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문칼럼)

[ESSAY] '시정마(始情馬)'를 아십니까

시인 최주식 2010. 2. 5. 23:04

[ESSAY] '시정마(始情馬)'를 아십니까

  • 허원주·동아대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情事를 시작하는 말
시정마는 암컷의 마음을 사로잡은 뒤 끌려나간다.
열정에 들떴다가 남 좋은 일 시키는 내 꼴과 꼭 닮았다…
하지만 세상은 시정마들의 헌신 위에서 돌아가는지도 모른다.

"자네, 시정마라고 들어보았나?" 금요일 오후 김해 경마공원이 개장하는 날. 친구의 차로 난생처음 경마장 구경을 나서는 길이었다. 친구는 경주마를 세 필이나 낙찰받아 이제 어엿한 마주(馬主)가 되었다.

"시정마라, 글쎄, 처음 듣는 말인데."

"시작할 시(始), 정사할 정(情), 말 마(馬) 즉, 정사(情事)를 시작하는 말이란 뜻이지." 친구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렇다. 경주마는 주력과 경기 성적에 따라 여러 군(群)으로 나뉘는데 최상급 경주마들만 출전하는 일군(一群)에서도 발군의 성적을 보이는 말은 종마(種馬)로 발탁된다. 일단 종마로 발탁되면 온갖 보살핌과 호사를 누리며 발정기의 암말을 수태시키는 임무만 수행하게 된다. 많게는 일년에 백 마리에 가까운 암말과 교접을 한다니 참으로 제왕의 신분이다. 문제는 아무리 종마라 하여도 체력에 한계가 있고 시간 제약이 있어 교접할 암말과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없다는 점이다. 또 암말도 발정기라고 하지만 수태만을 위한 교접을 거부하는 경우도 왕왕 있고, 무리한 교배를 시도할 경우 종마가 암말에 차여 상처를 입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이런 문제 때문에 종마의 마주들은 제왕의 씨를 최단시간 효율적으로 얻어내기 위한 계략을 꾸민다. 즉, 시정마의 등장이다. 암말을 흥분시켜 줄 다른 수컷을 먼저 투입하는 것이다. 이 시정마가 장시간 고생해 암컷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갑자기 침입자가 들이닥친다. 이들은 가차없이 시정마를 끌어내고 제왕 말을 암컷에게 들여보낸다. 열정에 눈이 먼 시정마는 네 다리를 뻗치며 안간힘을 써 보지만 결국 끌려나간다. 잔칫상을 차리는 데 진력을 다하고 수저도 들지 못하고 쫓겨나는 슬픈 운명이다. 시정마의 불쌍한 모습이 영화의 슬로 모션처럼 떠오르고 있을 즈음 차는 어느새 경마공원 안으로 접어들었다.

'질주와 맥박'. 경마장 입구 도로변, 경주마를 타고 질주하는 기수들의 사진과 그 밑에 붙어 있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친구는 자기 말 중 한 필이 오늘 처음 경주에 출전하니 재미 삼아 적은 돈으로 베팅을 해보라는 권유를 하였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이왕 팔자에도 없는 경마 구경을 하게 되었으니 오늘 운세를 한번 시험해보고 싶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나는 2만원을 투자하여 친구 소유 말에 만원, 우승 가능성은 없지만 배당이 높은 8번 말에 만원을 걸었다. 말들이 결승선으로 들어 오자 내 눈은 8자의 등 번호를 빠르게 찾고 있었다. 숨 가쁜 질주와 요동치는 맥박의 순간이다. 골인지점을 20~30m 남겼을까. 갑자기 8번 말이 쏜살같이 선두로 뛰쳐나가는 것이 한눈에 잡혔다. 세상에 이런 일이. 다음 순간 8번 말이 가뿐하게 골인지점을 일등으로 통과하는 것이 아닌가. 만세! 나는 체면도 잊고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오늘 운수대통일세" 의기양양하게 옆자리의 친구를 찾았다. 그런데 친구의 표정이 이상하다. "뭐가 운수대통이야? 3번이야 3번." 이게 무슨 소린가.

"이 사람아 정신 차려. 오늘 우승 예상마인 3번 말이 우승했다니까."

골인 상황을 느린 동작으로 다시 보여주는 중계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곡선 주로에서 8번 말은 선두 그룹에서 탈락하였고 우승은 3번 말이었다. 마지막 순간에 흥분하여 3자가 8자로 보였던 것이다. 이럴 수가. 아무리 상금에 눈이 어두웠기로 3자가 8자로 보였단 말인가. 3번 말에 걸었던 사람들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그 순간 문득 친구가 이야기해준 시정마가 떠올라 피식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열정에 들떴다가 그냥 끌려나가는 시정마와 남 좋은 일 시키고 헛발질한 지금 내 꼴이 꼭 빼다 박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인간사에도 시정마 역할을 떠맡는 인생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며칠 전 동료 외과 교수는 한숨을 내쉬며 말하기를 온갖 정성을 다해 진단을 내려준 환자가 일언반구도 없이 서울로 수술을 받으러 가버렸다고 하였다. 무슨 특별히 어려운 수술도 아니거니와 최첨단 장비가 필요한 경우도 아니었다. 사실 지방 의료계에서는 이런 일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조만간 KTX부산까지 개통되면 이런 일이 더욱 다반사로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치료 의사를 선택하는 것은 환자의 권리인 것을. 그저 우리를 믿고 진료를 받으러 오는 환자들을 지성으로 대하다 보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오지 않겠는가.

생각해보면 이 세상은 수많은 시정마들의 '희생'과 헌신 위에서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스포트라이트는 제왕마 인생이 받지만 그 뒤엔 많은 시정마들이 있다. 시정마가 어엿한 제왕마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시정마 인생 여러분, 우리 힘냅시다.

'수필(신문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제야 알았다  (0) 2010.02.09
오지랍(?)이 넓다  (0) 2010.02.09
[정민의 세설신어] [41] 작가정신  (0) 2010.02.05
대화에도 내공이 필요하다 / 강미은 교수  (0) 2010.02.04
우유곽(?)  (0) 2010.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