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단편 소설

2005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소설 (가작) - 물의 환각 / 노혜옥

시인 최주식 2010. 2. 4. 22:24

 

2005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소설 (가작)

물의 환각 / 노혜옥


"몸을 짜악 쪼갠다고 생각해 봐.”
 봉오리가 차츰 벌어지면서 소담스럽게 피어오르는 꽃 속에 보일 듯 말 듯 숨어있는 여인을 그는 그리는 중이다. 진자주색 모란꽃 이파리들이 눈앞에 다가온다. 그의 붓끝이 스칠 때마다 꽃들은 더욱 무르익어 짙은 자주빛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파리들과 줄기는 여인의 몸을 반쯤 가리고 있다. 여인은 꽃과 나무들 사이를 걸어나온다. 어디론가 날아가려는 것만 같다. 새처럼.
 “쪼개니 양쪽의 생김새가 꼭 들어맞지 않아? 오른쪽 팔꿈치를 구십도 정도로 꺾어 위로 들어보라구.”
 맨발로 테이블 위에 올라선 지연은 옆구리에 얹었던 팔을 천천히 올린다. 조금 전과 각도가 차츰 달라지면서 허리의 근육과 살갗도 연이어 움직여 올라간다. 느린 동작으로 팔과 다리 그리고 몸통의 위치를 바꾸면서 적당한 포즈를 찾아 나간다. 그러다가 태엽 풀린 자동인형처럼 그만 정지한다. 무심하게 지연의 자세를 지켜보는 그의 눈동자가 유리알처럼 차갑다.
 창 너머로 시선을 던진다. 호숫가엔 가을이 한창이다. 열기가 가신 햇살이 물가에 줄지어 선 나무들의 이파리 사이로 흘러내리고 있다. 바람이 불 때 마다 노란색, 다홍색, 빨간색으로 교차되는 그 빛에 지연은 눈이 시리다.
 “새를 표현해 봐. 비상하려는 새를…”
 뒷짐을 지고 또다시 명령하는 그의 음성에 사뭇 짜증이 섞여있다. 지연은 두 팔을 위로 올린다. 발끝에도 힘을 주어 발돋음을 한다. 활처럼 동그랗게 휘어진 자세인 채로 지연의 눈은 한창 단풍이 물든 호숫가로 향한다. 옥색 하늘에는 우유를 흩뿌려놓은 듯 새하얀 새털구름이 번져있다. 바람이 한 차례 불어온다. 낙엽이 공중에 후르르 날다 둥글게 반원을 그리며 서서히 땅에 떨어진다. 화실 안에는 사각거리는 연필소리만이 들린다. 그 사이로 좀 쉰 듯한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정지해 있을 때나 마찬가지로 하늘을 나는 동작을 했을 때도 대칭의 특징은 살아있다. 움직임의 방향을 달리한다해도 몸의 양 갈래가 똑같게 생겼기에 우리의 눈은 대칭이 자아내는 매력을 느끼게 된다. 그러니까 동작을 멋스럽게 할수록 더 독특한 아름다움이 풍긴다. 그런 것은 다 대칭에서 비롯된다. 균형이 잡혀있다는 것은 자연스럽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생들은 숨을 죽이고 지연의 나신을 바라보고 있다. 설명이 끝나자 그들의 시선은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지연의 등으로 이동한다. 척추 가운데 살짝 들어간 곳에서 모든 시선은 일제히 정지한다. 4B 연필을 그러쥔 학생들의 손이 제각기 이젤 위에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움푹한 골을 묘사하려고 휘어진 방향과 똑같이 내리 긋는다. 모델의 자세와 학생들의 위치에 따라 제 각각 달라진 여인상이 여러 개의 와트만지 위에 그려진다. 유독 거친 종이 위를 스치는 4B연필 소리가 지연의 귀를 간지럽힌다. 호수 위를 넘어온 가을 해가 석양을 화실 안으로 들여보낸다. 그의 긴 그림자가 바닥에 드리워진다.
 학생들이 다 돌아간 화실은 스산하다. 그의 입술 끝에 걸린 다갈색 파이프는 퇴락한 실내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시선조차 돌리지 않은 채 그는 내일 떠날 거라고 담담히 말한다. 그의 말투는 조금도 떨리지도 않는다. 그의 얼굴에는 미세한 동요조차 없다. 화실 한 켠에 놓인 석고상처럼.
 지연은 찬바람이 휘몰아치던 지난 겨울 커다란 트렁크를 밀며 화실로 돌아온 그를 떠올린다. 세상의 외진 곳으로 달아나고 싶어했던 그를.
 “여긴 한겨울이네.”
