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단편 소설

2005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그르누이의 코 / 황영은

시인 최주식 2010. 2. 4. 22:27

2005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그르누이의 코 / 황영은

 


'냄새로 과거의 일들을 기억하고
추억한다. 내 생활의 대부분은 ..


 

 여자는 반드시 국산 약재만 사용해서 흑염소 농축액을 만들어 달라고 한다. 그녀에게서는 옷감에 깊숙이 밴 나프탈렌 냄새가 난다. 섬유 올올이 스며들어 장롱 속의 매캐하고 탁한 냄새들을 단번에 지배해버리는 나프탈렌. 그 순백의 고체덩어리는 박하사탕을 연상시키게도 한다. 까슬까슬한 나프탈렌의 표면이 설탕가루가 발린 박하사탕의 겉과 꼭 닮아서 어릴 적 그것을 입에 넣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박하는 나프탈렌의 향기에 감히 대적할 수 없다. 컴퓨터에 퍼지는 강력한 바이러스,트로이안처럼 주위의 그 어떤 냄새도 점령해버리는 강렬한 결정체. 코를 톡 쏘면서도 목캔디처럼 화하게 무엇을 뚫어주는 듯한 그 느낌이 좋다.

 여자가 가져온 늙은 호박은 그녀의 엉덩이처럼 뭉실뭉실하고 펑퍼짐하다.

 '이 호박도 같이 넣어서 해줘요. 딸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몸보신 좀 시키려고 어렵게 구한 거예요.'

 여자는 탁자에 올려놓은 누런 호박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말한다.

 '내일 점심 때쯤 찾으러오세요.'

 내 대답에 그녀는 엷은 미소로 답하고 나간다.

 탁자 위에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다. 그것들 중 손바닥만한 액자가 눈에 띈다. 연두색 칠이 희치희치 벗겨진 액자는 모서리마다 까만 때가 끼어 있다. 액자의 얼룩진 유리 안에는 한 여자가 소나무에 기댄 채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다. 나의 아름다운 미라,기숙이다. 아내의 깡마른 체구는 비너스의 풍만한 육체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아내가 매우 말랐다는 것도 그녀와 결혼한 여러 이유 중의 하나가 된다. 걸을 때마다 출렁이는 여자들의 젖가슴보다 잘 말린 고욤 같은,젖꼭지만 달랑 붙어 있는 아내의 가슴을 나는 사랑한다. 하지만 내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아내는 알지 못한다. 아니,단지 알려고 하지 않았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바닥 청소를 할 생각이다. 오랫동안 물청소를 하지 않은 탓에 바닥이 끈적끈적하다. 가게의 구석구석마다 밴 감초,생강,포도즙,개소주,염소 농축액 따위의 냄새들을 벗겨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고객들에게 우리 '백세건강원'의 깨끗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선 정기적으로 물청소를 꼭 해줄 필요가 있다.

 수도꼭지에 고무호스를 연결한다. 솔에 주방용 세제를 넉넉히 묻혀 바닥을 쓱쓱 문지른다. 세제에서는 레몬 향이 난다. 솔이 지나간 자리마다 때 묻은 거품이 인다. 레몬 향에 개소주 냄새가 섞여든다. 식물성의 상큼함과 동물성의 누린 듯하면서도 고소한 향이 어우러져 오묘한 내를 풍겨낸다. 나는 잠시 눈을 감는다. 가녀린 봉숭아 줄기를 거침없이 타고 올라가는 새삼처럼 그 냄새의 입자들은 내 콧속으로, 온몸으로 퍼져 나간다. 아찔한 순간이다.



 오늘은 이상하게도 위층 집의 아침 메뉴를 알아 맞히기 어렵다. 윗집 식구들 모두 늦잠을 자거나 일찍부터 외출했나 보다. 나는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볼일을 보러 가는데,오래되어 제구실을 못하는 욕실의 환풍기 덕분에 늘 윗집에서 요리하는 음식 냄새를 맡게 된다. 변기에 떨어지는 오줌 줄기의 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 냄새를 음미한다. 후각으로도 식욕의 일부분이 만족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만끽하는 순간이다. 아침부터 타인의 식탁을 상상하는 일은 행복하다. 어제 윗집의 밥상에는 마가린을 넣고 볶은 김치가 있었다. 마가린의 고소함과 김치의 시큼함이 섞인,그 강렬한 부조화 때문에 다른 찬들은 상상해볼 수 없었다. 하지만 여하튼간에 내 코를 통해 스며드는 일상이 흥미롭고 신기하기만 하다. 가끔은 내게 눈과 입이 없어도 코만 붙어 있으면 그럭저럭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나는 냄새로 과거의 일들을 기억하고 추억한다. 내 생활의 대부분은 코를 통해 받아들여진다. 한번은 퇴근길에 스친 행인을 한 시간가량 따라간 적이 있었다. 그의 체취 때문이었다. 머리가 반쯤 벗겨진 그는 매우 마르고 어깨가 구부정한 사내였는데 그의 몸에서 양배추 썩은 듯한 향이 났다. 남들에게 그 냄새는 악취로 취급될 수 있겠으나 내겐 독특한 향신료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 사내와도 같은,자신만이 유일하게 내뿜을 수 있는 향기를 가진 것들 앞에서는 잠시 정신이 몽롱해지곤 한다. 사내의 그 냄새를 들이켜는 순간 나는 무언가에 이끌려 쓰레기통을 뒤지는 개처럼 그의 뒤만 쫓아갔다. 그 향기는 부패(腐敗)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마치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있는 듯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사내의 점퍼를 빼앗아 입고 싶었다. 그를 따라가는 동안 난 엄마의 손을 잡고 걷는 천진한 아이가 된 듯했다. 실오라기처럼 그에게서 풀려 나오는 냄새를 쫓다가 문득 정신 차렸을 때 그곳에서 길을 잃고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오늘은 기이하게도 욕실에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좀 짜증스럽다. 와이셔츠 첫 단추의 구멍을 한 칸 아래에 잘못 채운 기분이다. 딸아이의 방으로 가본다. 승혜는 갓 구워낸 식빵의 하얀 속살같이 폭신한 이불에 파묻혀 곤히 잠들어 있다. 아이의 코는 참 앙증맞다. 승혜는 나를 수다쟁이로 만들어 버리는 유일한 사람이다. 아직 어려서 말은 못하지만 퇴근하면 승혜에게 그날의 일과를 주절주절 털어놓곤 한다. 아이의 까만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나도 순순해지는 듯하다. 승혜가 빨리 자라서 나와 대화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조용히 아이의 방문을 닫는다.

