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꽃 외 2편 / 이정자
나팔꽃의 꽃말이 덧없는
사랑, 허무한 사랑인 것은
한 번도 가닿지 못한 언제나
마음뿐인 혼자 사랑이기 때문이다
저 홀로 생각하며 꽃을 피우다,
아니다 싶으면 이내 접어버리는
그러다가도 떨치지 못한 미련이
집착으로 남아 외줄타기를 하는 까닭이다
마음의 바지랑대를 칭칭 감고 올라가보지만
길 없는 허공이기 때문이다
비밀의 방 / 이정자
봄에 피는 노루귀는 흰색의 꽃을 피우기도 하고 분홍의 꽃으로 피어나기도 한다
절제와 격정의 농도를 스스로 조절하면서 자신만의 비밀의 방을 갖는다
흰색이 적멸을 눈앞에 둔 정신의 고지에서 발화하는 빛이라면
분홍의 꽃 속에는 천만 겹의 날갯짓과 망설임 그리고 감각의 떨림이 아로새겨져 있다
내가 당신으로부터 도망치고자 하는 마음과 당신에게 가 닿고 싶은 마음
이 상반된 두 열망이 이 봄, 내 안에 흰색과 분홍의 노루귀로 피어난다
연잎 아래 수련 / 이정자
넌출대는 연잎 아래 피어 있는 수련은
마치 우산을 쓰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장대비가 한바탕 못을 뒤흔들고 가도
튕겨오는 몇 방울의 물의 율동과
푸른 하늘을 그리던 기억 뿐
물잠자리 내려앉은 꽃잎은 고요하다
우산이 되어주는 연잎과
초록 이파리 아래 스미듯 기대어 피어난 꽃잎
그것은 사랑일까
흔들리다가도 제자리로 돌아와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의 근원은 당신일까
시집 <아름다운 것은 길을 낸다> 2008년 문학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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