 그는 한달 간 이집트에 머물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이슬람 미술문화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그곳의 천연물감을 구입하기 위해서 미리 계획했던 일이었다. 화실 구석에 서있던 지연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트렁크를 내려다보고는 한달 동안 어떻게 지냈냐고 물었다.
 “생각보다 음식이 조금 안 맞았지만 그럭저럭 지낼 만 하더군.”
 트렁크를 풀면서 그는 말했다.
 “사막이 온통 모래로 되어있다는 생각은 잘못이야.”
 밖에서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창문이 흔들렸다.
 “그곳에도 옹기종기 마을이 있더군. 꽃들도 있고 나무들도 있어. 야생화까지 있으니까.”
바람이 호수의 수면을 잘게 흔들어놓고 갈대밭도 수런거리게 했다.
 “밤이 되어 안내원과 함께 양봉낙타를 타고 사막으로 나갔지. 때마침 노을은 물들기 시작되고 있었어. 먼 하늘에서 담홍색으로 다가오던 노을 빛은 무지개처럼 여러 가지 색으로 퍼져갔다가 마지막에 핏빛으로 타올랐어. 아주 장관이었어. 하늘이 그토록 붉을 수 있다니. 오래도록 그대로 모래 위를 비추더군. 천지에 온통 붉은 빛 뿐이었지. 그러다가 노을은 서서히 사라지고 어둠이 내리더군. 그리고 사방이 캄캄해지더니 그 자리에 동두렷이 달이 떠오르더군. 상상해봐. 사막의 모래를 뚫고 장엄하게 떠오르는 달의 광경을. 그 자리에 붙박인 듯이 서있었지. 어떤 충만감이, 아무 부족함을 느낄 수 없는 빛나는 충만감이 그곳에 있더라구.”
 창가에 선 나목들 사이로 달빛이 내려앉았다.
 “돌아 나오는 길에 하쟈스지방의 암염을 도시로 가져가 팔려는 상인들을 만났어.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 그들처럼 달빛을 따라 가고 싶다는 생각 말야.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대상들처럼.”
 지연은 호숫가로 시선을 돌렸다. 호수 위에는 반쯤 녹다만 살얼음이 둥둥 떠있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주먹만한 돌을 꺼내 지연에게 내밀었다.
 “받아 둬. 암염조각이야.”
 지연은 묵직한 그것을 손에 받아들고 내려다보았다.
 “그들은 이것을 가루로 만들어 먹기도 하고 화장품으로 쓰기도 한다더군. 지층에 눌린 나무들이 부식해 생긴 흙인 셈이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광물질이라고 해.”
 검은색 흰색 흙색이 고루 섞인 그 광물질은 묘한 광택을 발산했다.
 “오래 전 암염은 광맥을 이루어 사막의 모래 속 깊이 숨어있었던 모양이지. 그 위에 쌓여있던 암석의 무게에 떼밀려 밑으로부터 짜 올리듯이 지표로 밀려 올라왔다더군.”
 지연은 탁자에서 기어 내려와 의자 위에 놓인 하얀색 담요를 집어든다. 그녀의 손이 잠깐 주춤한다.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담요를 몸에 둘둘 감기 시작한다. 모델 일을 마치고 나면 모든 동작이 끝나자마자 재빨리 담요로 지연의 몸을 가려주던 예전의 그를 떠올린다.
 “너만은 나를 이해해 주는군.”
 예전의 그는 담요를 둘둘 감고있는 지연을 담싹 안아 들어올려 빙빙 돌리곤 했었다.
 “어딜 가도 네 생각이 나더라. 사람 마음은 어쩔 수가 없나봐.”
 흰 담요는 그의 손에서 천천히 풀렸다. 탁자 위에 섰을 때와 사뭇 달라진 그녀의 나신이 그의 품안에서 색조를 띄었다. 그런 때면 겨울임에도 둘 사이에는 어떤 공기의 흐름이, 한 여름의 열기 같은 것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비상하는 새를 흉내내기 위해 발돋움하느라 한참을 서있던 그녀의 몸이 뻣뻣해지고 맨 발바닥이 욱신거리는 데도 줄곧 창가의 호수를 바라본다. 석양에 비친 호수 표면에는 잔 비늘이 빛을 받아 일렁인다. 어제도 그제도 똑같은 포즈를 취하느라 힘들었다. 그림이 완성되려면 어쩔 수 없다.
 물에 개인 자주빛 물감은 그의 손끝에서 꽃잎이 되었다가 꽃술도 되고 꽃봉오리도 된다. 그는 붓질을 하다 말고 시계를 보더니 나갈 채비를 한다. 그녀도 코트를 걸치고 백을 집어든다. 화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니 하이힐 밑에 깔린 낙엽이 푹신하다. 그는 낡은 승용차에 시동을 건다. 핸들을 잡고 앞을 바라보는 그의 옆 모습을 훔쳐본다. 제법 자란 수염이 꺼칠하게 보인다.