 아내를 깨워야 할 시간이다. 내 아내는 침대 아래에서 자고 있는 저 치와와를 닮았다. 호박을 고아낼 때나 쓰는 농축기에 저 놈을 넣고 푹 달여 내봤자 레토르트 포장지로 세 개쯤 나올까. 툭 불거져 나온 뼈,볼품없이 쩍 달라붙은 거죽,쉴 새 없이 이리저리 굴려대는 퀭한 눈동자를 빼곤 저 개에게서 어떤 볼거리도 찾아낼 수 없다. 하지만 아내에게 있어서 저 개는 승혜의 동생이나 다름없다. 그녀는 자나깨나 치와와를 끼고 산다. 아내는 이불 속에서 치와와처럼 깡마른 몸을 웅크리고 있다. 어젯밤 잠결에,감은 지 며칠째인지도 모르는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때에 전 개의 털 내를 맡았던 것 같다.

 '기숙아,일어나.'

 나는 조용히 그녀에게 속삭인다. 아내를 깨우는 일은 영화 '미이라'에서 자살한 연인을 살려내기 위해 한 남자가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간절하고 성스럽게 행해진다. 아내는 3분쯤 뒤척이다 곧 일어난다. 막 잠에서 깨어났을 때의 아내가 가장 사랑스럽다. 눈곱이 덕지덕지 낀 눈,움푹 들어간 볼,정강이 같이 튀어나온 광대뼈,산발을 한 아내의 머리칼은 이집트의 제사상에 누워 있는 미라를 떠올리게 하는 데 충분하다. 나의 어여쁜 미라는 늘 그래왔듯 오늘 아침에도 내 주문 소리에 조용히 소생하고 있다.

 나는 아침밥을 준비하고 기숙은 어김없이 컴퓨터를 켠다. 내가 가게에 나가 있는 동안 그녀는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죽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별달리 하는 일없이 그 속을 헤집고 다니면서 고스톱 따위의 게임이나 즐기는 것도 알고 있다. 그녀는 하계 방학이 시작되고 열흘 동안 보충 수업으로 바빴지만 요즘은 거의 집 밖에도 나가지 않는 듯하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방학 때 시의 교육청에서 준비한 자율연수 프로그램이다,열린 학교 순회답사다 등으로 이곳저곳 바삐 나다니더니 작년부터는 노상 컴퓨터 앞에 앉아 있기만 한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나무라고 싶지는 않다. 내 아내는 나의 분신과도 같은,쥐스킨트 소설 '향수'의 주인공인 그르누이의 어머니를 닮았기 때문이다.

 아내는 인근의 중학교에서 윤리 교사를 맡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윤리 교사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한 줌의 도덕조차 들어있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인간은 늘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한 방황하게 마련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긴 방학 내내 신문 한 장 읽지 않는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내 아내는 자신이 내뱉은 말을 잘 실천해내는,언행일치의 인간형이다. 그녀는 온종일 모니터 속의 화투 패에 담겨진 그 무엇을 열심히 추구하면서 어떤 걸 따먹을까 고민하며 또 방황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마늘을 찧는 방망이의 진동이 내 팔을 타고 올라가 귀의 달팽이관까지 울린다. 나는 미세한 이 떨림이 좋다. 이런 쾌감을 맛보지 못하는 아내가 가끔은 불쌍하게도 느껴진다. 나는 요리할 때 마늘이나 후추,카레 가루와 같은 재료들을 많이 사용한다. 그것들이 일종의 조미료가 되는 셈이다. 어,그런데,이상하다. 귀의 울림 다음에 내 후각을 자극하는,톡 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할 터이다. 마늘 향이 나질 않는다. 절구통에 코를 들이대 본다. 킁킁대보지만 어떤 향도 맡아지지 않는다. 아주 약간은 불안해져온다.

'밥 먹어.'

 나는 스팸 메일을 지우고 있는 기숙에게 말을 건넨다. 그녀는 아무런 대답 없이 러닝셔츠와 팬티 바람으로 다가온다. 다 늘어나 헐렁해진 러닝셔츠 사이로 그녀의 말라비틀어진 젖꼭지가 비친다. 어기적거리며 걸어오는 아내의 머리에 파리 한 마리가 날아와 앉는다. 군데군데 껌이라도 붙여놓은 것같이 쩍쩍 들러붙은 그녀의 머리칼과 파리는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생 관계에 있는 듯하다.

