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독 / 김영산
- 지금껏 내 목덜미에 남아있는 풀독이여
나는 시장에서 더덕 몇 뿌리를 사다 심었지
어느 날 싹이 돋아 무럭무럭 줄기를 뻗어 갔거니,
나는 또 어느 날 노각을 사다 씨를 빼어
더덕 옆에 뿌리고 거름흙을 덮어 주었지
그랬더니 이번엔 오이씨들이 싹을 틔워
점점 줄기를 뻗어가며 잎 그늘을 드리웠지
무성하게 무성하게 오이들이 세력을 넓혀갈수록
더덕 줄기는 시들시들 말라비틀어지다 죽어버리고
나는 잘 자라길 바랐지만,
그제야 돼지를 기르며 사는 시골 친구 말이 생각났지
돼지막 공터에 풀들이 무성하다가
다른 종들의 풀들이 공터를 차지하는 순간
질기디 질긴, 영화 아무 자취 없이 사라져 버린다고
부드러운 혀에 풀독이 오른다
날름날름 대가리를 치켜들고 다가오는
느리며 잽싼 풀의 걸음걸이
시집 <게임광> 2009. 천년의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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