 “지연이도 올해가 넘어가면 서른 다섯이 되는군.”
 지연은 볼우물을 만든다.
 차는 화실을 벗어나 워커힐을 지나간다. 밤바람에 한낮의 소란스런 기운이 어디론가 떠밀려 가면서 검푸른 빛 도는 대기가 거리에 내려앉는다. 빛이 사라지는 거리에 밤의 네온사인이 점멸한다. 아스팔트 위를 서둘러 지나가는 앰뷰런스 타이어의 마찰음이 들린다. 그 위에 겹쳐져 자지러지는 듯한 차의 경보음에 지연의 심장이 오그라든다. 멀쩡했던 어머니가 쓰러진 일, 앰블런스에 실려가고, 중환자 실에서 머물던 기억들이 한 바탕 꿈이었던 듯 아득하게 느껴진다.
늘 비슷한 일을 맞닥뜨리는지 의사의 음성은 차분했다.
 “뇌혈관 동맥에 꽈리가 생겼어요.”
 사람의 몸 속에도 다홍색 꽈리가 열매를 맺는 것일까. 어렸을 적 시골집엔 꽈리 꽃이 뒤뜰에 피어오르곤 했다. 조그만 청사초롱 같은 꽈리들이 줄기에 소담스럽게 매달려있었다. 조그만 꽈리들은 풍선처럼 부풀어올라 그대로 두면 파열할 것이라고 했다. 엑스레이사진에 찍힌 두개골은 커다란 호랑나비가 날개를 펼쳐놓은 것 같았다. 날개사이의 더듬이쯤에 자리한 혈관이 탈이 났다고 했다. 오래되어 낡아 녹이 슬었다고 나이 많은 여의사는 조근조근 설명했다.
 “헝클어지고 촘촘히 꼬인 혈관을 곧게 편다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고도 남는 길이랍니다.”
 혈액은 길고 긴 혈관 속을 헤엄치면서 우리 몸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가 어느 시점에선가 멈추어 버린다. 생명이 끝나는 것이다. 사진 속의 호랑나비는 피사체였던 어머니 자신과는 무관해 보였다. 외피를 벗어 던진 내면의 실체는 기묘하다. 미모는 피부두께 뿐이라지.
 워커힐을 지나 능동에 들어선 차는 어린이 대공원 후문 쪽 길가에 선다. 지연의 집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지연을 내려놓은 차는 계속 달려간다. 오늘 저녁 대학의 한 야간 강의가 있다.
 지연은 골목길로 접어들어 집으로 간다. 골목길을 들어서면 비좁은 양 갈래 길이 나온다. 어두워지면 지연은 가끔 다른 길로 들어선 적이 있다. 열 한 살이나 나이 많은 그를 사랑하게 되었던 것처럼 지연은 곧잘 길을 잃어버린다.
 어머니는 흔들의자에 앉아 해질녘 어둑해진 마당에 붉은 잎을 떨구고 있는 단풍나무를 바라보고 있다.
 “저 왔어요.”
 어머니는 딸을 지그시 내려다보더니 이번에는 고개를 갸웃이 기울이고 잎 하나 남지 않은 목련의 빈 가지에 눈길을 준다. 어둠이 어머니의 머리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가만히 앉아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한 그루의 나목 같다. 집안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는 지연에게 어머니의 시선이 천천히 따라다닌다.
 “왜 이렇게 늦은 게냐. 종일 기다렸는 걸.”
 몇 개월 동안 병상에서 지내던 어머니가 사흘 전 환자복을 벗으면서 내뱉는 첫 마디는 어눌하고 느렸다. 병실 문을 나서는 어머니의 눈엔 바깥세상으로 향한 자유로움과 가족이 있는 일상으로 돌아간다는데 대한 기대감이 서려있었다. 요즘에야 집집마다 욕실을 갖추고있어 공중목욕탕에 가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어머니는 모처럼 가고싶어했다. 퇴원한지 사흘 만이다.
 “침대에 누워 수건으로 닦아주기만 하는 것을 견디려니 갑갑하구나. 뜨거운 욕탕에라도 들어가고 싶어.”
 “가실 수 있겠어요?”
 종일 딸을 기다린 어머니의 어깨에 외투를 씌우며 지연은 순간 불안감에 휩싸인다. 어머니는 당신이 중환자라는 것을 잊은 것일까. 생각해보면 자신에게도 어머니가 병자라는 사실 또한 낯설게 느껴진다. 어머니는 그저 어머니일 뿐, 기대고 의지하고 투정부릴 수 있는. 그래서 옛말에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드물다고 했을까.