 언제 깼는지 치와와가 소파에 엎드려 있다. 개는 눈동자를 한바퀴 굴리며 내 눈치를 살핀다. 소파 아래에 새끼손가락만한,개의 갈색 변이 나뒹굴고 있다. 저 개는 아무리 가르쳐도 똥,오줌을 가릴 줄 모른다. 아내는 그쪽을 향해 걸어간다. 그녀의 오른발이 개의 똥을 걷어찰 것처럼 다가간다. 무슨 말이라도 해주려는데 타이밍을 놓쳤다. 곧 아내의 발바닥은 갈색 덩어리를 뭉개 버린다. 아내가 흠칫하며 멈춰 선다. 그리고 발바닥을 들어 오물을 확인한다. 볼펜 뚜껑 같던 개똥이 찍 눌려 이내 타원형의 형상으로 바뀌어 그녀의 발바닥에 달라붙어 있다. 아내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소파로 다가간다. 소파의 모서리에 발바닥 뒷부분을 얹어놓고는 아래로 쓱 문지른다. 납작해진 똥은 반으로 갈라져 한 쪽은 소파에 다른 한 쪽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아내는 다시 식탁 쪽으로 걸어온다. 미라가 만찬을 즐기러 어슬렁어슬렁 나의 밥상으로 오고 있다.

 나는 식사를 끝내고 대충 치운 다음 가게로 나갈 채비를 한다.

 '승혜한테 우유 잘 챙겨 먹여.'

 치와와를 안고 소파에 앉아 있는 아내는 늘 그랬듯 대꾸를 하지 않는다. 나는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나온다.

 햇빛이 따가운 날이다. 내 가게의 간판이 보인다. 버젓이 상호명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손님들은 '거기 개소주집이죠?'를 연발한다. 그러나 나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5년을 견뎌온 간판의 글자는 이제 색이 바랠 대로 바래져 있다. 조만간 새것으로 바꿔야겠다.

 가게 문 앞에서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쉰다. 내 나름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을 때 마취 주사의 약 기운처럼 나를 확 덮쳐오는 그것. 코를 통해 온몸으로 퍼지는 그 향기의 짜릿한 전율. 맛있는 음식을 먹기 전 애피타이저로 식욕을 돋우듯 나는 내 가게 안의 냄새를 맡기 전에 몸속의 공기를 모두 새것으로 바꾼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있어야 할 것이다. 감초를 비롯한 한방 약재와 동물성 기름 특유의 그 향들이 잘 어우러져 세포를 타고 내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갈 테니까. 속속들이 퍼진 그 냄새들은 내가 하루를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해주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가게의 문을 연다. 슬며시 눈감고 숨을 들이켜려는 찰나,나는 눈을 번쩍 뜬다. 아무런 냄새가 맡아지지 않는다. 분명하다. 오늘은 여느 날과 다르다. 조금 불안해진다. 아니,어제 바닥까지 물청소를 하고 간 바람에 냄새의 흔적들이 잠시 사라졌을 것이다. 농축기를 돌리면 가게 안은 금세 감초 향내로 진동할 게 틀림없다. 분명 그렇게 될 것이다.

 전화벨이 울린다. 어제 주문해둔 흑염소 농축액을 찾으러 오겠다는 아주머니다. 그녀는 교통사고를 당한 미국의 딸에게 보낸다며 꼭 국산 약재만 사용해서 만들어달라고 신신당부했었다. 그 아주머니처럼 대다수의 손님들이 국산 재료를 써줄 것을 요구한다. 나는 물론 우리 가게는 국산 재료만 취급한다고 큰소릴 쳐놓는다. 사실 내가 구입하는 재료들은 거의 중국산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재료에 따라 가격이 배에서 어떤 것은 열 배까지도 차이 나기 때문에 나는 당연히 중국산을 산다. 그리고 내 손에서 만들어진 그것들은 엄선된 국산 재료만을 사용한 보신용 농축액으로 둔갑해 고객들에게 전해진다. 죄책감 따위의 감정은 애초부터 들지 않았다.

 농축기 옆에 접시저울이 놓였다. 그 위에 들깨의 찌꺼기들이 떨어져 있다. 생강이 담긴 빨간 바구니가 보인다. 바구니 구멍의 틈마다 까만 때가 끼어 있다. 생강의 맵싸한 향기는 개소주의 누린내를 없애주는 데 제격이다. 생강 냄새를 맡고 싶다. 나는 바구니로 얼굴을 가까이 대려다 그만둔다. 행여나 또 아무 냄새가 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각자의 증상에 따라 다른 약재를 첨가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약재들에 대해서 일목요연하게 설명을 늘어놓으며 아픈 부위에 따라 달리 처방할 것을 확신시켜줬다. 그러나 나는 허리가 아프다고 하든,신경통이 있다고 하든 모두 똑같은 약재들을 넣었다. 어차피 보신용인데 약재 하나 달라봤자 별다른 차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포장기계 아래의 바구니에는 흑염소 농축액이 담겨진 레토르트 포장지가 가득하다. 110그램씩 담겨진 130개의 진갈색 액체는 하루 세 번,식후 30분 후,따뜻하게 데워져서 교통사고를 당한 여자의 몸속으로 유유히 흐를 것이다.

 또 전화벨이 울린다. 거기 개소주집이죠? 젊은 남자의 목소리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는 눈치다. 말씀하시죠. 저음인 내 목소리에 그는 긴장을 푼 말투로 바뀐다. 개소주를 좀 할 수 있겠냐고 한다.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린다. 나는 누가 복용할 거냐고 묻는다. 사내는 좀 작은 소리로 자신이 먹을 거라고 한다. 꽤 허약한 체질의 남자인가 보다. 그런데 정말 개소주를 먹으면 정력에 좋나요? 남자는 조심스럽게 물어온다. 개고기는 약성이 따뜻해서 오장을 보호해주고 기력을 강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산모나 힘 못쓰는 중년 남성들이 많이 찾곤 하죠. 의사가 들으면 코방귀를 뀔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내 고객들에게 이 개소주의 효과를 자랑스럽게 말한다. 사내는 내 대답에 흡족해 하는 눈치다.

