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문칼럼)

대화에도 내공이 필요하다 / 강미은 교수

시인 최주식 2010. 2. 4. 21:38

대화에도 내공이 필요하다 / 강미은 교수

 

 

대화에도 내공이 필요힙니다. 겉도는 의례적인 이야기가 한 순배 돌아가고 난 다음부터는, 대화의 내공이 있는 사람이 확연히 구분됩니다. 의례적인 이야기, 일 이야기, 서로에게 예의를 갖추는 덕담과 칭찬까지 다 돌아가고 난 다음의 이야기가 진짜 이야기입니다.  

제가 아는 분은 18년 동안 생명 보험 일을 했습니다. 보험도 팔고, 보험파는 아줌마들도 관리했습니다. 지점을 관리하고 실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영업사원들을 독려해야 했습니다.  매일매일 열심히 하라고 독려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줌마들은 같은 이야기 두 번만 하면 싫어합니다.  한 얘기 또 한다고 짜증스럽게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를 매일 매일 다르게 18년 동안 해야 했습니다.  같은 얘기를 매일 다르게 18년 동안 하려니, 그 레퍼토리가 얼마나 무궁무진했을까요.  그러니 거기서 쌓인 내공이 지금의 최고 강사를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이 부모를 싫어하는 이유나, 직장인들이 사장을 싫어하는 이유가 똑같다고 합니다.  부모나 사장이나, ‘맞는 이야기’만 한다는 것입니다. 공부 열심히 해라, 공부해서 남 주나, 일 열심히 해라, 주인의식을 가져라 등등 그런데 이 ‘맞는 얘기’를 ‘기분 나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싫어하고, 직장인들은 사장 말을 달갑게 듣지 않습니다.  맞는 얘기인데 기분 나쁘게 들리니, 그게 약발을 발휘할 리가 없습니다.

“공부해.”
“공부하느라 힘들어요.”
“뭐?  아빠는 더 힘들어, 이놈아.  지금 글로벌 위기야.  다 힘들단 말야.”

“여보, 요새 나 힘들어.”
“뭐?  나는 당신 만나서 더 힘들어.  그때 결혼을 잘못해서 40년째 고생이야”
뭐 이런 식의 대화가 즐거울 리 없습니다.

내공의 힘이란 것은 참으로 큽니다.  ‘화무십일홍’이라고 했습니다.  꽃은 열흘을 못 갑니다.  하지만 뿌리가 튼튼하면 다음 해에 다시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뿌리가 없으면 열흘 피었다가 지면 그만입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내공이 없는 사람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잠깐 반짝였다가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얼굴 예쁜 거 하나로 배우 되었다가 바닥을 기는 연기로 ‘발연기(발로 하는 연기)’라는 혹평 받고 사라지는 경우와 비슷합니다.  뿌리가 깊고 내공이 깊으면 오래 갑니다.  당장 반짝이지 않더라도 언젠가 기회가 올 때 그 빛을 오래오래 발할 수 있습니다. 

엔지니어링 사업을 하시다가 예술이 좋아서 예술잡지를 만들면서 고군분투하는 사장님이 있습니다.  부인을 비롯하여 모두 다 “그런 일 뭐 하러 하느냐”며 말려도 계속 합니다.  평생 계속 할 생각이시랍니다.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좋아서 하고, 거기서 적지만 수입도 나오니 행복한 일이라며 웃습니다.  예술가나 예술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얼굴이 맑습니다.  그리고 약간 철이 없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니 얼굴이 맑고 밝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철이 없어야 상식을 뛰어넘는 정열을 불사를 수 있습니다.  철이 들만큼 다 들고, 계산 할만큼 다 하고 나면, 저지를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술 하시는 분들은 좀 철이 없는 게 당연하다고 봅니다.

어른이 되어서 철이 다 들고 나면 세 가지를 안 한다고 합니다.   우선, 계절에 대한 표현이 없어집니다.  날씨에 대한 표현은 ‘덥다’ ‘춥다’ 두 가지만 합니다.  아름다운 계절에 대한 표현이 없어집니다.  두 번째로, 동물에게 말 걸기를 안 합니다.  아이들은 강아지에게 말을 겁니다.  그런데 아저씨들은 개를 먹어버립니다.  ‘내 안에 개 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콧노래 부르기를 안 합니다.  지상에서는 노래를 안 부르고, 지하에서 도우미 자매님들과 함께 있을 때만 노래를 부른다는 것입니다. 

대화의 맛이 있을 때 음식이 맛있어집니다.  아무리 산해진미를 갖다놓고, 꽃보다 아름답게 차린 예술적 한식이라고 해도, 대화가 맛없으면 음식 맛도 없어집니다.  오늘은 맛있는 음식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화의 내공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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