 어머니를 침대에서 일으킨 후 어깨를 부축하고 병실을 지나 방사선 촬영실로 향했다. 마침 복도 맞은 편에서 노부부가 걸어오고 있었다. 노인은 링거병을 들고, 헐렁한 환자복을 입은 늙은 아내는 남편의 팔에 기댄 채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노인은 자칫 아내가 넘어지기라도 할까봐 조심스럽게 아내를 부축했다.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어머니의 표정에는 부러움이 스쳤다.
밤바람이 차갑다. 외투 위에 목도리까지 둘러준 다음 어머니의 팔을 끼고 ‘미라클 사우나’로 향한다. 입구에는 플라스틱 야자수가 커다란 잎을 늘어뜨린 채 열대지방의 노천온천인양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어머니의 옷을 옷장 안에 개켜 넣은 지연은 어머니의 팔을 붙잡고 천천히 탕의 문을 향해 걸어간다. 반쯤 열린 여탕 문틈에서 뜨거운 김이 훅 끼쳐온다. 물비린내가 섞인 뜨거운 김. 익숙한 냄새다.
 이 십여 년 전 그녀가 어렸을 적엔 집안에 욕실을 갖춘 집이 거의 없었다. 팔월 추석과 음력 설날이 되면 동네에 하나 밖엔 없는 공중목욕탕엔 사람들로 붐볐다. 여탕 안에는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아기를 안고있는 여자, 이제 막 가슴에 몽우리가 솟으려는 어린 소녀들, 지치고 쭈글쭈글해진 몸을 뜨거운 탕 안에서 녹이고 싶은 늙은 여자들이 수건과 비누가 든 고무바가지를 하나씩 차지하고 촘촘히 앉았다.
 촤르르, 촤르르….
 물 끼얹는 소리가 수증기로 뿌얘진 실내를 가득 메웠다. 여자들은 야무진 손으로 살갗을 북북 문질러댔고, 이어 메밀국수가락 모양의 해묵은 때가 미끈미끈한 바닥에 뚝뚝 떨어져 내렸다.
 드높은 천장으로부터 형광 불빛이 환히 내리비친다. 다행히 탕은 한적하다. 옷을 벗어 장안에 집어넣으려는데 무엇인가 바닥에 툭, 떨어진다. 암염이다. 지연은 암염을 손에 집어든다. 어두운 빛깔의 암염 속에 숨어 반짝이는 빛이 보인다. 시간이 갈수록 더욱 또렷해지는 그의 눈길처럼. 하지만 정작 그의 마음은 먼 곳으로 향해 달떠있다.
 뜨거운 탕에 조심스레 들어가 앉는다. 다리의 피로가 가시는 것 같다. 젖은 손으로 긴 머리를 뒤로 넘기며 얼굴을 반듯이 젖히고 눈을 감는다. 지연의 검은 속눈썹이 물기를 머금어 윤이 난다. 뜨거운 물의 수면 위에 천장에 장식된 스테인드글라스의 현란한 무늬가 내리 비추어 잘게 일렁거린다.
 호숫가에서 물수제비를 뜨던 그는 돌멩이를 던진 후 수면 위에 고개를 잠시 고정시킨 채 또 말했다. 난 내일 아침 떠나. 다시 둥글고 납작한 돌을 골라 주워 힘껏 호수를 향하여 던졌다. 돌은 제비가 물을 차며 공중 목욕하듯이 날아갔다. 산 그림자 어리는 수면 위에 츠츠츠, 파문이 일었다.
 탕 속에서 금방 빠져 나온 지연의 몸에서 봄 아지랑이 같은 김이 피어오른다. 바닥에서 플라스틱 대야를 집어든다. 욕조 턱에 손을 집고 허리를 굽혀 대야를 물 속에 푹 담근다. 이내 찰랑찰랑 넘치도록 물을 퍼 올린다.
 지연은 자신의 왼쪽 다리를 향해 허리를 굽히고 뻣뻣했던 발가락을 주무른다. 잠시 후 왼쪽 다리에서 손을 떼고 대야에 떠놓은 물을 뿌렸다. 고개를 든다. 앉은 키에 맞추어 나지막이 달아놓은 거울이 눈에 들어온다. 자신의 얼굴과 상반신이 거울에 비추어 보인다. 상반신 위로 환자복을 반쯤 열어제친 어머니의 몸이 겹쳐진다. 풀어헤쳐진 어머니의 앞섶에 가늘고 투명한 호스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코에는 산소호흡기가 팔에는 링거병 주사기가 매달려 있었다.
 사람의 몸 속도 대칭일까. 의사의 정수리 뒤로 새하얀 벽에 걸린 인체 모형도를 바라보았다. 그림 속의 인체내부는 스케치북 위의 모란꽃처럼 검붉었다. 외양과는 달리 비대칭이었다. 우심실의 근육은 펌프처럼 혈액을 힘차게 뿜어내고 좌심실은 조용히 받아들이기만 한다고 의사는 말했다. 그래서인지 왼쪽 폐가 오른쪽보다 조금 오므라든 것 같았다. 한사코 세상의 후미진 곳으로 달아나려는 그의 마음을 엑스레이사진으로 찍을 수는 없을까.
 몸에 물을 또 끼얹는다. 대야 가득 물을 담아 두어 번 더 뿌린다. 물세례를 맞고 땟물이 흩어진다. 밀어놓은 부위의 살갗은 껍질 벗겨놓은 삶은 계란의 표면처럼 희고 반들반들하다. 지연은 다시 물을 뜨기 위해 탕으로 향한다.
 탕 속에 앉아 왼 팔을 욕조 턱에 고이고 딸을 물끄러미 바라다보는 어머니의 기운 없는 모습이 물 그림자에 어른거린다.