 남자는 자신이 키운 중간 크기의 개가 있으니 따로 살 필요 없이 그놈으로 하자고 한다. 나는 선뜻 승낙한다. 그렇게 하면 돈은 좀 적게 받지만 대신 개를 죽이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지금 개 끌고 가게로 와줄 수 있죠? 사내는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한다. 나는 들어갈 약재들을 대충 설명해주고 가격은 원래 25만원인데 개 값을 제했으므로 12만원이라고 전한다. 아,그리고 12만원엔 개를 도살하는 비용도 포함돼 있습니다.

 가슴이 설렌다. 개소주 주문이 한동안 뜸했다. 근 보름만이다. 농축기 안에 개가 들어있을 때가 가장 즐겁다. 몸에 그리도 좋다는 상황버섯이나 노루까지 중탕해봤지만 개소주만큼 매혹적인 것은 없었다. 개가 달여지는 시간 동안 나는 물때 낀 양동이도 씻고 칼도 갈며 저울도 말끔히 닦아 놓는다. 기다리는 그 시간이 그렇게 신명날 수가 없다.

 내가 특별히 개소주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냄새 때문이다. 개소주에는 다른 것들을 중탕할 때 맡을 수 없는 묘한 향이 감돈다. 그것은 내 육욕(肉慾)을 자극하는 유일한 냄새이자 생활의 활력을 높여주는 촉매제다. 개소주의 향에 미리 도취되어 황홀해 하는 순간, 아내의 깡마른 몸이 떠오른다.

 평소 아내와 나는 같이 잠자리에 들지만 부부관계를 갖지는 않았다. 승혜를 낳고 나서 줄곧 그래왔다. 그러나 그녀와 나는 우리의 이런 성생활 리듬에 그다지 불만을 느끼지 않았다. 아니,그녀가 가끔 용수와 섹스를 하는 걸 보면 이건 나 혼자만의 일방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개소주 주문이 들어온 날은 솟아오르는 정욕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런 날은 가게 문을 잠시 잠그고 커튼이 쳐진 수돗가에서 수음을 했다.

 나는 웬만해선 집에 일찍 들어가지 않지만 그날은 두통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가게 문을 일찍 닫고 집으로 향했다. 내 집 거실에서 나체로 뒹구는 아내와 용수의 모습은 정말 충격이었다. 내 아내가 나의 친구와,그것도 대낮에,우리 집 거실에서 정사를 벌이고 있는 걸 보니 종일 지끈거리던 두통이 싹 가셔버렸다. 결혼 전 아내와 데이트할 때 자주 용수를 불러내 술을 마시던 기억이 났다. 그러나 그때 둘은 별다른 눈치를 보이지 않았었다. 나는 둘을 지켜보며 현관의 신발장 옆에서 꼼짝 못하고 서 있었다.

 아내의 볼기짝 가운데 있는 엉치뼈가 흉물스럽게 튀어나와 있었다. 그녀는 소파를 잡고 개처럼 엎드려 헐떡거렸다. 용수는 왜소한 내 체구와는 달리 우람한 몸집이었다. 아내를 향해 들이박을 때마다 그의 허벅지 근육이 꿈틀거렸다. 아내는 산발을 한 머리채를 뒤로 젖히며 흰자위를 까뒤집어 보였다. 그녀의 입에선 나와 섹스할 땐 들어보지도 못한 암코양이의 울음소리 같은 신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둘의 모습은 마치 교미하는 황구(黃狗) 같았다. 그런데 그 순간 이상하게도 외간 남자와 살을 섞고 있는 아내에게 혐오감이 들기는커녕 내 몸도 점점 달아오르는 것이었다. 뜨거워진 내 몸에서 낮 동안 배어있던 냄새가 스멀스멀 피어오름을 느꼈다. 그 냄새에는 개소주를 달일 때 풍기는 향이 가장 독하게 섞여 있었다.

 나는 황급히 밖으로 나와 가게를 향해 달렸다. 셔터를 올리고 문을 따자마자 수돗가로 가 바지를 내렸다. 격렬히 손을 움직일 때마다 아내의 엉치뼈가 떠오르고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귀까지 벌겋게 달아오르는 그 순간,뜨거운 솥 안에서 개의 창자와 가죽과 살점들이 녹아들어 형체가 없어지는 장면이 떠올랐다.

 정신이 혼미해져 왔다. 싸울 상대를 코앞에 둔 투견의 혓바닥에서 떨어지는 끈적끈적한 침처럼 내 몸에서 뜨거운 액체가 수돗가의 축축한 시멘트 바닥 위로 떨어졌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나는 아내가 눈치 못 채게 가끔 집에 들르곤 했다. 그럼 어김없이 용수가 와있었고, 거실에서는 둘의 정사가 벌어졌다. 나는 현관의 신발장 옆에서 아내의 희번덕이는 눈동자를 훔쳐보다가 가게로 달려와 수음을 하곤 했다.

 내 아내는 확실히 그르누이의 어머니를 닮은 게 틀림없었다. 폐결핵을 앓아 가르랑거리는 그의 어머니처럼 아내도 컴퓨터에 무아지경으로 빠져 있을 때 그런 숨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앞서 네 번의 경우처럼 다섯째 아들인 그르누이의 탯줄도 생선 칼로 잘라내 쓰레기 더미에 버리고도 냉정할 수 있는,매독에 걸린 그녀의 성품과 깡마른 체구가 아내를 떠올리게 하는 데는 충분했다. 그래서 나는 아내와 결혼했다. 아내가 날 애정어린 눈빛으로 바라봐 주었으면 싶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녀가 내게 아주 매몰차게 대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내심 갖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아내는 내 기대와 달리 이도 저도 아닌,늘 버석한 빵 같았다.

