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불멸의 오막살이 / 정병근

시인 최주식 2010. 2. 4. 21:47

불멸의 오막살이 / 정병근

 

한 발만 헛디뎌 봐라

고압선이 하늘을 긋고

차들이 질주하는 간선도로

가로등 아래

까치집 하나 걸려 있다

그 누구의 다비에 쓸 나뭇단인가

근면 성실 노력의 가훈을 실천하는

저 집터가 세다

고압의 정신과 고속의 바퀴와

밤을 환하게 밝히는 불빛이야말로

우리의 경전이 아니더냐

물려받은 전답 없이 식구만 많은 집

일찍 죽은 누이의 기억을 가진 집

가문은 텅 비었고 뼈대만 소복한 집

우린 언제 조용해져요 어두워져요

걱정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

너희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나면

집은 곧 어둑한 적막에 잠길 것이니

태양이 떠오를 때마다

불면의 바알간 눈알을 닦는

저 하루아침의 오막살이

 

<문학 · 선 > 2008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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