 어머니의 의식은 간헐적으로 끊어졌다 이어졌다 했다. 중환자 실에 누워 기계음을 듣고 있던 어머니의 무의식 세계에는 무슨 생각이 들어있었을까. 며칠간의 치료로 의식은 돌아왔으나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중환자 실에서 한 달을 보낸 후 비교적 예후가 좋아 다시 일반병실에 머물게 되었다. 며칠 후면 퇴원해도 좋다고 말했다. 여의사는 환자가 머지않아 증세가 더 악화될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의사라기보다는 유치원 원장의 분위기를 풍겼다. 하얗게 센 머리를 살래살래 흔들면서 병약한 원생 달래듯이 나직이 말했다.
 “지금부터는 정상적인 삶이 아니지요. 이제까지와는 아주 다른 삶이 시작되는 것이랍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할머니의사가 지연을 보고 엷게 미소지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갓난아기로 돌아갑니다. 보호받아야 하는 것이죠.”
 지연을 지긋이 바라보고 의사는 찬찬히 말했다. 그녀의 미소가 가느스름한 잔주름을 일으키고 눈가에 서린 슬픔이 흰 머리카락에 가닥가닥 스며들었다.
 탕 속에 앉은 어머니에게서 시선을 거둔다. 양 다리를 다 주무른 지연은 오른 손으로 왼쪽 팔을 밀기 시작한다. 어깨쯤에서 다시 손길을 되돌려 내려온다. 지연은 자신을 바라보던 그의 차가운 눈매를 기억한다. 세상일에서 멀어지려는 그의 분위기에서 지연은 남모르는 친근감을 느꼈다. 방심한 것 같기도 하고 방향을 잃은 듯한 걸음걸이에서 한사코 낯익은 향수를 느끼는 것은 자신이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지연은 테이블 위에 떠놓은 대야 속의 물을 자신의 어깨에 들이붓는다. 가슴과 등에 솟은 땀이 씻겨 내려간다. 두 팔을 위로 죽 뻗는다. 기분이 상쾌하다. 팔을 다시 내리고 심호흡을 한다. 어머니는 탕 안에서 눈을 감고 무슨 생각을 할까.
 왼쪽 발을 다 주무른 지연은 오른쪽을 똑같은 순서대로 누른다. 심장을 싸고 있는 빗장뼈들이 손가락을 쭉 펴고 때 수건을 감싸 쥔 지연의 손바닥에 만져진다. 지난 겨울 빗장이 굳게 질러진 화실 문을 보고 그가 떠난 것을 알았다.
 “산다는 것이 진절머리가 나.”
 그는 버릇처럼 말했다. 사막에 갔다온 이후 그 버릇은 더 심해진 것 같았다. 추운 날 사라졌을 때에도 곧 돌아오겠지 하고 지연은 기다렸다.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본다. 어깨를 덮은 긴 머리와 둥그런 가슴이 거울에 비친다. 수증기가 덮여 거울은 뿌옇게 보인다.
 “그곳의 봉긋한 모래언덕은 대자연의 알몸을 보는 듯 하단다. 새벽에 눈을 뜨면 마치 여인의 살갗처럼 사방에 살색 모래가 유연하게 깔려있지. 아침에 붉은 빛이 감도는 선명한 곡선이 되었다가 한 낮에는 하얗게 탈색된 평면으로 변하더라. 바람이 모래더미를 감쪽같이 옮겨버리는 것이래. 그러다가 석양에는 황금빛의 능선이 돼버리곤 하지.”
 그는 정말 사막으로 떠나려는 것일까.
 지연은 이태리타월 끼운 오른손을 살살 놀린다. 부드러운 때가 일어난다. 탕에서 나와 지연의 곁에 앉은 어머니는 조근조근 말은 하기 시작한다.
 “이 나이 되고 보니 사는 게 별거 아니더구나. 그저 한바탕 꿈을 꾼 것만 같애.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순리대로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게야. 세월을 지낸 다음에야 나도 깨닫게 되었다. 오순도순 서로 도우며 욕심 없이 사는 게 좋은 거다. 그러다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리 뜨지 않은 시간차로 비슷한 시기에 가는 것도 축복이다. 같은 날이면 더 좋고. 한 사람 떠나고 나면 그 빈자리를 감당하기 어려운 게야.”
 어머니의 몸에 물을 뿌리고 비누칠을 시작한다.
 “나이가 너무 많은 것도 ……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쉽질 않거든.”
 어머니의 몸에 하얀 거품이 덮인다.
 “돌아 앉아봐요. 등을 닦게.”