 나는 남자의 주문을 받고 황급히 용수에게 전화를 건다. 용수야,주문 들어왔다. 지금 시간 있으면 차 몰고 와라. 오케이. 말끝을 길게 빼는 그의 말투에 흥이 묻어난다. 그는 10분 내로 내 가게에 도착할 것이다.

 간혹 손님들 중에는 자신이 직접 개나 염소를 구해오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별도로 개를 사지 않아도 되지만 내가 손수 그놈을 장만해야 한다. 나는 그때마다 5년 동안 꾸준히 도살을 해준 용수를 부른다. 그는 항상 자신의 친구 한 명을 달고 온다. 개를 죽이는 데 그 자신만의 힘으로는 부족하니까 제 친구와 함께 오는 것이다. 도살해주는 값으로 개의 크기에 따라 3만원에서 4만원 정도만 주면 된다. 불법인 줄 알지만 으레 난 그렇게 해왔다.

 용수의 파란색 포터가 가게 앞에 도착한다. 운전석 옆에 그의 친구가 앉아 있다. 용수의 손에 굵은 철사가 쥐어져 있다. 올가미를 만들 모양이다.

 '오랜만이다.'

 나는 가볍게 인사를 건넨다.

 '그러게. 부자는 개소주를 마시고 빈자는 깡소주를 마신다더니… 한동안 네가 너무 안 불러 주기에,난 또 불경기로 우리나라 개새끼들만 살판나는 줄 알았다.'

 용수는 피식 웃는다. 그의 올라간 입아귀를 보자 아내의 앙상한 어깻죽지가 떠오른다. 그의 두툼한 입술이 그녀의 어깨와 등을 핥고 내려간다. 아내는 흐느적거리기 시작한다. 아내를 향해 들이박을 때마다 그의 엉덩이 근육이 움츠렸다 펴졌다 한다. 그녀는 또다시 고개를 젖히고 눈동자를 까뒤집으며 소리 지른다.

 '임마,너 어디 아프냐? 왜 그리 멍하니 있냐?'

 용수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한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다. 그의 아귀통을 한 대 날리고 싶은 충동이 일다가도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내 아내의 쾌락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아내의 쾌락에 빠진 모습은 곧 나의 희열이기도 하다.

 몇 분 후 한 청년이 개를 몰고 들어온다. 그는 북어처럼 말라비틀어졌을 거라는 내 상상과 달리 허옇고 툭박진 사내다. 그는 내 지시에 따라 개를 용수의 트럭에 태운다. 개는 무언가 눈치챈 듯 낑낑거리며 트럭에 오르지 않으려 발버둥친다. 퉁퉁한 청년은 놈의 궁둥이를 발로 걷어차며 억지로 끄집어 올린다.

'이틀 후에 찾으러 오시면 됩니다.'

 사내는 자신이 식사 때마다 먹고 남긴 밥과 생선 가시를 먹여 일 년은 키웠음직한 누런 그 개를 본체만체하고 가버린다. 개의 시선이 주인의 두툼한 목살을 따라간다. 그는 어떤 미련도 없어 보인다.

 용수는 인적이 드문 곳으로 차를 몰고 간다. 그곳은 예전에 용수가 살았던 집의 창고이다. 버려져 쓸모없는 이 공간은 도살하기에 적격이다. 용수는 개를 끌어내려 창고로 몰고 간다. 창고 문을 열자 흙먼지가 인다. 개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러나 음침한 기운과 함께 나를 덮치던 곰팡내와 오래된 피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는다. 오늘은 여느 날과 뭔가 다른 게 확실하다. 아귀가 맞지 않은 장롱의 문이 떠오른다. 오늘은 삐꺽거리는 그 문짝 같은,꼭 그런 날이다.

 이 창고에만 오면 어머니가 생각난다. 아니,엄밀히 따지면 그녀가 나를 낳았던 보신탕 냄새 짙게 밴 그 방이 떠오른다. 그르누이처럼 날 사생아로 만들어놓은 그녀의 행방은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 내 어머니는 식칼로 개의 넓적다리를 잘도 토막냈다. 나는 식당과 연결된 작은 그 방에서 고기가 잘려 나가는 도마질 소리를 들으며 보신탕의 개고기,들깨,후추가 어우러져 나는 냄새를 맡곤 했다. 그 향은 항상 나를 몽롱하게 했다. 그러나 지금 내가 건강원을 운영하지만 개소주는 절대 먹지 않는 것처럼 그때 단 한 번도 보신탕을 맛보지 않았다. 입에 대려고 하면 구역질이 났기 때문이었다.

 1738년 7월,프랑스 땅 중에서도 가장 악취가 심한 곳에서 태어났다는 그르누이는 어쩌면 나처럼 말수가 매우 적거나 항상 우울한 낯빛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시체의 냄새를 압도할 정도로 고약한 내를 풍기는 생선 내장들과 함께 쓰레기 더미에 버려졌다. 태어나자마자 시궁창 냄새를 가장 먼저 받아들였던 그는 나와 왠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향기를 감별하는 천재적인 능력으로 수천 가지 향수를 만들었지만 정작 그르누이 그 자신에게서는 어떤 향기도 나지 않았다. 여느 아기들에게서 나는 젖내라든가 기저귀 냄새조차도 나지 않아서 보모는 그르누이가 악마에 씌었다며 키우지 않으려 했다. 그가 살인을 저지르고 시체의 체취를 걷어내어 그것으로 향수를 만드는 데 그토록 집착한 이유는 자신에게서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의 눈동자는 자꾸만 메마르고 음침해졌을지도 모른다.

