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나팔꽃 외 2편 / 이정자

시인 최주식 2010. 2. 3. 22:30

  2편 / 이정자

 

나팔꽃의 꽃말이 덧없는

사랑, 허무한 사랑인 것은

한 번도 가닿지 못한 언제나

마음뿐인 혼자 사랑이기 때문이다

저 홀로 생각하며 꽃을 피우다,

아니다 싶으면 이내 접어버리는

그러다가도 떨치지 못한 미련이

집착으로 남아 외줄타기를 하는 까닭이다

마음의 바지랑대를 칭칭 감고 올라가보지만

길 없는 허공이기 때문이다

 

비밀의 방 / 이정자

 

봄에 피는 노루귀는 흰색의 꽃을 피우기도 하고 분홍의 꽃으로 피어나기도 한다

절제와 격정의 농도를 스스로 조절하면서 자신만의 비밀의 방을 갖는다

 

흰색이 적멸을 눈앞에 둔 정신의 고지에서 발화하는 빛이라면

분홍의 꽃 속에는 천만 겹의 날갯짓과 망설임 그리고 감각의 떨림이 아로새겨져 있다

 

내가 당신으로부터 도망치고자 하는 마음과 당신에게 가 닿고 싶은 마음

이 상반된 두 열망이 이 봄, 내 안에 흰색과 분홍의 노루귀로 피어난다

 

연잎 아래 수련 / 이정자

 

넌출대는 연잎 아래 피어 있는 수련은

마치 우산을 쓰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장대비가 한바탕 못을 뒤흔들고 가도

튕겨오는 몇 방울의 물의 율동과

푸른 하늘을 그리던 기억 뿐

물잠자리 내려앉은 꽃잎은 고요하다

우산이 되어주는 연잎과

초록 이파리 아래 스미듯 기대어 피어난 꽃잎

그것은 사랑일까

흔들리다가도 제자리로 돌아와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의 근원은 당신일까

 

시집 <아름다운 것은 길을 낸다> 2008년 문학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