냄새에 토악질을 하던 기억밖에 없던 도시로 들어왔습니다. 도시는 불안하고 교만한 부유와 꾀죄죄하고 비겁한 가난이 물결치는 더러운 예배소 같았고, 하루하루 일을 팔아서 산 빠듯한 월급은 내게 한없는 서글픔을 안겨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부자이거나 가난하거나, 자기가 만든 욕망의 신에게 제물을 바치기 위해 돈을 모으는 노예들이었고, 나는 예배할 신조차 모호한 얼이 나간 사람이었습니다.
걸어도 걸어도 같은 골짜기만 배회하는 깊은 산에 갇힌 사람처럼 길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5월 어느 날 암자로 가던 길에, 도랑 가 언덕배기에 앉아 있는 찔레 덤불 하나와 만났습니다. 찔레는 연년이 품어온 연정을 5월 햇살에 한꺼번에 토해내듯, 농익은 향기로 벌레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고, 진한 찔레 향기가 배어 있는 나의 기억은, 한순간에 나를 일곱 살 저쪽 먼 세월 속으로 데려갔습니다. 온종일 모래바닥을 파닥거리며 뛰놀다 지쳐 쓰러져 바라보던 장밋빛 황혼, 이랑이 긴 밭, 어머니 모습 같다고 생각하던 찔레….
나는 그 땡볕에 달구어진 모래사장에서도 너무 행복하였고, 그 신발이 빠지는 진흙길을 걸으면서도 새처럼 자유로웠고,그 이랑이 긴 밭만으로도 굶주리지 않았음을 기억하였습니다. 내가 경험하는 삶의 질곡은 나의 욕망이 만든 덫이었음을, 찔레는 누구도 자리를 다투지 않을 언덕배기에 호젓이 앉아 이야기하였습니다.
나는, 지치고 재미없는 뜀박질을 어서 끝내고, 하루빨리 이랑이 긴 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오십을 훌쩍 넘겼습니다.
여류(如流)하는 세월은 나의 머리에 서리꽃을 뿌렸고, 나는 유년의 기억에는 없는, 철로를 따라난 작은 길을 매일 걷습니다.
5월 어느 날, 철길 옆 언덕에서 이제 막 피기 시작하는 찔레 덤불 하나와 만났습니다. 매일매일 같은 길을 걸었지만, 찔레가 거기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찔레는 남모르게 언덕배기에 홀로 앉아, 매일 이 길을 걷는 나를 지켜보다, 5월이 되자 성장을 하고 수줍게 자기를 들어낸 것이었습니다.
반가움과 애잔한 슬픔이 일렁이고 있었지만, 한참 동안 그 슬픔의 정체를 몰랐습니다.
세월 저쪽의, 진흙길 옆 언덕배기에 있던 찔레는, 찔레순을 잘라 먹던 어린 친구가, 그 이랑이 긴 밭으로 돌아가기를 갈망하면서도 도시를 떠나지 못하자, 이 메마른 도시의 철둑길 위 버려진 언덕에 찾아와, 해후를 위하여 꽃으로 단장한 얼굴을 내밀었다는 것을, 나는 한동안의 정적이 흐르고 난 뒤에야 알아챘습니다.
찔레는 속삭였습니다. '꼬마 친구! 참으로 오래간만이지?'
갑자기, 일곱 살 때 종일 나를 따라 다니면서 목덜미를 간지럽히던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어머니의 땀내 젖은 적삼에 안기던 때의 만족감이 나의 전신을 감쌌습니다.
나는 일곱 살 때의 세월 속에 있었던, 그 아무 걱정이 없던 행복 속으로 걸어 들어가, 이런저런 것들을 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봄비가 내리면 꽃을 옮겨 심던 꽃동산, 밀사리하던 동무들의 웃음소리, 임종을 맞아 갓 시집왔을 때의 남편의 사랑을 생각하며 눈물 짓던 이웃집 할머니의 쇠잔하던 모습, 벼랑을 붉게 물들이던 진달래….
그 세월 속에는 아름답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세월로 돌아가는 것은 아직도 버리지 못한 꿈입니다.
찔레 꽃잎이 마르면, 나는 다시 찔레를 잊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찔레는 세월 저쪽의 친구이고, 세월 저쪽 그때에도, 일년에 한 번 꽃이 필 때면 모시적삼을 입은 어머니 같은 모습으로 나와 놀았고, 찔레꽃이 지면 곧 찔레를 잊었기 때문입니다.
또 한 번 세월이 지나면, 아마 나는 여기 이 철길 옆에 앉아 찔레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나를 다시 그리워할 것입니다.
사람은 언제나 자기가 경험한 것들을 가슴에 그려놓고, 그것이 잃어버린 자기라고 생각하여, 그리워하거나 연민하기 마련이니 말입니다.
수필 [심사평]
서정성 물씬 묻어나
응모작품이 600여편에 달했다. 정독을 거쳐 1차로 10편을 선정하였고,2차로 5편을 뽑았다. 토의를 거쳐 문계성씨의 '찔레'를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응모작품의 주제 및 소재가 '고향''어머니' 등 개인적인 회고나 추억이 많았다. 안정감이 있었지만, 신인으로서의 패기,실험성, 참신성, 개성을 보인 작품이 드물었다. 체험을 통한 인생의 발견과 의미 부여가 있어야 수필로서의 가치를 얻을 수 있다. 수필은 짧은 산문이므로 문장이 생명이나 다름없다. 수필은 문장을 통해 삶과 인생을 보는 것이며,그 경지를 드러내게 된다.
당선작 '찔레'는 무엇보다 서정적인 문장의 구사가 탁월할 뿐 아니라, 판소리 가락처럼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이 밖에 좋은 수준을 보인 '방자유기'는 분량 미달로,'조각보'는 문장과 구성에 재질을 보이는 작품이었으나 한 작품을 선정하는 까닭에 탈락되었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앞으로 정진을 당부한다.
수필가 김열규(계명대 석좌교수)·정목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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