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10Km / 고경숙
피로한 저녁이 신음을 한다
핸들에 몸을 얹고 저속으로 지나는 트럭
대형약국 네온간판이 환하게 불 밝힐 때
마침 라일락 향기 훅-하고 코끝에 흩날릴 때
아코디언 주름처럼 축 늘어진 트럭 덮개가
덜덜거리며 망가진 카세트를 달랠 때
닭띠 여자의 까칠한 음성
“순대사세요 수-운대”
초여름밤은 길어
전철역 행인들 유성처럼 꼬리를 물고 나올 때
좌판 위 오렌지더미로 별들 쏟아져 내릴 때
구름 휘도는 강가
꽃가루처럼 묻혀온 노란 피곤을 털며
무꾸리*의 노래처럼 여자의 소리는 계속되고
순대솜씨 젬병인 착한 영감은
엄마가 그어놓은 선처럼 절대 갈 수 없는 그곳
죽은 아내의 목소리는 길을 지나고
아내의 목소리를 따라 아주 천천히
그도 가는 곳
“순대사세요. 수-운대(水-雲臺)!”
*무꾸리:무당이나 판수에게 길흉을 점치게 하는 일
'수주문학' 2006년 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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