 내 머릿속에 그려진 그르누이의 눈빛에서는 광적인 충동을 감춘 천진함이 배어 나온다. 세계 최고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 사악하게 살인을 저지르지만 순수한 눈망울을 가진 그가 사랑스럽고 안쓰럽다. 죽인 소녀를 눕혀놓고 그녀의 머리에서부터 시작해 음부를 지나 발끝까지 아주 천천히 체취를 음미하는 그의 코. 가끔 나는 내게도 그처럼 향기를 식별해내는 천재적 재능이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나도 한 소녀의 목을 조르고 죽은 그녀의 몸에서 밀려나오는 미미한 향기의 물결을 가슴 가득히 채울 수 있겠지. 그 체취는 음울하고 무심한 내 눈동자를 촉촉하게 해줄 것 같은데….

 용수는 개의 목걸이를 벗겨내고 올가미를 건다. 개는 두려움에 찬 눈동자를 하고 꼼짝달싹 않으려 한다. 그는 철사를 잡아당긴다. 올가미는 놈의 목을 옥죄기 시작한다. 개는 칵칵거리며 용수에게 끌려간다. 장작을 팰 때 밑에 괴는 받침대처럼 생긴 통나무가 뒤집혀져 있다. 그 나무에는 수많은 도살의 흔적인 혈흔이 보인다. 용수는 그것을 들어 파인 중간 부분에 개의 목을 처넣는다. 놈은 대가리를 땅에 박은 채 철사 줄이 목을 파고드는 아픔과 공포로 마구 발버둥친다. 놈이 발버둥치면 칠수록 올가미는 더 깊이 살 속으로 파고들 것이다. 인간이 창조해낸 올가미의 위력이란,살아내면 낼수록 여유롭고 완숙해지기는커녕 조급하고 치졸해지는 우리네 모습과 꼭 같다. 용수는 철사 줄을 친구에게 넘기고 구석에 세워둔 몽둥이를 가져온다. 족히 1미터는 넘을 듯한 몽둥이에 검은 핏자국이 묻어 있다.

 용수는 개의 머리통을 향해 몽둥이를 쳐든다. 개의 입 주위는 허연 거품과 침으로 범벅이다. 나는 놈의 눈을 본다. 눈에서 물이 질금질금 흘러나온다. 놈은 살려달라고 애소하는 듯하다. 개의 정수리 부분을 정확히 내리쳐야 단번에 죽일 수 있다고 예전에 그가 말했다. 그는 개를 향해 힘껏 몽둥이를 내리친다. 빡,하는 소리가 들린다. 갑자기 아내가 떠오른다. 아내가 용수와 나체로 뒹굴고 있다.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 올가미에 끼워 넣고 싶다. 아내는 죽기 직전의 저 개 같은 눈빛을 하고 살려달라고 하겠지. 내게 애원하는 아내의 모습을 상상하니 코끝이 시큰해져 온다.

 개는 소리 없이 늘어지고 만다. 죽은 놈의 눈이 꼭 감겨져 있다. 긴 혀가 옆으로 삐죽 나와 있다. 축 처진 혀 사이로 선혈이 질질 흘러나온다. 이만하면 성공이다. 한 방에 끝나는 놈이 있는 반면 앙버티고 죽지 않아 스무 대 정도 두들겨 패야 늘어지는 것도 있다. 그런 놈을 만나면 개나 사람이나 서로 곤욕이다. 저는 저대로 고통스러울 것이고 패는 이 또한 맥이 빠져 버린다. 하지만 개고기의 진정한 맛을 아는 자는 연방 두들겨 맞고 죽은 개를 좋아한다고 용수가 말했었다. 그는 개고기 마니아다. 그의 말에 의하면 개가 극도의 고통과 스트레스를 받고 도살되었을 때 가장 육질이 부드럽다고 했다. 어느 여름인가 초복에 그는 다짜고짜 나를 보신탕집으로 끌고 갔다. 깡마른 나를 보니 기숙씨가 가엾다는 말도 했던 기억이 난다. 개고기를 게걸스럽게 먹어대던 용수 앞에서 나는 국물 한 숟가락도 뜨지 못했다. 들깨와 개 내장이 섞인 냄새 때문에 자꾸 구역질이 나서였다.

 용수는 뒤이어 칼로 죽인 개의 목을 찌른다. 그는 어디쯤을 찔러야 피가 잘 빠지는지 이제 눈대중으로도 찾아낼 수 있다. 개의 목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온다. 피는 개소주에서 누린내의 주원인이므로 몸속의 피를 모조리 빼내야 한다.

 개를 때리고 나서는 혀를 잘 살펴봐야 한다. 이 개처럼 삐죽이 나온 혀를 깨물고 있으면 확실히 죽은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만약 혀가 입 안에 있으면 분명 기절만 한 것이다. 예전에 죽은 줄만 알았던 개의 털을 그을리다가 벌떡 살아나는 바람에 기겁한 적이 있었다. 그때 갑자기 살아난 개는 울부짖으며 미친 듯이 사방을 뛰어다녔다. 나는 그놈에게 물릴까봐 무척 당황하고 겁이 났다. 그때 본 개의 눈을 잊을 수가 없다. 눈동자에서 불덩이가 철철 쏟아져 나오는 듯했다. 죽음에 직면하면 인간도 그런 눈빛이 될까. 아,그러고 보니 그 눈빛,그 개의 눈빛,어디선가 본 듯하다. 그르누이가 죽이려던 소녀다. 어둠침침한 지하도에서 서서히 밀려오는 죽음의 공포가 소녀의 눈에까지 차올랐다. 그르누이가 소녀의 목을 조를 때 그는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러나 내 눈에는 하얗게 질려 주근깨가 더 도드라져 보이는 그녀의 얼굴이 생생히 떠올랐다. 그르누이 손가락의 힘이 소녀의 목을 강하게 옥죌 때 그녀의 눈은 저 개처럼 벌겋다 못해 핏빛이었을 것이다.