 어머니가 몸을 틀었다. 옆으로 살짝 몸을 돌려 고개를 외로 꼬았다. 지연은 어느 날 아버지의 사진을 하염없이 들여다보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했다. 그저 손에 잡히지 않은 슬픔과 섬세함이 조용히 머물러있는 목을 숙이고 그녀는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윤나는 까만 머리를 쪽 뒤통수에 붙인 어머니의 뒷모습은 함초롬 했다. 사진에서 눈을 뗀 어머니는 허공으로 시선을 던지고는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딸에게 조용히 말했다.
 “늬 아버지 갔단다. ”
 지연은 말없이 사진 속의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는 미소짓고 있었다. 지연은 기억 속에서 그와 비슷한 누군가의 얼굴을 어슴프레하게 떠올렸다. 지연은 확실하고 분명하게 그가 없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깨달아졌다. 이 마음 속 외줄타기의 정체는 무엇일까.
 바가지에 물을 퍼 어머니의 땀이 밴 어깨에 촤악, 끼얹었다.
 “니 아버지가 남긴 거라곤, 이 목간통밖에 또 뭐가 있니.”
 손재간이 있던 아버지는 집안에서 무엇인가 만들기를 좋아했다. 젊었을 적 일본에서 공부하던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뒤뜰에 작고 네모진 시멘트벽을 세워 욕실을 지었다. 주물로 뜬 둥그런 난로에 장작불을 지펴 탕 속에 더운물이 들어가도록 고안된 간이 시설이었다. 지연의 기억 속엔 아버지의 모습은 희미할 뿐이고 어두컴컴한 목욕탕만이 남아있다.
 난로에 불이 지펴지면 그날은 온 식구가 목욕하는 날이었다. 아버지로부터 시작하여 마지막에 어머니와 지연이 들어갔다. 탕 안에 먼저 들어가려고 물을 내려다보니 붉은 백열등이 물 속 시멘트 바닥을 비추고 있었고, 시커멓게만 보이는 물결이 바닥을 가늠할 수 없는 깊은 우물처럼 무섭게만 느껴졌다. 마을 어귀에 우물이 있었다. 가뭄이 들어도 마른 적이 없는 그 우물은 돌을 던지면 한 참 후에야 철렁, 소리가 났다. 언젠가 들여다 본 그 우물 속은 대낮인데도 한 밤중처럼 컴컴했다.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살고 있다고 동네사람들은 말했다.
 꺼멓게 일렁이는 수면 아래에 입을 딱 벌린 이무기가 숨어있을 것만 같았다. 어린 지연은 물 속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울며 어머니의 허리를 꽉 껴안았다. 물 표면엔 단발머리의 빼빼 마른 일곱 살 소녀와 삼십대 초반의 젊은 어머니가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나란히 비추어 보였다.
 ‘미라클’ 사우나탕 벽에는 대형거울이 서있다. 환한 거울 속에 삼십이 훌쩍 넘어 버린 딸과 비슷한 나이에 혼자된 후 이젠 폭삭 늙어 병을 앓고있는 어머니가 그때의 그 간이욕실에서처럼 발가벗고 서서 자신들의 나신을 바라보고 있다.
 비누칠을 하니 새 하얀 거품이 인다. 지연은 어머니의 등을 살살 민다. 개업기념으로 창구에서 받은 때밀이 타월엔 ‘미라클’이라는 상호가 새겨져있었다. 미라클. 그 말대로 물 속에 몸을 담그기만 해도 병이 나을 수 만 있다면. 기적처럼.
 물은 흐르는 시간만큼 인간의 몸에서 증발해나가고 그 때문에 인간의 몸이 쭈글쭈글해진다. 욕탕 한 구석에 놓여진 정수기에서 물을 한잔 따라 어머니에게 내민다. 한잔의 물이 어머니의 몸 속에 흘러 들어가 피를 돌게 하고 생기를 되찾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도 함께.
 “아, 시원하다.”
 탕 속에 다시 몸을 담근 어머니는 눈을 지그시 감는다.
 “그 옛날 내가 너처럼 젊었을 적 네 아버지를 만났지. 그때 난 까맣게 몰랐단다. 이미 부인과 아들이 있다는 것을. 그걸 알았을 땐 이미 빗방울 만한 네가 내 속에 자리잡은 후였지. 그래 어쩌겠니. 죄는 더 이상 짓고싶질 않았는걸. 네가 다 자란 후에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입밖에 내지 않으면 그것은 애당초 있지도 않았던 일이 되고 마는 것만 같아서…… ”
 지연은 기억에도 없는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리려고 애쓴다.
 “그래도 방울꽃처럼 자라나는 너의 재롱을 보니 고통이 덜해지더라. 탕 속에서 무슨 풀장인양 물장구치던 너를 보고 더는 미워하지 않기로 했단다.”