 용수는 LP 가스통과 산소통을 연결한 호스에 토치램프를 끼운다. 이것은 본래 산소 용접할 때 쓰는 방법인데 개의 털을 그을리는 데도 그만이다. 혀를 꼭 깨물고 죽은 누런 개의 털이 금세 거멓게 변한다.

죽은 개를 가게로 가지고 온다. 한쪽 구석에 마련된 수돗가에는 5년 동안 수많은 개의 배를 가른 칼이 은빛 눈을 부라리고 대기 중이다. 숱하게 갈아서 날의 크기도 거의 반으로 줄었다. 하지만 이 물건은 묘하게도 갈면 갈수록 더 매서워지고 날이 선다. 어떨 땐 내가 칼질을 하는 게 아니라 칼에게 조종당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주방 세제로 개의 몸뚱어리를 깨끗이 씻어낸다. 칼로 개의 배를 가른다. 놈의 뱃가죽은 연하다. 칼날은 뒷 가랑이부터 시작해 목까지 한번에 나간다. 배를 갈라보면 간혹 위나 간의 색깔이 검붉고 흰 지방이 끼어 있는 놈들도 있다. 그런 개들은 주인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컸다. 무조건 몸집이 크고 지방이 많은 개가 좋은 것도 아니다. 그런 개는 이 바닥에서 취급도 안 한다. 그러나 이놈은 속도,겉도 옹골차다. 주인인 그 사내가 정력 보강을 하려고 꽤나 신경 써서 먹인 모양이다. 창자는 아직도 뜨겁다. 다리와 몸통과 머리 부분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낸다. 자른 살점들은 찬물에 담가 덜 빠진 피를 모조리 우려낸다. 살아생전의 검은 독기를 투명한 물로 우려내는 것이다. 내장을 처리하기가 가장 싫다. 창자에는 정체불명의 음식 찌꺼기들과 똥이 마구 끼어 있다. 일일이 갈라서 내용물을 빼내고 깨끗이 씻어야 한다.

 내 가게 안에는 여섯 대의 자동 농축기가 있다. 그것은 여느 가정집에 있는 찜통의 네 배 크기다. 잘 손질된 살점과 약재들을 농축기에 넣고 뼈가 삭을 정도로 네,다섯 시간 정도 푹 고아야 한다. 농축기 옆에 붙은 온도계를 살핀다. 개나 흑염소 같은 동물을 달일 때는 보통 130도를,호박 같은 식물성 재료들은 120도를 유지해야 한다. 온도를 잘 맞춰야 동물 특유의 잡내를 없앨 수 있다.

 개를 다 달이고 나서 농축기의 뚜껑을 열 때 내 가슴은 두근거릴 것이다. 뚜껑을 여는 순간 허연 증기가 천장으로 솟구치면 나는 잠시 눈앞이 몽롱해지겠지. 그리고 이내 나를 휘감는 그 향기. 감초의 달곰쌉쌀함과 개고기의 고소함이 한데 어우러져 풍기는 형언할 수 없는 그 냄새가 파고드는 찰나,나는 짜릿한 희열을 온몸에 느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질아질하다.

 다 고아진 살덩이들은 유압기에 넣고 압축해야 한다. 밤갈색 물을 가득 머금은 그것들은 곧 된똥 덩어리같이 변할 것이다. 다 짜낸 개소주에는 기름이 둥둥 떠 있다. 걷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느끼해서 역겹다. 그 액체는 다시 포장기계에 들어가 먹기 간편한 건강 식품으로 단장되어 나올 것이다.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모든 절차를 어김없이 해낸다. 농축기에 가스 불을 붙인다. 달여질 때까지 대충 요기를 때우고 아내에게 전화나 걸어볼 생각이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는 아내의 목소리는 그녀의 피부처럼 건조하다. 뭐해. 승혜는 자? 나는 손님에게 말할 때보다 한 단계 높은 톤의 목소리로 짐짓 밝게 말한다. 응. 예상했지만 그녀의 짧은 답변으로 우리 사이엔 몇 초 동안의 정적이 흐른다. 일찍 들어갈게. 아내는 자신의 대답처럼 무미건조하고 딱딱하게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작년 여름,중학교 동창회 모임에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매년 몇 명 안 되는 동창들만 모이다가 작년에는 부부동반으로 참석하자는 의견이 나와서 아내를 불러냈었다. 오랜만에 외출용인 흰색 원피스를 꺼내 입고 나타난 아내에게 인사를 건네던 내 친구들은 모두 얼굴을 붉혔다. 아내는 브레지어를 하지 않은 채로 왔던 것이다. 그녀가 입은 민소매 원피스는 그날따라 더 얇아 보였다. 하늘거리는 원피스의 앞가슴에 아내의 까만 유두가 비쳤다. 밋밋한 가슴 때문에 유두는 더 도드라져 보였다.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던 친구 녀석들 앞에서 아내는 외려 건초처럼 메마르게 웃었다. 그때 아내의 웃는 모양이 가끔 떠오르곤 한다.

 깜빡 졸았나 보다. 밖이 어둑어둑하다. 시간을 보니 개소주는 거의 달여졌을 듯싶다. 나는 탁자 위에 올려진 라디오를 튼다. 목장갑을 낀다. 그 위에 다시 고무장갑을 낀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따라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가스 불을 끈다. 곧 농축기의 뚜껑을 열어야 한다. 개의 머리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흐물흐물해졌을 것이다. 즐겁다.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나도 모르게 콧구멍이 벌렁거려진다. 천천히 뚜껑을 연다. 치익,김빠지는 소리와 함께 뜨거운 수증기가 천장으로 솟구친다. 시야가 흐려진다.