 물 속에서 늘 아버지냄새를 맡았던 것일까. 어린 지연은 언제나 마음을 눅이는 물이 좋았다. 태초에 생명체는 물 속에서부터 비롯되었다지. 진화하기 전 인류의 조상은 물고기처럼 물 속에 살았다. 아기가 어머니의 자궁 양수 속을 떠다니는 것도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뜨거운 김이 어머니의 새하얀 살갗을 훑으며 온 몸으로 짜릿하게 번져간다. 따뜻한 물 속에서 어머니의 몸이 노곤하게 풀리고 있다. 노인이라고 해도 아직 고운 태가 남아있는 어머니의 반듯한 이마에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네 아버지 등에는 크고 까만 점이 있었단다. 여름이면 맑고 시원한 우물물을 길어 올려 등에 부어주었지. 내가 그 점을 보고 맘속으로 북극성이라고 이름 지었다. 밤하늘의 별을 볼 때면 가장 선명하게 반짝이는 북극성 말이다. 밤길을 헤매는 나그네에게 먼 빛을 던지는…… 허나 이젠 니 아버지 찾을 일도 없으니…… ”
 어머니의 크고 검은 눈동자는 몽롱해지고 눈꺼풀은 조금씩 무거워져갔다.
 스테인드글라스의 붉고 푸른 불빛이 김이 오르는 수면 위를 물들이고 있다. 어느 밤이었던가. 반짝이는 별이 숨을 거둔 그때는. 호수 위의 별자리는 보석을 박아놓은 듯 선명하고 아름다웠다. 지연은 기억을 더듬어 가장 환하고 밝은 별을 찾아내려고 눈을 감는다. 자신의 북극성은 어디에 있을까. 지금쯤 메마른 사막의 하늘에 떠있을까.
 화실 앞 호수 위에 순식간에 어둠이 내릴 때 그는 말했다.
 “지연이도 이젠 시집가야지. 좋은 사람에게.”
 바람이 어둠 속을 불어와 지연의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여기 제 곁에 있는 걸요.”
 고요한 물빛에 거꾸로 비친 자신을 지연은 들여다보며 마음속으로 웅얼거렸다. 물 속에는 이름 모를 수초들이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나울나울 피고 있었다. 그는 왜 한사코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지구 저편의 삭막한 모래 속으로 가려고 했을까.
 바람이 분다. 사막에는 모래가 일고 바람이 휘몰아쳐 앞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모래들판 속으로 사라져 가는 그의 모습. 까마득한 소실점으로 지연의 마음속에 남아있다. 지연은 그가 한줄기 바람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방향을 알 수 없는 바람. 거꾸로 흐르는 바람. 지연은 그의 마음속에 하나의 존재가 되기 위해 애를 썼지만 그것은 모래더미 위였을 뿐이었다. 바람에 쓸려 가는 모래. 곡선도 되었다가 평면도 되고 다시 허공으로 날리는 모래.
 지연은 탕 속으로 들어가 어머니 곁에 앉는다. 대야에 담아둔 암염을 물 속에 빠트린다. 부드러운 물살이 지연을 감싼다. 지연은 물 속에 자신을 편안하게 맡긴다. 암염이 차츰 녹아 물에 번지기 시작한다. 소금과 모래와 흙이 뒤엉킨 암염은 가공되지 않은 금강석덩어리처럼 물 속에 수직으로 내려간다.
 “까마득한 옛날 바다의 일부가 땅이 갈라지면서 뭍으로 떨어져 나왔다지. 물 속에 숨어있던 모래층은 땅 위에 솟아오르고 고여있던 물이 메말라 버렸대. 물 속 모래는 흩어지고 메말라버려 사막으로 되어버리고 말았다더군. 결국 암염은 바위인 채로 수 십 만년 동안 사막의 지층 속에 있었던 셈이지.”
 암염은 물 속에 떨어져 바닥에 닿으려는 중이다. 그러자 작은 움직임 일었다. 작고 동그란 기포가 수면 위로 탁탁 튕기듯이 올라온다. 긴 시간동안 아무도 맛보지 못한 소금가루였다. 먼 시간이 가까이 다가왔다. 나지막한 소리가 들려왔다.
 “헤어짐을 너무 슬퍼할 일은 아니더라. 다 부질 없는 일이야.”
 어머니가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다. 암염은 점점 작아진다. 아주 오래 전 그랬듯이 다시 물 속으로 되돌아가려는 듯 천천히 가라앉아 조금씩 녹아들기 시작한다. 종일 굳어졌던 다리가 노곤하게 풀린다. 온 몸이 말끔해지고 화색이 도는 어머니가 고개를 돌려 딸을 바라보더니 눈을 감는다. 지연은 그것을 바라본다. 어머니의 몸에 드문드문 박힌 점들을 지연은 그윽한 시선으로 바라 본다. 지연도 어머니를 따라 눈을 감는다. 검은 점도 작아진 암염도 모두 사라진다.


{심사평]시적 달관, 산문적 가벼움 우려


 경제난의 반영일까. 전국에서 모아진 작품들 중의 상당수가 생활고를 다루고 있었다. 거기에 에로티시즘을 적당히 양념 쳐 넣는 것도 거의 ‘경향적’이었다. 호스트 바 남자 접대부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작품이 더러 눈에 띄었던 것도 그런 경향성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할 터이다. 그 중에는 「미접」(정영)은 물 흐르는 문장, 무리 없는 에로틱 양념, 세태 풍자 등이 읽을 만했다. 그러나 진부한 감상의 함정을 비켜가지 못했다. 「안개와 북소리, 이중주를 듣는다」(김영숙)는 청각과 시각의 시적 분위기 속에 4.3을 담아냈다. 그러나 신인의 몫을 다하려면 기존 4.3소설의 성과를 뛰어넘거나, 적어도 맞설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라이프 캐스팅」(이가흔)은 ‘당신’이라는 2인칭 화자의 등장이 특이했다. 그런데 반드시 그래야 하는 이유를 발견할 수 없었다.
 이런저런 트집을 잡아 털어낸 끝에 남은 작품이 「묘증후군」(이현준), 「욕조」(이기연), 「물의 환각」, 이렇게 세 편이었다. 「묘증후군」은 재치가 번득였다. 그러나 재미 이상의 내용을 담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욕조」는 생활고를 다룬 내용이 처연하다. 묘사도 부분부분 뛰어났다. 그런데 뭔가가 부족했다. 자살이라는 비극적 결말에 이르는 과정이 밀도(密度)에서 다소 성긴 탓일 터이다.  
 「물의 환각」은 시적이다. 누드모델의 몸과 죽어가는 어머니의 몸을 대칭과 비대칭을 장치로 삼아 물의 이미지에 조용히 투사하고 있다. 거기에서 아름다움과 달관적인 분위기가 조성된다. 그런데 그런 시적 달관은 아름다운 만큼 소설에서는 산문적 가벼움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욕조」의 치열함과 「물의 환각」의 완성도를 저울질한 끝에 후자를 선택했다. 그러나 앞에 지적한 흠을 덮어 버릴 수 없었다. 당선작을 못 낸 이유다. 아쉽다.


<송상일 문학평론가>

 

소감

 

“위안 주고 자유주는 소설을”


 

 눈이 내리지 않는 성탄절 이브, 좀 허전한 마음으로 창 밖을 내다보았다. 싸늘한 날씨에 휘둘린 듯 꺼칠하게 서있는 나목들 만이 아파트단지 안에 있는 정원을 채우고 있었다. 식탁 위에 놓아두었던 휴대폰이 울렸다. 당선통지를 받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눈앞에 흰눈송이들이 난분분 난분분 흩날리기 시작했다. 세상은 하얀 눈 속에 파묻히고 나무들도 지붕들도 모두 설경 속에 잠긴 채 내 마음도 어디론가 둥둥 떠내려가고 있었다.
 아주 어렸을 적, 일본에서 젊은 시절을 잠깐 보냈던 아버지가 집에 목욕탕을 지었던 것을 떠올렸다. 당시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시설이었다. 그때 그 침침했던 공간이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이따금 가물가물 떠오르곤 한다. 나는 그 시절과 똑같은 어린아이로 변하여 과거의 인물들과 새로운 이야기를 빚어내기 시작한다. 그리하면 그 어린아이가 자라 지금의 내가 아닌 엉뚱한 인물로 성장하여 색다른 삶을 살고 있게 되는 것이다.
 까마득히 먼 기억의 작은 점들은 어느새 선이 되고 면이 되고 그러다가 입체가 되어 내 눈앞에 가공의 현실로 나타난다. 기억할 수도 없는 머나먼 날의 파편들이 오늘의 장면과 이어지며 미래의 꿈과 연결되어 신비한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마도 축복임에 틀림이 없다.
 그래서 소설이 사람에게 위안을 주고 자유의 길을 열어주는 것은 아닐까.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린다. 당선작이 되지 못한 것은 더욱 노력하라는 죽비소리로 새겨듣고 더욱 부지런히 글을 빚어나갈 것이다.


 <프로필>
· 1954년 강릉 출생
· 숙명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