 나는 오도카니 섰다. 아침부터 조금씩 자라온 불안이 턱까지 차오른다. 가슴이 무지러지는 듯하다. 뭔가 잘못됐다. 냄새가 나지 않는다. 나의 정욕을 자극하는, 마력 같은 개소주의 냄새가 맡아지지 않는다. 혼란스럽다. 이건 분명 꿈이 아니다. 호흡이 가빠진다. 지금 내게 아주 큰일이 일어난 것이다.

 나는 그대로 가게 문을 박차고 뛰쳐나온다. 밖은 개소주의 빛깔 같은 어둠이 깔려 있다. 나는 미친 듯이 뛰어간다. 집으로 가야 한다. 내 아내가 있는 집으로 가야 한다. 음침한 어둠들이 거친 내 숨으로 마구 빨려 들어오는 것 같다.

 집이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집안의 눅눅한 공기들이 내 몸에 착착 들러붙는다. 익숙한 집 냄새도 나지 않는다. 고통스럽다. 컴퓨터 앞에 산발을 한 미라가 앉아 있다. 그녀는 결코 뒤돌아보지 않는다. 소파에 엎드려 퀭한 눈알을 굴리고 있는 치와와도 나를 본 척 만 척 안중에도 없다. 그 옆에 아랫도리가 다 벗겨진 채 승혜가 자고 있다. 아이의 얼굴에 우유 얼룩이 말라붙어 있다. 식은땀이 배어난 아이의 머리카락은 젖은 채 마구 헝클어져 있다. 소파 아래에 아내가 밟은 치와와의 똥 덩어리들이 과자 부스러기처럼 흩어져 있다. 내 속에서 무언가 울컥 치밀어 올라 목젖에 걸린다. 걸쭉하고 텁텁한 그것은 마치 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개의 뜨거운 피 같다.

 '기숙아!'

 나는 숨가쁘게 그녀를 부른다. 아내는 말이 없다.

'야!'

 내 고함 소리에 놀란 치와와가 벌떡 고개를 쳐든다. 아내가 무심히 뒤돌아본다. 물기라곤 없는 눈빛이다.

 '나…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아.'

 아내는 역시나 대답이 없다.

 '나 냄새를 맡을 수 없다니까!'

 나는 다급하게 소리친다. 내 목소리에 놀란 승혜가 잠에서 깬다. 그녀는 모니터로 심드렁히 고개를 돌려버린다. 콧속으로 들어오는 공기에 마취제가 섞여 있는 것만 같다. 정신이 아득해져 온다. 치와와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나를 향해 마구 짖어댄다. 순간 저 개의 눈깔을 뽑아버리고 싶은 충동이 인다. 나는 소파로 다가가 치와와의 목을 거머쥔다. 그놈의 목은 내 팔목보다도 가늘다. 손가락을 꽉 움켜잡는다. 내 손가락은 올가미다. 한 번 걸려든 이상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 개의 둥그런 눈알이 곧 튀어나올 듯하다. 눈에 핏발이 선다. 치와와는 황구들처럼 칵칵거리지도 못한다. 내 손아귀에 목을 내맡긴 채 발버둥치던 놈은 몇 분 안 가 축 늘어지고 만다.

 승혜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뒤이어 아내의 비명 소리도 들린 듯하다.

 나는 올가미에 홀쳐진 개다. -끝- `



단편소설 심사평] 착상의 기발함 돋보여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8편 중 주목되는 것은 다음 셋이었다. '바리의 세월''제사와 교회''그르누이의 코'가 그것이다. '바리의 세월'과 '제사와 교회'는 노인문제를 다루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전자보다 후자가 훨씬 작품성에 있어 폭과 넓이를 획득하고 있었다. '제사와 교회'가 보이고 있는 시누이와 올케의 관계를 통한 한 가문의 사연이 예사롭지 않았다. 문제를 다루는 솜씨가 원숙한 경지에 있고,문장도 매끄러웠다. 그래서 심사위원들은 '제사와 교회''그르누이의 코'를 두고 장시간 토론을 거듭했다. 결국 '그르누이의 코'가 지니고 있는 짜임새와 발상,특히 신인다운 패기에 무게를 두었다. 인간의 예민한 후각이 결국에는 그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과정을 대단히 유려하게 표현했고,착상의 기발성이 장래를 기대케 했다. 정진을 바란다.

문학평론가 김윤식,소설가 이규


당선소감

노력 않는 문학은 자기 기만'


 

 

 언젠가 선생님께서 요즘 애들은 문학에 대한 정열이 없다고,밤새 머리를 쥐어짜내며 엉엉 울어보라고 말씀하신 기억이 난다. 나는,반성해야 할 것 같다. 아주 어릴 적부터 오로지 한 길만을 보고 걸어 왔지만 어느 때부터 문학은 내 삶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고 핑곗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문학을 한다는 이유로 객기부리고 무작정 현실로부터 도피하기를 일삼았던 것이다. 그래서 사실 신춘문예 당선은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든다.

 문학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자기 기만이 된다고 했다. 이전보다 앞이 더 까마득하게 느껴지고 어깨가 무거워도 내 스승님들이 그러고 계신 것처럼 죽는 날까지 노력하고 정진할 것이다. 내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문학이 나를 필요로 해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부족한 내 글을 읽어주신 심사위원님들께,존경하는 계명대학교 문창과 선생님들께,내 객기를 다 받아주는 친구들과 선후배들에게,청송의 가족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약력:1982년 경북 청송 출생. 현재 대구 계명대학교 문예창작학과 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